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 염두에 둔 입단속 ‘수군’…개각설에 흔들리던 리더십 ‘유임’으로 가닥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특별 지시’가 담긴 공문을 대검찰청에 보낸 것은 지난달 28일. ‘수사과정에서 원칙에 위배되는 피의사실 유출로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또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공보준칙을 철저히 준수하라’는 당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검찰 내에서는 ‘이 당연한 지시’가 내려온 시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청와대를 향한 수사가 불가피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가 한창인 상황에서, ‘피의사실 유출’을 단속했기 때문. 자연스레 ‘정부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 ‘언론 대응’ 공문 보낸 진짜 이유는?
사실 박상기 장관이 특별 공문을 보낸 1차적인 배경은 강남 유명 클럽 버닝썬 사건이다. 강남 유명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던 김 아무개 씨는 최근 경찰이 동영상과 함께 ‘김 씨가 성추행을 한 혐의가 있다’고 피의사실을 언론에 알리자, 명예훼손 및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경찰 관계자를 고소했다.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한 것. 이에 따라 법무부도 자체적으로 ‘내부 단속’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보다 더 확실한 언론 대응 원칙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다.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의거, 검찰은 수사 사건을 언론 등에 공표할 때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정확하게 공개한다. ‘어디까지 공개할지’를 미리 사전에 정해놓고, 언론 등의 질문에 사전에 계획된 답을 내놓는다. 예민한 질문은 “확인해 드릴 수 없다”라며 예스도, 노도 하지 않는다.
“‘이미 잘 운영해 온 언론 대응’에 다시 공문을 보낸 목적은 다른 데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최근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관련, 수사팀이 언론에 일절 확인조차 해주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그런 가운데 저런 공문을 내려 보낸 것이 단순히 버닝썬 사건 때문만이겠냐. 여러 사건들에 대해 입단속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블랙리스트 수사 건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수사팀 관계자가 “대부분의 언론 취재가 수사를 받고 온 환경부 사람들로부터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수사팀은 언론에 내용을 전혀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로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앞선 익명의 관계자는 “정권을 정면으로 겨냥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번째 수사인데 어떻게 언론에 내용을 흘리면서 하겠느냐”고 덧붙였는데,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박영수 특검 때는 매일 언론을 상대로 수사 내용을 브리핑을 하지 않았나. 이번 사건과 비교해 보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물론, 검찰이 얼마나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흔들리던 리더십 다시 ‘꽉’
법무부 장관 부임 직후, 리더십 부재로 흔들렸던 박상기 장관. 하지만 검찰 내 목소리를 잘 듣고 청와대에도 어느 정도 전달을 하면서 ‘예측 가능한 리더’가 됐다는 평이 나온다.
앞선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원래 법무부 안에서도 박상기 장관 취임 직후 말이 정말 많았지만, 크게 두드러지지 않게 정부의 지시(검경 수사권 조정)를 잘 이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검찰의 논리와 특징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해서 반영해줬다”며 “초반에 비해서는 예측 가능한 부분이 많아지면서 리더십 논란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개각 예상 인사에 이름이 오르내리다가 유임으로 가닥이 잡힌 것 역시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평이다. 당초 이번 개각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갈 것이라는 추측이 힘을 받았지만,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유력시되는 상황. 박상기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 개혁 관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파트너십이 좋은 탓에 사법 개혁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보장받은 게 확실시 되는 분위기다.
서초동 대검찰청. 임준선 기자
# 수사팀과 대검찰청 기류 엇갈려
하지만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여전히 돌발 변수다. 특히 수사팀은 ‘청와대가 연루됐다’는 판단을, 대검찰청은 ‘수사 확대는 신중하게 하라’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약간의 의견 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는 증거 다지기를 통해 청와대가 연루됐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검찰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2차 소환조사 등에서 ‘청와대가 구체적으로 관여했다’는 정황들을 집중적으로 캐물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이를 입증할 증거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신중하게 수사하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 법원 관계자는 “이름이 여러 개 적혀 있으면 리스트는 맞지만, 블랙리스트인지에 대해서는 목적성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풀이했는데, 수사 흐름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리스트가 있고, 사직 의사를 묻는 등 목적성이 입증됐다고 해도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대검찰청이 무리하게 수사를 확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검찰청은 대검 연구관(검사) 3명을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에 추가로 투입하면서도, 조국 수석 등 핵심 청와대 피의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 여부를 미리 언론에 알리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역시 ‘노코멘트(확인해 줄 수 없다)’로 일관하는 상황. 신속 정확하게 수사를 벌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사건이 대검찰청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처음부터 대검찰청이 구체적으로 보고 받고 지시를 하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대검찰청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청와대를 겨눈 수사’가 통제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