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청와대 출신들과 이해찬 불편한 관계…“공천 두고 계파 갈등 정점 찍을 것”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은숙 기자
이해찬 대표 체제 후 당청관계는 달라졌다. 집권 초 청와대로 쏠려 있던 힘의 균형추는 지난해 8월 이 대표 당선 이후 당으로 넘어갔다. 이 대표는 주요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은 물론 청와대에서조차 이 대표 앞길을 막지 못했다. 이 대표가 여러 번 언급한 ‘장기 집권론’에 대해 여러 불만이 흘러나왔지만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를 일컬어 ‘상왕’이라고까지 칭했다.
청와대, 구체적으로 말하면 친문 인사들 고민은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문재인 대통령을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마이 웨이’를 선언할 경우 국정 운영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이를 두고 친문 의원들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땐 너도나도 친문을 자처하더니 지지율이 빠지자 제 살길을 찾는다’라는 취지의 불만을 털어놨다. 한 친문 의원은 “이 대표가 아직도 문 대통령을 예전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이나 비서실장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여권 주류가 분화 과정을 밟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친문과 친노, 그리고 이해찬계가 각자도생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다음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주도권을 쥐기 위한 권력 다툼의 빗장이 열린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집권 3년차 여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이는 대통령 권력 축소로 이어지곤 했다. 친문 핵심부가 각 정파 움직임 파악에 분주한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 2기의 주요 인사 포인트 역시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과 정부 부처 요직을 맡았던 핵심 친문들이 당으로 돌아와 모종의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뒤를 잇는다. 한 친문 의원은 “원조 친문인 노영민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 배치로 청와대 친정체제는 한층 더 공고해졌다. 남은 과제는 당으로 돌아간 인사들이 얼마나 문 대통령 지원사격을 하느냐다”라고 귀띔했다.
‘문재인 키즈’의 대표적 인물은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다. 청와대 2인자로 불리며 신친문 좌장으로 통했던 임 전 실장은 청와대를 나온 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특임 외교특보로 발탁됐다. 지역구를 두고 여러 소문이 나돌지만 임 전 실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란 데엔 이견이 없다. 임 전 실장과 가까운 한 의원은 “비서실장 시절 못지않게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당으로의 복귀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 외에 한병도 전 정무수석,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도 총선 출마가 유력한 청와대 참모 출신이다. 부처에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당으로 돌아올 것이 확실시된다. 이 중 김부겸 장관은 차기 대선 후보군으로 오르내린다.
이들이 당에 합류하면 친문 진영 세는 한층 강화된다. 그 면면만 보더라도 다른 계파를 압도한다. 핵심 친문들이 청와대에 이어 당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이들의 최우선 목표는 문재인 정부 성공이다. 그러기 위해선 당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한데, 당청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싸워서라도 문 대통령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친문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들의 정치 시계 알람은 내년 총선에 맞춰져 있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최대한 많은 의석수 확보가 목표다. 원내에 들어가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면서 “참모 출신들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 자체가 문 대통령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우선 공천을 받아야 한다. 친문 진영에선 청와대와 부처에서 일했던 ‘스펙’을 감안하면 예선은 무난하게 통과할 것이란 기대감이 퍼져 있다.
그러나 변수가 있다. 아니 상수다. 이해찬 대표다. 이 대표 주변에선 친문 핵심 인사들 공천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감지된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참모나 장관 출신이라고 공천에 혜택을 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공평하게 이뤄질 것”이라면서 “이 대표와 친문 주요 인사들 간 관계를 감안하면 공천을 호락호락 주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이번에 청와대를 나온 몇몇 인사는 이 대표와 불편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이 대표가 공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현재 민주당 의원들 중 친문계는 대략 50~60명 정도로 꼽힌다. 민주당 전체 의석수(128석) 절반가량으로 최대 계파다. 이 대표 측에선 다음 총선이 세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이는 곧 친문 인사들의 공천 탈락을 의미한다. 공천을 둘러싸고 계파 간 갈등이 정점을 찍을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내에 퍼져 있는 친문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 문 대통령 지지율도 주류 진영 헤게모니 싸움의 관전 포인트다. 한 비문 의원은 “낙하산 인사는 친문 인사들이 다 차지했다는 비판이 높다. 여권의 다른 계파는 소외감이 극에 달했다. 그런데 이들에게 공천까지 준다? 청와대 참모 또는 장관 출신들의 무혈입성은 절대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의 이 대표 측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문 의원들은 지난해 지방선거 때와 같은 ‘문재인 후광’을 누리려면 자신들을 전면에 포진해야 한다고 하더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내년은 대통령 4년차다. 문재인 이름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대통령 임기 후반에 치러진 선거에서 후보들은 (대통령과) 선을 긋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금 속단할 순 없지만 지금 당으로 들어오는 인사들의 공천 여부는 문 대통령 지지율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