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천성 인사’ 받은 공안라인 출신 일부 여의도행 고민…“황 대표와 친분 깊다” 인연 강조 검사도
이번 4·3 보궐선거를 유심히 지켜보던 곳이 있다. 바로 서초동(검찰)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었던 공안검사 출신 정점식 전 검사장이 이제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이다. 검사들의 관심은 정점식 전 검사장에 대한 관심에서 그치지 않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한 자유한국당 내 반응과 향후 대선 후보로서의 이미지가 어떤지를 묻는 질문도 적지 않다. 술자리에서 “요새 장관님은 어떠시냐”는 질문에 곧잘 나온다.
‘성공에 대한 야망’이 적지 않은 법조인들이라서일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당내 경선에 나설 때보다 대선 후보 지지율 경쟁에서 선두권으로 올라선 뒤, 황 대표와의 인연을 얘기하는 법조인들도 늘고 있다. 실제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법조인이기도 하다. 특히 앞선 박근혜 정권 당시 잘나가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오면서 ‘팽’을 당한 판사와 검사들은 최근 흐름을 지켜보면서 정치권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4·3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자유한국당 정점식 의원이 4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복심’ 정점식의 화려한 부활(?)
정점식 통영·고성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자가 누구인가. 정치 신인이지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검찰과 법무부 내 주요보직을 역임하는 동안 ‘복심’으로 불린 후배 검사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사법시험(30회)에 합격한 정점식 의원은 대검찰청 공안 1·2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2차장, 대검 공안부장(검사장급) 등을 거친 ‘공안통(通)’이다.
선배 공안통이었던 황교안 대표와는 특히나 각별하다. 공안검사 선·후배로 함께 사건을 처리했다. 특히 지난 2014년 황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있을 때 위헌정당·단체 대책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및 변론 전 과정에 참여하며 통진당 해산을 주도했다.
정점식 의원은 “통진당 주 세력들이 대학생 시절 학생, 노동운동을 하다가 원내(국회의원)로 입성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그 해산까지 내가 함께했다”고 주변에 스스로의 검사 생활을 평가했는데, 공안통 이미지가 강한 탓에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옷을 벗어야 했다.
4·3 재보궐 선거대책회의 당시 모두발언을 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박은숙 기자
# 통영 출마도 황교안 덕분?
옷을 벗고 나간 뒤, 정치 출마를 염두에 두고 움직였던 정점식 의원. 황교안 전 장관이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정치 신인임에도 유력한 통영·고성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됐다. 실제 공천장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황 대표의 총애 때문 아니냐는 말도 일각에서 나왔을 정도.
하지만 정 당선자를 잘 아는 지인들의 설명은 다르다. 외부의 시선을 감안한 황교안 대표가 되레,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것.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당초 당내 경선 없이 그냥 공천을 해준다는 관측이 더 많았었는데 황교안 대표가 ‘밀어준다’는 시선을 의식해 여론조사를 거친 당내 경선을 해야 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복심’이라고 하지만 크게 도와준 게 없다는 얘기인데, 공안 라인의 한 검사 역시 “황교안 선배가 그렇게 후배라고 챙기고 키워주는 타입이 아니다”라며 “정점식 선배도 그런 황교안만의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이런 일로 실망하거나 섭섭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인사성 제안’에도 ‘NO’하지 않아
하지만 이번 정점식 의원의 ‘국회 입성’을 놓고 서초동에서는 “나도 한 번”이라는 생각을 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좌천성’ 인사를 받은 검사들, 그중에서도 ‘공안 라인’ 출신들의 분위기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 문재인 정부 때 공안 라인으로 몰려 옷을 벗은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실제 자유한국당 소속 인사로부터 제의를 받았다”면서도 “제의가 다 진지한 제의였겠느냐, 다만 황교안 선배가 계시니 좀 더 고민하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옷을 벗은 한 판사 출신 법조인 역시 “아는 분을 통해 제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잠시 고민을 했지만, 능력이 부족한 부분인 것 같아 거절했다. 하지만 잠시 ‘내 억울함을 풀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검사 시절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정점식 의원. 2005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이던 황 대표와 2012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였던 정 의원의 수사결과 발표 당시 모습. 일요신문 DB
공안 경력이 있는 한 검사는 “황교안 선배와 함께 근무한 각별한 사이다.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묻는다”라고 스스로를 설명하기도 했다. 재경지역의 간부급 검사는 “정치를 하려고 검사라는 직업을 그 경력의 과정으로 선택하고 온 사람들도 있다”며 “최근 인사에서 계속 물을 먹고 있는 공안 라인 검사들일수록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을 것이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 국회에 넘쳐나는 법조인 보면 ‘그럴 만하네’
실제 국회의원들의 출신 직업군을 보면 이런 ‘동상이몽’이 이상하지만은 않다. 이번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황교안(검사)·김진태(검사)·오세훈(변호사) 후보가 모두 법조인 출신이고, 앞선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홍준표 전 대표 역시 검사 출신이다. 대법관 출신 이회창 전 대표 시절 입성한 판사 출신의 나경원 의원은 이미 원내대표에 포진해 있다. 판검사 출신이 한국당 지도부를 사실상 장악했다.
실제 이번 보궐선거로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변호사 출신은 49명이 됐다. 16.3%로, 국회의원 6명 가운데 1명은 법조인이 차지한 셈이다. 검사 출신이 18명, 판사 출신은 9명이며, 순수 변호사는 22명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전체 의원 중 법조인 출신이 20명(15.6%)에 달할 정도로 많다. 한국당과 비교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지만, 검사 출신도 금태섭 백혜련 송기헌 조응천 등 4명이나 되고, 판사 출신은 추미애 진영 박범계 등 3명이다. 바른미래당도 김관영 원내대표 등 6명이 사법시험을 통과한 의원들일 정도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일하다 보면 입법 과정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고, 또 변호사를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실제 정치에 뜻이 있는 한 현직 법조인은 “조직에서 나가고 난 뒤 2~3년 정도 변호사를 하면서 정치를 할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 있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얘기하기도 했다. 갈수록 엄격해지는 정치자금법으로 인해 자금을 마련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법조인들의 국회 진출이 더 유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