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신경전 벌이는 검경, 버닝썬과 김학의 사건으로 단두대 매치 ‘부담감’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11일 가수 정준영 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근거로 정 씨의 성관계 동영상 유포 의혹, 정 씨 등 연예인들과 경찰 최고위급 간부의 유착 의혹 등을 대검에 수사 의뢰했다. 박은정 권익위원장은 “공익신고에 경찰 유착 관계, 부실수사, 동영상 유포, 성범죄 관련 내용들이 있었다”며 “이 사건은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유착 관계, 부실수사 의혹이 여전히 수면 아래 있다는 불신으로 버닝썬 수사가 검찰로 넘어가게 된 것.
‘버닝썬 게이트’가 검찰에 넘어갔다. 백소연 디자이너
어차피 경찰 수사가 끝나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구조인 만큼 검찰 수사 시기가 좀 앞당겨졌을 뿐이란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검경수사권 조정을 놓고 묘한 신경전을 벌이던 두 사정당국은 ‘버닝썬’ 사태로 이른바 단두대 매치를 벌이게 됐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경찰 불신(부실과 능력부족)이라는 시선을 의식해 경찰이 이번엔 돌다리도 두들긴다는 수사방침으로 신속한 결과보다는 검찰과 여론에 책잡히는 일이 없도록 신중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론은 연일 터지는 승리(본명 이승현), 정준영 등 연예인 관련 각종 스캔들로 경찰 수사를 압박했다. 급기야 정치권이 나서 경찰 수사를 질타했다. 이에 검찰이 조기 등판하게 됐다.
검찰 또한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당초 버닝썬 사건이 송치된 후 살펴볼 참이었다. 경찰에 수사를 맡기고 수사지휘로 할지 직접 수사를 할지조차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제는 날로 커지는 윗선 개입 의혹과 경찰과의 신경전에 직면한 만큼 수사계획 자체에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재수사가 버닝썬 수사와 맞물린 점도 검찰로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버닝썬 사태’와 관련 “경찰 유착 의혹에 관한 수사뿐만 아니라 강도 높은 감찰 활동을 병행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조치하겠다. 현재 막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사안이고 그에 대해서 수사를 통해서 확인해가는 과정에 있다. 모든 사안을 명명백백 밝힌 뒤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 청장은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입수한) 영상에서 (김 전 차관의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었다”며 “감정 의뢰 없이 동일인이라고 결론 내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김학의 전 차관 부실수사 의혹 책임이 경찰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버닝썬 게이트’ 정준영과 승리(본명 이승현). 고성준 기자
실제로 경찰과 검찰은 2013년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의 강원도 원주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은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였으나, 검찰은 같은 해 11월 ‘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는 점을 특정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검찰과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이 거세게 제기되며 검찰과거사위원회와 대검 진상조사단의 진상조사 대상에 올랐다.
버닝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검경 갈등이 부추겨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도 자신들의 명운을 걸고 자체수사를 이어가겠다고 천명한 만큼 검찰로선 지금까지 거론된 모든 의혹에 대한 답변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을 수밖에 없다.
자칫 버닝썬 사건이 석연찮은 수사로 이른바 꼬리자르기와 검찰 개입 가능성이 제기될 경우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함께 검경수사권 조정에 이어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
해법도 있다. 경찰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연예인 관련 혐의에서 벗어나 버닝썬 사태를 촉발한 버닝썬의 VIP룸과 폭행사건, 애나 등 마약유통 의혹, 경찰 유착 의혹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가 우선시 된다면 ‘검찰은 역시 다르다’라는 우호적인 여론이 일 수 있다.
버닝썬 폭행사건의 김상교 씨 역시 버닝썬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이와 관련 경찰의 폭행, 애나 등 버닝썬에 관계된 여성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연예인 폭로 이전에 VIP 명단과 각종 스캔들의 연루 가능성 등에 대한 조사가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 검찰관계자는 “현재까지 경찰 수사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범죄에만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며 불신을 초래한 부분이 없지 않은 만큼 검찰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고 당부했다.
문무일 검찰총장과 민갑룡 경찰청장. 임준선, 박은숙 기자
반면 법조계에선 경찰이 다루기 다소 힘든 각종 탈세의혹 수사도 검찰로선 호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독 폭행, 성매매, 마약 등 사건에 집중한 것과 달리 이 같은 범죄의 근원이 된 자금줄이나 사업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경우 수사 자체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 A 씨는 “당장 버닝썬과 연관해 사업을 펼친 것으로 알려진 박한별 남편인 유 아무개 씨와 승리의 유리홀딩스, BCH페레그린파트너스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YG엔터테인먼트와 YG 계열사 등에 대해 철저한 수사 착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서초동(법조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이밖에도 법조계 안팎에선 국내뿐만이 아닌 베트남 등 국외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사업과 M&A 등 사모펀드(PEF)투자기업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외 탈세, 외환거래법 위반 등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BCH페레그린파트너스는 성신양회의 한라엔컴 인수전에도 뛰어들어 베트남 사업 등에 깊게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막강한 자금력과 해외 유수 학연을 통한 인맥 등으로 움직이는 이른바 사모펀드 VVIP들이 버닝썬 사태에 연루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연일 유착 의혹이 부각되자 2011년 ‘함바 비리’ 사건을 떠올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검찰의 수사로 전직 경찰청장 등 고위직 상당수가 처벌받아 경찰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경찰의 당면 현안을 추진하기 위한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하지만 검찰 역시 같은 처지다. 김학의 전 차관과 장자연 사건 등 검찰 유착 의혹 사건이 줄줄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버닝썬 사건을 둘러싼 검경의 신경전이 막장패싸움이 아닌 명예회복전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