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아마 리암 니슨이 죽고 나서야 끝날지도 모르겠다. 영화 ‘콜드 체이싱’ 스틸 컷.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테이큰’에서 딸과 부인이, ‘커뮤터’에서 가족 전체가 납치되거나 살해됐던 그는 이번엔 마약 갱단의 일에 휘말려 죽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설원을 누빈다. 대상이 누구든 간에 2008년 ‘테이큰’ 이후 대부분의 영화에서 “나는 너희를 찾아서 죽여 버릴 것이다”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는 리암 니슨의 새 영화 ‘콜드 체이싱’의 이야기다.
전작에서 ‘인간 흉기’로 불릴 정도의 능력을 자랑한 전직 요원이나 형사로 분했던 그의 이번 영화에서의 역할은 평범한 제설차 운전수 넬스 콕스맨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콜드 체이싱’에서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나 격렬한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씬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 대신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주인공의 제설차는 웬만한 흉기 이상의 위압감을 자랑해 액션 씬에 대한 갈증을 메운다. 하나씩 복수를 끝낼 때마다 밤의 설원을 가로지르는 제설차와 폭설 속에도 얼지 않는 거대한 폭포, 그리고 복수와는 다소 거리가 먼 발랄한 배경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액션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
극중 메인 악역 ‘바이킹’과 주인공 넬스 콕스맨. 영화 ‘콜드 체이싱’ 스틸 컷
‘콜드 체이싱’이 아들의 복수를 하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매력적인 악역에게도 아들이 부여됐다. 이 아들을 놓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들에는 아들’로 연결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두 시간에 조금 못 미치는 러닝타임 동안 이어지게 된다.
이 궁금증은, 넬스와 마찬가지로 바이킹에게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적대 마약 갱단의 보스 ‘하얀 소(톰 잭슨 분)’에게도 적용된다. 같은 적에게 아들을 잃는 슬픔을 함께 맛 본 동지들이 적의 아들을 놓고 각자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를 바라보는 것도 관람의 한 재미일 것으로 보인다.
‘콜드 체이싱’의 독특한 점은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애도를 표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사망하면 화면은 암전되고 묘지를 뜻하는 십자가 마크와 함께 캐릭터의 이름이 뜬다. 이 영화에서 가장 대규모 전투씬이 벌어지는 후반부에는 마치 협찬사 명단을 읊듯이 스크린 전체를 죽은 캐릭터 이름으로 채울 정도다.
폭력과 위트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감독 한스 페터 몰란트는 “무거운 주제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요소들과 잘 맞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제작 뒷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더욱이 이 영화는 같은 감독의 2014년 영화 ‘사라짐의 순서: 지옥행 제설차’의 헐리우드판 리메이크이기도 하다. 5년 전의 원작과 현재 ‘콜드 체이싱’을 비교하며 연출력의 업그레이드와 새로이 포함된 다채로운 볼거리를 찾아보는 것도 관객들의 몫이다.
한편으로, 감독이나 작가가 애초에 의도한 바라곤 볼 수 없겠지만 영화 속 숨은 교훈은 아마도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가 아닐까 싶다. 중반부에 깜빡이를 켜지 않고 훅 들어오는 사랑에 당황할 수 있음을 주의. 15세 관람가. 20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