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일각 “법관 탄핵 발의는 김경수 2심 대비한 법원 견제용” 의구심
하지만 법조계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법원은 “그런 공세는 법원의 구조를 정말 모르고 한 얘기”라고 일축한다. 법원 내에서는 “오히려 봐준 판결”이라는 해석까지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강경하다. 특히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을 놓고, 법원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여된 법관 탄핵을 추진하며, 법원에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 고성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발끈한 것은 단연 김경수 경남지사 유죄 판결. 법정 구속 직후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대책위원회를 꾸렸고, 19일에는 기자간담회와 대국민보고회를 연이어 개최해 법원을 비판했다. 특히 19일 오후에 열린 판결문 대국민 보고회에는 민홍철, 전해철, 홍익표 의원과 서기호 변호사(전 정의당 의원) 등이 참석해 법원 압박에 힘을 보탰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은 1심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의 경력. 앞서 박주민 의원 등은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김 지사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비서 출신”이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에 대한 반발로 김경수 지사를 구속했다고 문제 삼았다.
# 법원 “집유 선고한 대목 오히려 봐주기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에 ‘말도 안 되는 문제제기’라고 반박한다. 재판부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비서 출신이라는 이유로 ‘적폐’로 몰아가는 것이 상식 밖 주장이라는 얘기다. 되레 ‘법정 구속’에 대해서는 “봐줬다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고 얘기한다.
“어떻게 법원이 한 사건을 다루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고 무죄를 유죄로 바꿀 수 있나요. 그럴 것이라고 추측한다는 게 더 당황스럽습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특히 대선 여론 조작 관련, 김경수 경남지사 1심 재판은 ‘진술의 신빙성’과 ‘물증’이 승패를 갈랐다고 판사들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결문을 읽어 보니 드루킹 진술을 뒷받침하는 인터넷 접속 기록, 컴퓨터·휴대폰 자료 등 유죄로 볼 증거들이 많았다”며 “김 지사는 ‘지지자들의 단순한 선플 운동’이라고 항변했지만 그 외 드루킹 쪽의 진술이 일치하면서 드루킹 측의 주장에 신빙성을 부여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철저하게 증거로 판단했다는 평가다. 심지어 ‘봐줬다’는 분석도 있었다. 앞선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김경수 지사 사건의 경우 혐의가 컴퓨터장애업무방해와 선거법 위반이었는데 실형으로 구속된 양형 죄목은 컴퓨터장애업무방해”라며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이번 김경수 지수의 댓글 조작이 대선 결과를 흔들 수 있을 만큼 큰 문제나 잘못은 아니었다고 한 셈”이라며 정권을 배려한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는 지난달 30일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지사에 대해 업무방해죄에 대해서만 징역 2년을 선고했고,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선의 결과에는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 역시 “선거법 위반은 민주주의 꽃인 ‘정당한 선거를 방해한 것’이기에 보통 처벌이 무겁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구속되는 등 원래 업무방해보다 더 양형도 무겁다”며 “그런데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잘못은 했지만 그리 중하지는 않다’며 약간의 면죄부를 줬다고 볼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임준선 기자
김경수 지사 구속 이틀 뒤인 지난 1일. 이번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법정구속 됐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홍동기)는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사안은 사뭇 다르지만 여권 핵심 정치인들에 대해 잇따라 실형을 선고하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후 법원이 반발하듯 흠집내기를 한다”는 비판이 여당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안희정 전 지사 사건 역시 봐줬다는 반발 섞인 분석이 나온다. “성폭행 인정 여부를 떠나, 성폭행 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는 전제로 봤을 때 횟수 대비 양형이 센 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앞서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과 러시아, 스위스 등에서 전직 수행비서 김 씨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 등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공소사실 혐의 10개 중 9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추행 및 성폭행 횟수를 감안할 때 징역 3년 6개월은 약하다는 비판이다. 앞선 서울고법 관계자는 “단순 성폭행도 아니고 위계 및 위력에 의한 성폭행이지 않냐”며 “8개월에 걸쳐 4회의 성폭행이라면 통상 징역 5년 이상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유무죄 판단이 1, 2심에서 갈리는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 비교적 낮게 잡은 양형”이라고 설명했다.
# 양승태 구속에 대한 반발? “애초 불가능한 구조”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양승태 구속 등 법원에 대한 반대심리로 엄하게 판단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모든 판사들이 강하게 반발한다. 특히 “법원을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며 격분하는 판사들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재판부는 다 독립돼 운영되고 실제 재판에 관여를 할 수도 없는 구조다. 원래도 그랬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 이후 재판장들이 훨씬 더 조심한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 출신이라고 김경수 사건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했다는 논리는 우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만큼 심한지를 보여주는 반증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앞선 박근혜 정권 당시 적폐 수사에 대해 강도 높은 처벌들이 이뤄졌던 게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적폐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당연하게 인식됐던 것들이 직권 남용 등으로 문제가 되고 엄하게 처벌이 진행되면서 정치적으로 얽힌 사건에 대해서는 ‘구속’이 필수적이라는 균형감각도 생긴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 박은숙 기자
그럼에도 여당은 법원에 대해 강경 공세를 계속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법관 탄핵은 3명의 빠질 수 없는 판사들 그리고 추가로 1~2명을 고려하고 있다”며 “양승태 대법원장이 기소됐고 2월 국회를 넘어가면 동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번 달 안으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탄핵 법관 명단에는 그동안 거명된 신광렬·이민걸·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법관 탄핵 추진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법관 탄핵소추가 이뤄지려면 헌법 제65조 2항에 따라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100명) 이상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뒤 본회의에 보고된 날로부터 72시간 내에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탄액소추안 발의는 128석인 민주당 의원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의결에는 최소 151석 이상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미래당 29석,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4석 등을 가진 야당의 공조가 필요한데, 바른미래당은 법관 탄핵에 대해 부정적인 상황이다.
자연스레 ‘김경수 2심 판결을 대비한 법원 견제용 발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 고위직 관계자는 “법관 탄핵은 말도 안 되고 이뤄지지도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서도 “결국 김경수 지사 2심 판결을 앞두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알아서 잘 결정하라’는 메시지를 법원 조직에 보내려는 것 아니겠나”라고 토로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