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아웃’보다 복잡하고, 강렬한 메타포의 향연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복선들”
영화 ‘어스’ 공식 포스터
조던 필 감독의 신작 ‘어스’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끊임없는 의심을 품게 만드는 것은 ‘11:11’이다. 예레미야서 11장 11절에서부터 시작된 이 상징은 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는 신호탄의 역할을 한다.
러닝 타임 내내 떨쳐버릴 수 없는 ‘미심쩍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관객들을 현혹시켜 결말마저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영화에 온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조던 필이 가져온 또 다른 마법이다.
‘어스’는 그의 전작 ‘겟아웃(2017)’과 마찬가지로 먼저 가족 드라마를 표면에 내세운다. 행복한 가정의 갑작스런 붕괴는 간단하게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릴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앞선 ‘겟아웃’에서는 행복한 가정의 붕괴와 숨겨진 뒷모습을 제3자인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줬지만, ‘어스’는 철저하게 이것이 ‘우리의 일’임을 강조한다. 영화의 제목이 ‘어스’인 이유다. ‘우리’라는 뜻의 영단어 ‘us‘ 일수도, ’미국(United States)’를 뜻하는 ‘US‘일 수도 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영화 ‘어스’ 스틸컷. 사진=UPI코리아 제공
극중 주인공 애들레이드(루피타 뇽오 분)는 ‘잃어버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해변에서 딸인 조라(샤하디 라이트 조셉 분)가 잠시 눈을 뗀 사이, 아들인 제이슨(에반 알렉스 분)이 말도 없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그에게는 악몽이다.
남편인 게이브(윈스턴 듀크 분)에게 이 같은 막연한 불안감을 털어 놓아도 요트 운전 외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남편은 농담으로 상황을 넘기려고만 한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의 밝은 분위기와 명랑한 배경음악 사이에서 애들레이드의 편집증적인 모습은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불안감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영화 속 시간으로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늦은 밤, 문 앞에 선 도플갱어 일가족 네 명이 애들레이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같은 얼굴의 사람을 만나면 죽는다”는 도플갱어의 미신과 마찬가지로 애들레이드 가족의 도플갱어는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삶을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움직인다.
영화 ‘어스’ 스틸컷. 사진=UPI코리아 제공
도플갱어가 출현한 뒤부터 관객들은 끊임없는 의심에 부딪쳐야 한다. 과연 지금 스크린 속에 나타난 애들레이드의 가족은 진정한 그들이 맞는지. 도플갱어의 도플갱어는 아닌지. 도플갱어가 출몰하는 세상에서 자신들만을 믿을 수밖에 없는 애들레이드의 가족과 그들마저 의심해야 하는 관객이 영화의 안과 밖에서 한데 어우러지는 셈이다.
조던 필은 앞선 ‘겟아웃’을 통해서도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호러 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바 있다. ‘어스’ 역시 다르지 않다. 과연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자들이 저지르는 짓을 내가 한 짓과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어스’에서 조던 필은 관객들에게 “‘우리’ 자신, 또는 ‘미국’을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스크린으로 보이는 표면 아래 다양한 메타포를 해석하는 것 역시 조던 필이 관객들에게 주는 과제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애들레이드 가족의 일상을 파괴하기 직전 반복해서 등장하는 ‘11:11’, 도플갱어를 암시하는 무한반사 거울과 유리창, 쌍둥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는 토끼 등은 영화의 결말을 본 뒤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할 복선들이다.
미국의 한 영화 평론 매체는 ‘어스’를 두고 “‘겟아웃’보다 훨씬 복잡하고 충격적이며, 더욱 시사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만큼 단 한 번의 관람만으로는 조던 필이 ‘어스’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해석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인 만큼, 완벽한 해석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표 값에 투자해 보자.
그리고, 루피타 뇽오의 신들린 1인 2역에 주목. 116분,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