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흠집난 강남서에 맡길 수 없다’ 서울청 광수대로 사건 이첩…유죄 입증은 쉽지 않을 듯
사정당국 안팎에서 나오는 ‘버닝썬 나비효과’ 이론이다. 경찰과 강남 클럽 버닝썬과의 유착관계가 확인되면서 궁지에 몰린 경찰이 봐주기 수사를 할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실제 경찰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의혹이 제기되자 언론 보도 다음날 곧바로 병원을 찾아가 자료를 확보하는 등 적극 수사에 나서고 있다. 통상 2~3일 정도 언론 보도 흐름을 지켜보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은 중독성이 강해 2011년 마약류로 지정된 향정신성의약품이지만, 마약류 치고는 처벌이 약하다. 초범의 경우 상습성이 입증되지 않았을 경우 벌금형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실제 지난 2013년 배우 박시연, 이승연, 장미인애 씨 등은 2년여 동안 적게는 95회, 많게는 185차례 걸쳐 상습 투약한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 형을 받았다.
언론 보도 직후 경찰이 재빠르게 이부진 사장의 혐의 입증에 박차를 가하는 것을 두고 의아하다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정당국 안팎에서는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서 프로포폴이 허술하게 관리됐던 부분이 곪고 곪다가 터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간호조무사 입 통해 터진 ‘불법 투약’ 의혹
언론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3월 20일. 강남 청담동에 위치한 H 성형외과에서 이부진 사장이 불법적으로 프로포폴을 투약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H 성형외과 소속이었던 간호조무사의 제보 인터뷰 형식으로 의혹은 제기됐는데, 그는 “이부진 사장이 지난 2016년 한 달에 최소 두 차례 프로포폴을 투약했고 병원은 이 사장의 투약 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 공식 답변을 통해 “2016년 왼쪽 다리에 입은 저온 화상 봉합 수술 후 생긴 흉터 치료와 눈꺼풀 처짐 수술(소위 안검하수)을 목적으로 해당 병원을 찾은 것은 사실이지만, 보도처럼 불법 투약을 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3월 22일 오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했다는 의혹을 받는 강남의 H 성형외과에서 강남경찰서 경찰들이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 버닝썬 사건의 불똥? 궁지 몰린 강남서 곧바로 병원 찾아
클럽 버닝썬 사건 수사가 진행될 때마다, 경찰과 클럽 간의 유착관계가 드러나며 궁지에 몰렸던 강남경찰서.
관할 지역인 청담동 소재 산부인과에서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강남경찰서는 보도 다음날인 21일과 22일에 걸쳐, 보건소 등과 함께 투약 장소로 지목된 병원을 찾아 진료기록부와 마약부 반출입대장 등의 임의제출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이 협조를 거부하자 압수수색으로 강제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3월 23일,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병원 내부에 들어가 이부진 사장 및 프로포폴 관리 대장 등 자료 일체를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병원 측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련 장부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병원에서 확보한 자료들을 전반적으로 비교·대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언론 보도가 나와도 2~3일 정도는 뭉개던 예전 모습과는 달라진 대응이었다. 클럽 버닝썬으로 ‘불똥’을 맞은 경찰이, ‘경찰답지 않게(?)’ 적극적으로 수사를 벌인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보통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경찰은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마자 그 다음날 곧바로 수사를 시도해 놀랐다”면서도 “수사 주체에 강남경찰서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아 버닝썬 때문에 궁지에 몰려서 강도 높게 수사를 하는구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 역시 “최근 클럽과 경찰 사이 유착 관계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고, 입건된 사람이 5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나. 많으면 10명도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며 “그 중심에 있는 게 강남경찰서다. 강남서 분위기가 엄청 흉흉한데 봐주기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강도 높고 신속하게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보도 다음날 움직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임준선 기자
앞선 경찰 관계자는 “강남서가 수사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버닝썬 사건과 승리-윤 아무개 총경 유착 의혹 등으로 경찰 조직의 명운이 걸린 상황이지 않냐”며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강남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이부진 사장 처벌 가능성은? “만연한 관리 문제 심각”
그렇다면 이부진 사장의 처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경찰, 검찰 등 사정당국 내에서는 ‘2년 전 사건이라 어떻게 수사를 하느냐에 달렸다’면서도 “최근 강남 일대 프로포폴 유통 및 관리 부실 흐름을 보면 실제 불법 투약이 이뤄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첫 보도에 응한 간호조무사는 해당 병원에서 “마약류 관리 대장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는데, 경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 직원들의 카카오톡 대화방 관련 디지털 자료를 포렌식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은 허위로 프로포폴 수급 내역을 기재한 뒤, 빼돌린 프로포폴로 이부진 사장 등에게 투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청 관계자는 “강남 성형외과 일대에서는 프로포폴을 맞지 않아도 되는 진료 과정에, 예를 들어 발을 치료하면서 수면제용으로 주로 쓰는 프로포폴을 썼다고 기록하고 실제 환자에게 처치하지 않은 뒤 이를 빼돌려 VIP 등에게 불법적으로 놔주거나 판매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며 “이번 건도 같은 맥락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불법 유통, 투약되던 프로포폴 관리 문제가 곪다가 터진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건의 불법성을 입증하려면 쉽지 않은 과정들이 추가로 확인되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도 투약을 부인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해당 병원이 어떻게 불법적으로 장부를 조작해 ‘기록에 없는 프로포폴’을 확보한 뒤 이를 이부진 사장에게 투약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며 “해당 의사도 부인하고 이부진 사장도 부인하고 다른 간호사들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면 남는 것은 제보자의 진술뿐이다. 법정에서 다툼의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