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합의보다 좀 더 논의해 확실한 결론 내는 게 낫다”…경협관련주는 일제히 직격탄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20일 “나는 대북제재를 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 등의 발언을 통해 추가 비핵화 실행조치를 촉구했다. 또 “나는 이번이 마지막 회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향후 추가 회담 개최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 비핵화 및 대북제재 협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장기전 채비를 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막상 회담 일정에 들어가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경제와 관련한 긍정적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한 단독회담 및 확대 정상회담에서 “경제적으로 아주 특별한 나라가 될 것”, “북한의 경제력에 대해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경협에 대한 허용이나 대북제재 완화 등의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들뜬 기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정오쯤 예정된 업무오찬 시각이 40분을 넘겨서도 확대회담이 끝났다는 소속이 전해지지 않았고, 북미 정상과 양측 수행원들이 오찬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 이어 오후 12시 45분쯤 오후 4시로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2시로 당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시에 메트로폴 호텔 인근 도로가 통제되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각각 전용차량을 타고 회담장을 떠나 숙소로 향했다.
곧바로 백악관은 북미 정상이 “아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발표하며, 역사적인 하노이 합의가 결렬된 사실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결렬 뒤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위원장과 매우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 계속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회담 결렬은 제재가 쟁점이었다. 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기자회견에 나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 합의를 이룰 수 없었다. 그 합의를 앞으로 몇 주간 내로 이룰 수 있길 바란다”며 추후 협상 여지를 남겼다.
하노이발 악재는 우리나라 경제계에 큰 충격파를 줬다. 한국시각 오후 3시 30분 주식시장 종료 직전 전해진 합의 결렬 소식에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면서 전일 대비 1.76% 내린 2195.44로 거래를 마쳤다. 특히 남북경협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건설 우선주는 전일 대비 21.21% 급락해 19만 5000원을 기록했고,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로템은 각각 18.55%(9만 5300원)와 12.20%(2만 5900원)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인디에프와 제이에스티나, 오르비텍 등도 대부분 15~26% 낙폭을 보였다.
재계 분위기는 그럼에도 담담하다. 합의에 도달해도 하루아침에 남북경협이나 제재가 완화되리라 기대하지 않은 만큼 더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는 미국의 입장만 나왔다. 북한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결렬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양측의 주장이 다르면 공방이 오가면서 갈등이 이어질 수도 있다”며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을 보면 파국에 이른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지킬 선은 지키면서 합의 중단을 한 것 같다. 따라서 가까운 시일 내에 협의가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쉽지만 북미 정상이 무리해서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더 논의해 확실한 결론을 내는 것이 오히려 낫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북미 협상 상황을 지켜보면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