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노조원 사망사건은 대한상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박용성 회장 등 오너의 퇴진 주장으로 번지면서 그룹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항간에는 두산의 현 상황을 지난 1990년 두산전자에서 일어난 페놀사건 이후 그룹을 위기에 빠트린 최대 악재로 평가하고 있다.
‘페놀사건’ 당시 오너인 박용곤 회장이 퇴진한 바 있다. 페놀사건은 두산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져 창업 1백년의 한국 최고 기업이라는 명예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페놀사건으로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두산그룹은 이를 계기로 어느 기업보다도 앞장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노조원 사망사건’ 으로 노조측으로부터 퇴진압력을 받고 있다. | ||
이후 두산그룹은 과거 ‘페놀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서서히 불식시키며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해 재기를 노려왔다. 특히 지난 2000년에는 축적된 자금력을 바탕으로 숙원사업이던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을 전격 인수, 제조업을 기반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더구나 공기업에서 막 민영화를 끝마친 두산중공업의 경영실적이 1년 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섬에 따라 그 어느때보다도 사기가 충천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2003년 새해가 밝자마자 두산중공업 노조원의 사망사건이 불거지는 바람에 두산은 깊은 시름에 빠지고 말았다. 그룹 한 관계자는 “연초부터 이런 일이 생겨 회사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 일각에선 ‘페놀사건’의 악몽을 떠올리는 모습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일어난 타이밍도 묘하다.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노동계와 두산그룹의 마찰이 자칫 정치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최근 두산중공업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박용성 회장은 회사 노조 탄압을 중지하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내놔야 한다”며 오너에 대해 정면 공박하고 나섰다. 노조측은 “지난 2000년 두산그룹이 당시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특혜시비가 많았던 만큼, 특별검사제를 도입을 통해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두산중공업 한 노조원의 죽음으로 시작된 문제가 오너일가는 물론, 특혜시비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셈이다. 박유호 두산중공업 노조 언론팀장은 “박 회장은 노조탄압을 벌이는 악덕기업주”라며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차원에서 공직이라 할 수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또 “이 문제는 단순히 사내의 문제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향후에도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과 함께 연대해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두산을 옥죄는 전부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참여연대는 두산그룹 3세들이 4세들에게 주식을 편법으로 증여하기 위해 BW가격을 지나치게 낮췄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두산그룹이 증권거래법, 외환관리법, 상속증여세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참여연대측의 주장. 공정위에 고발된 이 문제와 관련해 공정위측은 “공시 위반은 아니다”는 1차 결론을 내렸으나, 참여연대측은 이에 반발해 또 다시 이의를 제기한 상황이다.
두산그룹측은 이에 대해 “사내의 문제를 정치 문제화시켜 이용하지 말라”며 강경 대응 입장을 보이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노조에 대해 탄압을 한 적이 없다”며 “조속히 문제가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입장인 반면, 노조측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 오히려 난감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두산그룹 내부에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문제와 관련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내분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재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거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한 후 기업문화 등을 자연스럽게 흡수하지 못해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것.
그룹 관계자는 “한국중공업을 인수할 당시 그룹과 문화적인 차이가 많을 것으로 생각해, 각종 프로그램 등을 통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사무직 직원들은 어느 정도 수용한 반면 노조는 전혀 변하질 않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두산그룹 관계자도 “두산중공업 노조는 아직까지 공기업적인 마인드에 젖어있는 것 같다”며 “두산그룹과 중공업이 정서적으로 차이가 큰 것도 이번 문제가 터진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다른 회사를 인수한 그룹의 자성의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두산그룹이 2년이 넘도록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에 대해 관리를 소홀히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두산그룹의 문제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어 얼마나 빠른 시간내에 결론이 내려지느냐에 따라 ‘제 2의 페놀사건’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결정지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