“섹스 앞에선 누구나 평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람도 한데 섞여 러브러브
커플 손님이 대형 무도회장에 놓인 침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일요신문]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는 사람들은 생각도 자유롭다.”
베를린에서 유명한 ‘인섬니아 섹스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도미니크는 이렇게 말한다. 클럽에서 ‘여왕’이라고 불리고 있는 도미니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유’에 두고 있다. 그에게 있어 종교, 정치, 피부색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인섬니아’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 누구든지 함께 뒹굴면서 섹스를 즐길 수 있다.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격리된 채 매일 밤 자유주의자들만의 은밀한 세상이 클럽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클럽 건물 위층에 있는 아파트에서 12년째 세 들어 살면서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전직 요리사인 대니를 통해 ‘인섬니아’의 밤을 묘사하면서 이곳이 어떻게 베를린을 대표하는 섹스 클럽이 됐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나는 여기서 살고, 여기서 섹스한다. 바깥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12년째 섹스클럽에서 살다시피하고 있는 전직 요리사인 대니에게 ‘인섬니아’는 풍요로운 안식처이자 늘 흥미 넘치는 놀이터다. 뿔테 안경을 쓴 그는 항상 테디베어가 그려진 잠옷을 입고 다닌다. 그만의 페티시인 것이다. 대니는 ‘인섬니아’를 가리켜 자신의 ‘종교 사원’이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존예술가이자 요리사이며, 철학자이자 대마초 합법화를 위해 싸우는 투사다. 나의 인생관은 ‘정치와 종교는 치유될 수 있는 것이며,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이다.”
그러면서 대니는 또한 “물론 나도 어쩌다 한 번씩은 현실 세계로 나간다. 이를테면 대마초잎이 떨어질 때면 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대니는 클럽 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거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인섬니아’에서는 누구든 자신의 욕망을 표출할 수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은둔 아닌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걸까. 아니, 과연 섹스클럽 안에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긴 한 걸까. 이에 대해 대니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학대당했던 대니는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나를 만든 사람’이라고 냉정하게 부른다. 이런 이유에 대해 대니는 “지금까지 그는 나에게 어머니였던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아들을 보일러실에 가둔 채 가죽 채찍으로 때리곤 했던 어머니는 “너는 아무 쓸모도 없는 애야. 전혀 없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랐던 대니에게 어머니의 채찍질보다 더 아팠던 것은 바로 이런 말들이었다.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그는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하지만 그래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커리36’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은 후 도심 한복판에 자신만의 이동식 스낵바를 오픈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평생을 짊어지고 다녔던 ‘쓸모없다’는 말은 그에게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뜻하지 않은 이사 때문이었다. 베를린 시내 유명 클럽의 위층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친구가 이사를 나가면서 그에게 아파트를 소개해주었던 것이다. 평소 친구의 아파트를 점찍어 두었던 대니는 흔쾌히 아파트로 이사를 들어갔다. 그 클럽의 이름은 ‘인섬니아’였고, 그렇게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클럽의 여왕’으로 불리는 도미니크가 무대 뒤에서 남근을 연상케 하는 돼지 넓적다리를 들고 웃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그렇다면 ‘인섬니아’라는 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밤 10시에 문을 여는 이 클럽은 입구부터 몽환적이다. 일단 클럽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되며, 붉은 조명이 비추는 중앙홀은 창문 대신 거울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에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11년째 ‘인섬니아’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빈카는 “인섬니아는 단순히 섹스클럽이 아니라, 지극히 쾌락적인 평행우주다. 어른들을 위한 성 놀이터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성을 파는 윤락업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전화를 걸어서 “여자 있어요?”라고 물어오면 빈카는 “아뇨. 대신 러브젤, 콘돔, 깨끗한 수건은 있죠”라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성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손님들끼리 짝을 지어 오거나, 혹은 짝을 찾는 곳이다. 클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오직 손님들 사이에서만 일어난다.
가령 함께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싶은 부부들의 경우 이곳에서 이런 판타지를 실현시킬 수 있다. 물론 혼자 둘러보고 싶어 찾는 남녀도 많다. 이렇듯 대체로 ‘인섬니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랑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왕도는 아니라는 믿음이 강하다. 클럽의 단골인 한 부부는 심지어 ‘인섬니아’에서 알게 된 다른 부부와 함께 휴양지 리조트로 은밀한 휴가를 다녀왔다고도 말했다.
또한 아일랜드의 한 부부는 매년 클럽을 방문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2주 동안 휴가를 오고 있다. 다시 말해 섹스클럽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미니크는 “안 될 것 있나?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온 어떤 부부는 심지어 여기에서 아이도 낳았다”라고 말했다.
클럽 전속 DJ의 여친인 한 여성이 무대 위에서 일렉트릭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그런가 하면 ‘여왕’의 오른팔이기도 한 빈카는 “이곳에서는 누구나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령 클럽 지하실에는 사도마조히즘(SM)플레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손님들은 온갖 판타지와 욕구를 직접 시험해보면서 욕구를 충족시킨다. 또한 발코니층에 마련되어 있는 각 방에는 콘돔, 고무장갑, 러브젤이 구비되어 있다. 빈카는 방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직접 수건을 나눠주고, 손님이 방을 사용하고 나가면 붉은색 침대와 산부인과 의자를 소독제로 깨끗이 닦아낸다.
또한 발코니 위에서 전체를 감독하고 있는 빈카는 만일 손님들끼리 시비가 붙을 경우에는 조정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다만 아무도 그녀에게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 이는 엄격한 클럽의 규정이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충격적일 정도로 퇴폐적인 속옷을 입고 클럽을 찾아온다. 가령 외투를 벗으면 몸에 꽉 끼는 코르셋이나 망사스타킹만 드러나는 식이다. 심지어 아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입장하는 손님들도 많다. 클럽에 입장한 많은 커플들은 마스크를 쓰고 자리에 앉고, 어떤 남성은 목에 쇠사슬을 멘 채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기도 한다.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추는 한 여성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부츠 외에는 아무 것도 몸에 걸치지 않았다. ‘인섬니아’의 단골인 이 여성은 클럽을 찾고 있는 이유에 대해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벌거벗고 춤을 출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DJ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함께 몸을 흔드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섬니아’의 철저한 관리 역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이유다. 대부분 은밀한 섹스클럽은 관리가 부실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망사옷을 입고 클럽을 즐겨 찾는 한 남성은 여자친구와 함께 다른 섹스클럽을 찾곤 했지만 어두컴컴한 방에서 지린내가 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인섬니아’로 옮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인섬니아’에는 월풀 욕조도 있다”면서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대니가 자신의 페티시 의상을 입고 앉아있다. 사진출처=슈테른
오래전부터 성전환자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위해 일해온 도미니크는 섹스치료사 교육 과정을 이수했고, 사도마조히즘과 페티시를 음지에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름’도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든 이 우주에서는 다른 것이 심지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인섬니아’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다. 종교를 넘어, 정치성향을 넘어, 그리고 피부색을 넘어 누구나 사랑 혹은 섹스 앞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이다. 클럽에서 일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온 해리라는 직원은 “‘당신의 여자와 섹스를’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면 오스트리아에서는 모두들 외계인처럼 쳐다보지만, 베를린에서는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만족해하고 있다.
도미니크는 “왜 ‘인섬니아’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서로 뒤섞인 채 즐기고 사랑을 나누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섹스하는 사람들이 생각도 자유롭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실제 클럽에서는 러시아 사람과 미국 사람이 서로 뒤섞여 잠들고,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저마다 추구하는 행복을 찾고 있을 뿐이다.
바깥 세상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벌어지고, 스펙을 쌓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지만, 이곳에서는 매일 밤 벌거벗은 사람들이 눈을 감고, 팔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거울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 올라 쉬지 않고 춤을 춘다. 마치 자유로운 영혼들처럼 말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