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영화 전문상영관에 자사 투자·배급 영화 밀어줘” vs “예매율 기준으로 상영 결정하는 건 모든 영화 동일”
80~90대 ‘할매’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겪는 ‘노년의 욜로 라이프’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 CGV 상영 보이콧에 나섰다. 사진=단유필름 제공
CGV는 전국 159개 영화관, 1182개 스크린 가운데 ‘칠곡 가시나들’에 딱 8개 극장과 8개의 스크린을 분배했다. 이마저도 ‘퐁당퐁당’ 상영으로 진행돼 영화의 주인공인 ‘칠곡 할매’들은 자신이 나온 영화조차 영화관에서 볼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월 22일 CGV 측이 김재환 감독에게 보낸 ‘칠곡 가시나들’의 스크린 운영안은 이렇다. 개봉일 기준(2월 27일)으로 서울에서는 용산아이파크몰만이 배정됐고 원주, 천안, 청주율량, 광주용봉, 대구, 대구스타디움, 동백에서만 ‘칠곡 가시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적은 스크린 배정에 대해 먼저 CGV의 스크린 독과점 행태를 꼬집었다. 김 감독이 ‘CGV 보이콧 입장문’에서 같은 날 개봉하는 ‘어쩌다, 결혼’ 뿐 아니라 역대 한국 코미디 영화 최다 관람객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극한직업’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모든 사단은 영화 ‘극한직업’이 오지게 재밌어서 벌어진 나비효과”라며 “우리 편이 아닌, 성벽 밖 사람들에게까지 나눠줄 스크린은 없으니 떨어진 이삭까지 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속 할머니의 자작 시. 사진=단유필름 제공
CGV가 ‘밀어주는’ 자사의 작품은,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버스 시간표와 비슷한 상영 시간표를 배정 받는다. “관객들은 5분에 한 번꼴로 상영하는 영화를 걸어놓으면 자연히 1~2시간에 한 번씩 상영하는 영화 대신에 전자를 선택하게 된다”며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7월 업계 관계자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는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등 영화산업의 심각한 문제들은 입법 외에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영화의 예매 시기, 상영관 배정 및 최소 상영 등이 대기업 배급사를 위주로 보장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2014년 10월 ‘영화 상영 및 배급시장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협약’에 따르면 상영관은 최소한 개봉하는 주의 월요일을 예매 개시일로 지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영화사들은 직배사나 대기업 배급사에 밀려 이런 보장을 받지 못하는 곳이 태반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칠곡 가시나들’의 김 감독 역시 이 문제를 짚었다. 김 감독은 “(CGV 측은) 예매율 기준으로 상영관을 배정한다고 우기겠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개봉 3일 앞두고도 ‘칠곡 가시나들’에 예매창을 열어준 멀티플렉스 극장이 단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예매율이 올라가나”라고 지적했다. CGV 외에 메가박스 역시 예매 개시일로 예정된 월요일을 지나 화요일 정오까지 ‘칠곡 가시나들’의 예매창을 열지 않았다.
상영관 배정과 관련해 김 감독이 특히 CGV를 문제 삼은 이유는 또 있다. CGV가 국내 유일하게 저예산 독립영화 시장에서 투자와 배급을 함께 진행하는 CGV아트하우스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탓이다. CGV아트하우스는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CGV의 특별 상영관이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 컷. 사진=단유필름 제공
“다양한 영화의 생산을 통해 한국영화시장을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CGV아트하우스의 출범 당시 입장과는 달리 ‘CGV가 투자한’ 독립영화인지 여부에 따라 명확한 기준 없는 배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CGV아트하우스 투자배급 작품인 ‘어쩌다, 결혼’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칠곡 가시나들’과 ‘어쩌다, 결혼’은 순제작비가 같다. P&A(홍보마케팅) 비용도 거의 비슷하다. 차이는 CGV아트하우스 투자배급 작품인가 아닌가로 밖엔 설명이 안 된다”고 짚었다. ‘어쩌다, 결혼’은 CGV 95개 극장, 140개 스크린이 주어졌다.
김 감독은 이어 “돈 되는 극영화와 돈 안 되는 다큐는 스크린 배정 기준이 다르다고 주장할 거라면, CGV는 아트하우스를 왜 만들었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립영화 업계 한 관계자는 “CGV가 아트하우스를 만들며 한국 저예산영화 시장의 활로를 개척했다고 자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의 또 다른 시장 침탈이나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CGV라는 막강한 플랫폼을 가진 아트하우스에 올라가는 영화는 결국 그만큼의 인지도를 보유한 채로 시작선에 서는 것”이라며 “애초에 활발한 홍보가 어렵고, 스크린 배정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저예산 영화의 경우는 대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제목을 알리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CGV 측은 “일부 자사 투자·배급 영화가 아닌 영화에 한해서만 불리한 스크린 배정이나 상영 일수를 조정한다는 것은 오해”라며 “예매율이나 관객 평가 지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의 관람 수요를 분석해 모든 영화의 스크린 배정을 결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