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지훈(왼쪽부터), 강소라, 김유성 감독, 이시언, 이범수가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19일 드디어 약 1년 6개월의 침묵을 깨고 스크린에 등장한 ‘자전차왕 엄복동’은 실존인물인 ‘동양 자전차왕’ 엄복동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다룬다. 당시 신문에 난 기사와 김유성 감독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엄복동 전설’로 시작됐다는 이 영화의 큰 줄기는, 실존인물이 그렇듯 물론 ‘자전거 경주’로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기승전결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심심하기까지 한 스토리의 곁가지로 마련된 각종 영화적 장치들은, 오히려 이 영화의 방향성을 어지럽힌다. 일본에 맞서는 조선독립단체 ‘애국단’의 블록버스터 액션에 애국단의 여성멤버 김형신(강소라 분)과 엄복동(정지훈 분)의 로맨스도 당연히 가미돼야 하고, 엄복동이 상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 가족애도, 영화의 뼈대가 된 애국심도 한꺼번에 보여주려다 보니 영화는 입체파로 향한다. 가히 피카소의 경지다.
심지어 장르별로 따로 노는 이 영화의 각 부분은 별개로 떼어 놓아도 스토리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순히 일제강점기 최초의 대중적인 스포츠스타 엄복동의 활약에만 초점을 맞추기엔 약 2시간가량의 러닝 타임이 다소 긴 감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을 적절히 버무려야 하는 제작진의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진=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렇다고 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라는 의문이 드는 장치들이 과연 필요했는지. 영화가 끝나고 여운 대신에 갈 곳 없는 물음표만 남는다.
이와 관련해서 오히려 김 감독은 “영화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 외에 주변 곳곳에 숨겨진 것들이 있으니, 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며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른바 ‘국뽕(애국심+마약의 합성어)’ 논란과 관련해서는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국뽕이 무엇이고 신파가 무엇인지, 왜 국뽕과 신파는 지양되어야 하는 것인지 이참에 얘깃거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화의 제작과 출연을 함께 한 이범수 역시 “엄복동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도 순박한 청년 하나가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고 커다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도 미래에 희망을 던져줄 수 있다는 순수한 취지에서 영화를 시작했다”며 단순히 애국심에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나 영화 속 작위적인 대사와 캐릭터, 그리고 일본의 악행에 중점을 둔다 할지라도 불필요하리만치 잔인한 일부 장면들은 제작진들이 밝힌 영화의 제작 목적이나 방향성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애국 마케팅에 대해선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비췄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는 어쩔 수 없는 애국심의 폭풍우가 몰아닥친다. 그런 와중에도 씬 속에서 비장한 것은 배경음악 뿐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실존인물인 엄복동의 애국적인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의 말년이 의도적으로 배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영웅적이었던 청년기와 달리 엄복동의 말년은 자전거 도둑으로 얼룩졌다. 시사회 전 이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면서 “범죄자를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범수는 “실재하는 역사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저희도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을 기울였다”며 “자전거를 열심히 잘 탔던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민중에게 희망을 준 그 이야기로 소통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너그러이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엄복동 역을 맡은 정지훈(비)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그렇다면 엄복동 역을 맡은 정지훈(비)의 입장은 어떨까. 그는 “큰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는 엄복동 선생님이 고 손기정 선생님처럼 (우리가) 꼭 알고 되새기며 살아가야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애국심을 자극하거나 이런 것보다는 그냥 사실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자전거 경주 영화다, 독립투사 이야기다 이런 게 아니라 그저 가족 분들이 오시면 남녀노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한편,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조선자전차경주대회에서 일본의 우수한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던 실존인물 엄복동의 이야기를 다룬다.
엄복동을 자전차 선수로 키워낸 스승 황재호 역에 이범수가, 엄복동으로 하여금 일본에게 강렬한 증오심을 품게 만든 애국단 행동대원 김형신 역에 강소라가 열연을 펼친다. 27일 개봉. 12세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