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에 걸친 의혹 제기, 마지막 범행만 시인…“상습이냐 1회성이냐”
10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법조로에 위치한 수원법원종합청사에서 마약류 투약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 (미국명 로버트 할리)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그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혐의여서 그런지 대중들은 “아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쓴 것이 아니냐”고 추리하기에 이르렀다. 로버트 할리의 막내아들인 하재익은 아버지와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해 얼굴을 알린 유명인이다. 그런 그가 로버트 할리의 마약 투약 기사가 나오자 돌연 SNS를 삭제하면서 이 같은 의혹에 휩싸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하재익에게 제기된 마약 의혹은 신빙성이 전무하다. 당초 로버트 할리의 마약 투약 보도가 이어지자 그의 지인인 마크 피터슨 브리검영대 명예교수가 “누군가에게 마약 혐의가 있는데 그것을 할리가 뒤집어 쓴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게 하재익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목하면서 의혹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서는 로버트 할리의 부인 명현숙 씨가 직접 “의심할 가치도 없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이번 마약 사건은 로버트 할리만의 온전한 책임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지난 8일 로버트 할리가 체포되면서 그의 이전 행적들까지 속속 드러난 상황이다. 로버트 할리에게는 이미 2017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마약 혐의로 입건된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로버트 할리. 사진=MBC 라디오스타 캡처
이 시기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와 안양동안경찰서가 각각 로버트 할리를 마약 투약 혐의로 조사했다. 앞서 마약 혐의로 입건된 한 남성이 “로버트 할리와 함께 마약을 투약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 시기 로버트 할리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소변 검사에서 별 다른 약물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머리를 삭발하고 신체 주요 부위를 왁싱하는 등 제모 상태로 나타나 모발 검사가 불가능했던 탓이었다.
안양동안경찰서의 경우는 로버트 할리의 몸에 남아 있던 가슴 잔털을 뽑아 검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때도 약물 반응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마약을 했다는 실물 근거를 찾지 못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약수사대 한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약을 안 한 사람이었다면 수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런 번거로운 행위를 할 필요가 있었겠나”라며 “마약 사범 하나가 잡히면 그 사람 주변인들 사이에서는 ‘염색을 해라’ ‘체모를 다 밀고 뽑아라’ 라는 게 수사를 피하는 팁으로 돈다. 그것을 알고 있었단 것 자체가 마약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서는 경찰이 ‘공범의 주장’이 아니라 실물 근거를 잡고 움직였다. 같은 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31)의 마약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로버트 할리의 마약 거래 실마리를 포착한 것이다.
로버트 할리. 사진=임준선 기자
이때는 황하나 씨가 폭로했던 “필로폰을 함께 투약한 연예인 A 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던 때다. 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로버트 할리의 마약 소식에 “황하나와 함께 마약을 했다는 A 씨가 로버트 할리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다행히 황하나의 전 연인인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지난 10일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황하나가 지목한 A 씨는 제가 맞다”고 인정하면서 의혹은 사그라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달 중순께 로버트 할리가 마약 판매상으로 추정되고 있는 한 은행 계좌에 현금 수십 만 원을 무통장 입금한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로버트 할리 역시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 마약 판매 광고를 보고 판매자와 SNS로 연락해 지난달 중순 필로폰을 구입해 이달 초에 투약했다”고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로버트 할리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화장실 변기 뒤에서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사기 1개도 압수했다 소변 간이 시약 검사에서도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왔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모발, 소변을 통한 정밀 검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지난해와 2017년 마약 사범의 진술을 토대로 로버트 할리의 ‘상습 마약 투약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계획이다. 로버트 할리가 시인한 것은 최근의 사건일 뿐, 기존에 그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의혹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로버트 할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돼 그는 앞으로는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게 된다.
한편, 로버트 할리를 옹호하며 그의 아들 하재익의 마약 의혹을 제기했던 마크 피터슨 교수는 12일 현재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SNS 글을 삭제한 상태다. 경찰은 별도로 피터슨 교수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