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을 전공한 A 씨(29)는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광운대 빙상장에서 2013년 3월 8일 오전 11시 30분쯤 벌어진 사고로 척추가 손상돼 반신불수가 됐다. 앞서 가던 사람의 스케이트 날이 패인 얼음에 걸려 자신의 목을 튀어 오르자 이를 피하려다 미끄러져 빙상장 벽에 부딪쳤다. 국제 규정에 맞지 않는 얇은 패딩은 A 씨가 받을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 첫 번째 불기소 처분은 재수사 뒤 유죄가 나왔다
2013년 10월 몸을 회복한 뒤 된 뒤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광운대 빙상장 시설관리 책임자였던 한 아무개 씨(56) 등 4명을 북부지검에 고소했다. 사건을 내려 받은 노원경찰서는 얇았던 패딩 펜스와 고르지 못한 빙질을 원인으로 보고 기소 의견을 적어 사건을 북부지검에 송치했다.
그런데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광운대가 제출한 증거자료를 인용했다. 문제는 검찰이 인용한 증거 자료가 조작 의혹을 받는다는 점이다. 파악이 쉬운 수준의 조작이었다. 불기소이유서에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공지한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패딩과 선수의 안전 규정’을 보면 ‘국제대회’는 국제빙상경기연맹 규정에 따라 40~60㎝여야 한다고 하지만 ‘일반대회’는 20~40㎝로 규정하고 있다”고 적혔다.
광운대가 검찰에 제출한 이 안전규정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작성한 원본이 아니라 일부 내용이 바뀐 수정본이었다. 광운대가 제출한 수정본에는 ‘일요신문’이 입수한 원본과 달리 한 문장이 추가돼 있었다. 원본에는 “국제대회는 국제빙상경기연맹 규정에 따라 40~60㎝여야 한다”는 내용만 있었다. 반면 광운대의 수정본에는 “일반 대회는 패딩의 높이는 링크보드의 높이와 같게 하여야 하고 폭은 20㎝/40㎝로 구분할 수 있고 길이는 200㎝이어야 합니다”라는 문장이 추가됐다. 광운대 쪽 누군가가 이 문장을 추가한 뒤 조작된 수정본을 검찰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관련 기사: 피해자는 반신불수 됐는데…광운대 조작 의혹 서류만 믿은 북부지검)
쉽게 파악되는 조작이지만 임 아무개 당시 북부지검 담당 검사(여•33)는 조작 의혹을 받는 광운대의 제출 증거를 기준으로 피의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가 없다며 2014년 12월 전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5년 4월 이선훈 서울고검 검사는 이 사건이 이상하다고 판단해 재수사 명령을 내렸다. 그 사이 사건은 원래 담당이던 임 검사 손을 떠나 김은경 북부지검 검사 손으로 이관됐다. 김 검사는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한 뒤 기소했고 2018년 1월 광운대 쪽은 1심 법정에서 과실치상의 책임이 있다며 유죄 판단을 받았다.
# 두 번째 불기소 처분은 재수사 뒤에도 무죄가 나왔지만...
A 씨는 과실치상 혐의 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광운대 쪽에서 검찰에 제출한 안전 규정 수정본의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2016년 10월 사문서 위조 및 행사,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한 씨를 또 다시 고소했다. 그런데 북부지검은 이를 불기소 처분했다. 한 씨에게 죄가 없다고 봤다.
불기소 이유서에 따르면 북부지검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안전 규정 원본은 국제 안전규정을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번역한 문서로 “작성자가 전혀 기재돼 있지 않아서 위조 및 변조 여부를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한 씨는 검찰 조사에서 ‘안전 규정을 만든 사람은 편 아무개 씨고 이 아무개 씨를 거쳐 받았다. 내가 조작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편 씨와 이 씨의 진술, 전자우편 등에 의하면 이 안전규정은 편 씨가 납품용으로 작성해 이 씨에게 넘겼고 이 씨가 다시 한 씨에게 줬다”며 한 씨가 이 씨에게 넘겨 받은 잘못된 안전 규정을 “악의적으로 사용했더라도 적극적으로 허위의 증거를 조작해 제출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2017년 3월 최인호 고검 검사는 이 사건을 다시 살렸다. 한 씨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수사하라고 북부지검에 일렀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 세 번째 불기소는 또 다시 재수사 명령을 받았다
업무상 과실치상이 가까스로 기소된 뒤 진행된 1심 재판 과정에서 광운대 빙상장 관계자는 조작 의혹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계속했다는 의혹에 빠졌다. 참다 못한 A 씨는 2016년 10월 광운대 빙상장 코치 황 씨(55)를 위증, 증거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하는 동시에 과실치상 소송 진행 때 고소한 바 있는 한 씨와 조무성 학교법인 광운학원 이사장(77)도 증거 위조 교사 및 위조 증거 사용 혐의로 고소했다.
이 사건의 쟁점 가운데 하나는 얼음판을 깨끗하게 하는 정빙 작업이었다. 빙상장에서는 50분마다 한 번씩 정빙 작업을 하는 게 원칙이다. 빙판이 날카로운 스케이트날에 계속 갈리다 보면 패인 얼음 사이로 스케이트날이 걸려 뒤에 달려오는 선수의 목으로 튕겨 나갈 위험이 생기는 까닭이다. 게다가 조각난 얼음은 빙상선수의 눈에 치명적이기도 하다.
황 씨가 제출한 2013년 3월 대관 신청서는 3월 30일에 작성됐다. ‘신청’서가 달이 다 끝나가는 날쯤 적힌 셈이다.
광운대는 추가적으로 빙상장 2013년 3월 대관 시간표를 증거로 제출하며 A 씨가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오까지 1시간 30분만 타고 그에 앞선 오전 9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문샘’이 탔다고 주장했다. ‘문샘’은 ‘문 선생님’의 약자로 강사 문 아무개 씨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문 씨가 작성한 2013년 3월 아이스링크 대관 신청서에 따르면 문 씨의 빙상장 대관 시간은 총 6시간이었다. 대관 시간표는 매주 일요일 1.5시간씩 월 4회 총 6시간이 문 씨의 실명인 문○○으로 채워져 있었다. 대관 시간표에선 특이한 점이 하나 발견됐다. 문 씨의 실명인 문○○으로 신청된 6시간 외 ‘문샘’이란 이름으로 매주 금요일 1시간씩 총 4시간이 추가돼 있었다.
문 씨에게 대관된 6시간은 실명 3글자가 적혔고 무료 대관된 4시간 자리에는 ‘문샘’이 적혔다. 오른편을 보면 칸이 작을 때 광운대는 글자수를 줄이지 약자를 쓰지 않는다.
문 씨는 ‘추가된 4시간’에 대한 대관비를 내지 않았다. 이사장의 손녀를 가르치던 시간이었던 까닭이었다. 문 씨에 따르면 이사장 손녀를 가르칠 땐 대관비가 면제됐다. 문제는 대관 시간표에서처럼 정해진 날 가르친 게 아니었다. 문 씨는 “당시 이사장의 손녀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이사장의 딸을 가르칠 때는 대관비를 따로 내지 않았다. 갑자기 대관이 펑크가 나는 날에 가서 강습을 했을 뿐이었다”며 “이사장의 손녀를 가르칠 땐 대관 시간표처럼 6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했다”고 말했다.
광운대는 문 씨의 과거 특이한 강습 이력을 가지고 증거 조작에 사용했다는 의혹에 또 빠졌다. 문 씨가 밝힌 강습일은 수요일이었다. 문 씨는 “광운대 빙상장에서 오랜 기간 강습을 해왔는데 늘 수요일에만 강습을 했다”고 말했다. 광운대가 검찰에 낸 대관 시간표엔 문 씨의 강습일이 금요일과 일요일이었다. 게다가 ‘문샘’이란 표기는 이런 의혹을 더 짙게 만든다. 광운대는 보통 대관 시간표를 작성할 때 칸이 좁으면 약자를 쓰는 게 아니라 본명의 글자 크기를 줄인다. 유독 문샘의 추가된 4시간만 작은 글자의 본명이 아닌 약칭이 적혔다.
조작 의혹은 이게 다가 아니다. 광운대가 제출한 정빙일지에서도 이상한 흔적이 발견됐다. 이 정빙일지에는 사고 당일인 2013년 3월 8일 오전 8시부터 오전 9시 30분까지가 광운중의 대관시간이었고 오전 9시 30분부터 오전 10시 30분까지 문 씨 이름으로 채워져 있었다. A 씨의 코치인 황 씨 대관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오였다.
문제는 광운중의 대관시간인 오전 9:30 표기가 10:00 위에 덮어쓴 것 같이 보이는 흔적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문 씨의 대관 시간 09:30에 나온 숫자 9자 표기 방식과 광운중의 대관시간 09:30의 9자 표기 방식은 반대 방향으로 작성됐다. 3자 표기도 다른 시간대에 비해 유독 광운중의 대관 시간 09:30의 3자만 하단이 길게 적혔다. 누군가 이미 표기된 빙상일지 위에 덮어 쓰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외에 대관 시간표상 문 씨의 강습 일정과 정빙일지에 있는 문 씨의 강습 일정도 현재 모두 제각각인 상황이다. 광운대가 검찰에 낸 낸 빙상장 관련 자료 대부분에서 신빙성에 의문부호가 붙는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08:00~09:30은 08:00~10:00 위에 다른 숫자를 덮어쓴 것처럼 보인다. 9의 방향도 제각각이다.
광운대가 내부적으로 작성한 사고 보고서. 대관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사건을 담당한 민 아무개 북부지검 검사(여•33)는 광운대 쪽이 증거 위조 등을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2018년 8월 이 사건을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또 다시 고검이 사건을 바로 잡고 있다. 5일 김한수 고검 검사는 또 다시 북부지검에게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보라며 재수사를 명령했다.
# 반신불수된 선수의 흉터에 또 상처 내는 광운대 관계자
A 씨는 반신불수라는 신체적 흉터 위에 정신적 상처를 하나 더 받았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광운대 빙상장 코치 황 씨는 사고 당일이었던 2013년 3월 8일 오전 11시쯤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대한체육회에 있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하는 회의 때문이었다. 그는 “A 씨가 다쳤을 때 빙상장에 도착했다. 11시 40분~50분 쯤이었다. 보호 매트 위에 A 씨가 올라가 있었다. 내가 도착한 뒤 5분~10분 뒤 구급차가 도착했다”고 조사에서 말했다.
구급대가 현장 도착한 건 당일 오전 11시 36분이었다. 황 씨가 아무리 서둘러도 구급대가 오기 전 현장에 도착하기엔 무리였던 시간대였다. 광운대 빙상장이 대한체육회에서 최단거리로 16.45㎞나 떨어져 있는 까닭이다. 금요일 오전 11시 기준 네이버 실시간 교통 정보에 따르면 40분쯤 걸린다. 오전 11시에 열렸던 회의에 참석도 안 하고 바로 출발했어도 황 씨가 산술적으로 광운대 빙상장에 도착할 수 있었던 시간은 오전 11시 40분 이후다.
황 씨의 말과 달리 A 씨는 사고 직후 움직이지도 못해 보호 매트가 아니라 빙판에 누워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한 목격자에 따르면 황 씨는 A 씨가 사고를 당한 뒤 구급대에 실려 병원으로 떠날 때까지 현장에 없었다. A 씨는 “황 씨가 나중에 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A 씨는 “황 씨가 현장에 있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수사 과정에서 말한 자신의 발언 신빙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현장에 있었다고 하면 수사기관이 전체적인 정황을 가장 잘 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황 씨는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광운대에 유리한 증거와 증언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황 씨는 사고 직전까지 A 씨를 가르쳤던 스승이었다. 사고 이전 A 씨는 황 씨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A 씨는 더 이상 황 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황 씨’라고 부른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