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회장 기댈 곳 ‘막냇동생’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뿐이라는 관측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해임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이종현 기자
이동걸 회장은 지난 26일 몇몇 언론사와 조용히 만나 티타임을 가졌다. 당초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조남호 회장의 거취에 관한 생각을 밝힐 것으로 예상됐지만 끝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채권단이 한진중공업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오너인 조남호 회장에 관해 섣불리 운을 떼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등 한진중공업 채권단은 조남호 회장을 해임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오는 3월 말 예정된 정기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대신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겠다는 것. 필리핀 수빅조선소(HHIC-Phil)가 자본잠식에 빠지는 등 잇단 경영 실패에 따른 결단으로 해석된다.
수빅조선소는 1조 500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지만 최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3일 수빅조선소가 자산평가 손실 및 충당부채 설정에 따라 자본잠식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자본총계 비율은 마이너스(-)140%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한진중공업은 2006년 부산 영도조선소가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없어 필리핀 수빅조선소 건립에 들어갔다. 하지만 건조를 시작한 지 13년 만에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채권단은 필리핀 수빅조선소의 부실로 인한 여파를 해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수빅조선소 협상단은 필리핀 현지은행과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진중공업 본사와 필리핀 수빅조선소와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게 이번 협상의 골자다. 협상이 마무리될 경우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에 대한 권리를 상실한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특수목적선을 수주하면서 경영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별도 기준 3분기 누적 매출은 1조 2126억 원, 영업이익은 729억 원이다. 수빅조선소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경영환경이 개선되는 구조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등 형제들에게 손을 벌릴지 주목된다. 일요신문DB
채권단이 2500억 원을 출자전환할 경우 최대주주의 변경을 통해 조 회장의 지배력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직 조 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채권단에서 구제척인 방침이 흘러나오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다만 전문경영인 후보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는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고 전했다. 채권단은 조 회장의 퇴진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금융권은 이미 퇴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 셈이다.
변수는 조 회장이 어떤 반격 카드를 꺼내드느냐다. 금융권에서는 한진가(家) 4형제를 주목하고 있다. 한진가 형제들이 ‘형제의 난’으로 그룹이 장기간 불화를 이어온 데다 제 코가 석자인 기업이 많아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예상도 있지만, 위기상황에서 기댈 곳은 결국 혈육뿐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금융권은 특히 막내 조정호 회장이 이끄는 메리츠금융그룹을 눈여겨보고 있다. 조정호 회장은 4형제 중 경영 사정이 가장 나은 상태인 데다 최근 국민연금과 KCGI(강성부펀드)의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한진그룹의 백기사로 거론될 만큼 화해무드가 감지되고 있어서다.
최근 메리츠금융그룹 계열사에 대한항공 마크가 달린 제품들이 납품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특히 고위경영진이 사용하는 비품에 대한항공이 자주 눈에 띄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금융권은 “메리츠 사옥에 태극마크 반입이 허용됐다는 것은 작게 볼 일이 아니다”라며 “만약 맏형인 조양호 회장과 막내 조정호 회장이 화해를 했다면 둘째인 조남호 회장과도 손을 잡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조남호 회장의 거취 문제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한진가 형제들 간 대결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