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코끼리 덤보의 ‘80년 만의 비행’, 팀 버튼의 손으로 빚어진 또 다른 디즈니의 걸작
영화 ‘덤보’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1939년의 원작부터 따진다면 실사화까지 정확히 80년이 걸린 셈이다. 디즈니 스튜디오 역사상 네 번째로 제작된 장편 영화였던 ‘덤보’는 개봉 당시 160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며 평론가와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바 있다. 그 신화와 전설이 80년의 시간을 넘어 그대로 2019년의 관객들 앞에 섰다.
남들 보다 커다란 귀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 코끼리 덤보. 쓸모없는 괴물로 여겨지며 서커스단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덤보가 큰 귀로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고, 서커스단의 스타가 되는 것이 원작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다.
강산이 8번 정도 바뀐 만큼 영화 ‘덤보’에서는 많은 것들이 덜어지고, 더해졌다. 먼저 원작에서 덤보의 조력자 역할을 맡았던 생쥐 티모시의 역할이 사라졌다. 대신 인간 남매인 밀리(니코 파커 분)와 조(핀리 호핀스)가 그의 롤을 맡아 덤보의 곁을 지킨다.
영화 ‘덤보’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덤보를 놀리고 괴롭혔던 서커스의 동료 코끼리 역시 영화에선 볼 수 없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코끼리와 인간 꼬마들이 악역을 나눠 가졌지만, 영화에서 악역은 온전히 인간뿐이다. 동물들은 철저하게 ‘동물’의 역할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손쉽게 욕할 대상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밀리, 조 남매와 함께 덤보를 지키려 하는 이들의 아빠 홀트(콜린 파렐 분)를 포함한 메디치 서커스 단원은 덤보를 돈 벌이로 악용하려 하는 악덕 사업가 반데비어(마이클 키튼 분)에 맞선다. 반데비어 측에 섰지만 쇼 비즈니스의 어두운 욕망을 보며 회의감에 젖는 공중 곡예사 콜레트(에바 그린 분), 성공과 인간애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메디치 서커스 단장 메디치(대니 드비토 분) 등의 다양한 인간 군상도 볼거리다.
이렇듯 인간의 선악 대비를 뚜렷하게 한 ‘덤보’에는 어린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제작진들의 고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워낙 원작 애니메이션이 어린아이들을 위한 것치고는 다소 기괴하고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실사화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감독인 팀 버튼이 앞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특유의 연출기법으로 실사화 하면서 팬덤 내에서조차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영화 ‘덤보’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러나 영화 ‘덤보’는 우려와 달리 가족영화가 응당 가져야 할 잔잔함을 유지한 채 흘러간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탓에 ‘어린이들의 트라우마 제조기’로 알려졌던 ‘분홍 코끼리 씬’도 생각보다는 평범하게 전개된다. 디즈니가 겨냥한 타깃이 ‘추억을 회상할 어른’이 아니라 온전히 어린아이들에게만 향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디즈니는 특유의 블랙 코미디를 살짝 가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오리지널 캐릭터 반데비어가 운영하고 있는 악의 총본산(?) ‘드림랜드’의 모티브는 누가 봐도 디즈니랜드다. 사업가의 어두운 욕망을 그대로 담아낸 그곳의 결말을 보고 있자면 ‘과연 경영진이 이 영화의 최종본을 확인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 팀 버튼에, ‘그’ 덤보다. 100% CG로 재탄생한 사랑스러운 아기 코끼리 ‘덤보’와 엄마 코끼리 ‘점보’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가족애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실제 댄서들의 환상적인 서커스 퍼레이드까지. 관객들을 놀라게 할 볼거리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전체 관람가, 111분. 27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