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이 4월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마약 혐의 관련 기자회견을 자청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준필 기자
4월 10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박유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소속사인 씨제스엔터테인먼트(씨제스) 관계자는 “그동안 연락이 없다가, 오늘 수사기관에서 (박유천이 A 씨로) 거론된 것이 맞다고 연락을 받아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제기된다. 정말 경찰이 소속사에 연락을 한 것일까. 당시 경찰은 철저히 A가 누군지를 함구했다. 경찰이 이처럼 연예인이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끝까지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사례는 드물다. 공식 확인은 아닐지라도 출입 기자들에겐 어느 정도의 정보를 흘려주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끝까지 함구했다. 심지어 박유천이 기자회견을 한 뒤에도 공식 확인은 없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일주일가량 뒤인 16일, 경찰은 ‘말’이 아닌 압수수색이라는 ‘행동’을 통해 ‘A가 박유천’임을 공식화했다. 이런 행보를 보인 경찰이 굳이 10일 오전 소속사에 “A가 박유천”이라는 사실을 알렸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굳이 경찰이 그런 정보를 소속사에 알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내용을 전달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바로 ‘체포영장 신청’ 공식 통보다. 당시 경찰은 이미 박유천의 마약 관련 혐의를 대부분 확인, 체포영장을 신청한 상태였다. 이 사실을 소속사에 알리며 체포에 협조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했을 가능성은 크다.
그렇지만 체포영장을 검찰이 반려했다. 혐의 입증이 부족해 수사를 보강하라는 차원은 아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정상적인 소환 조사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검찰이 체포영장을 반려한 것이다. 만약 이날 기자회견이 일단 체포영장 발부부터 막아야 한다는 의도였다면 100%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박유천이 4월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박유천이 그만큼 철저히 대비를 했다고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검찰의 한 베테랑 마약 수사관은 “모발과 눈썹은 탈색과 염색을 반복하고 체모 대부분은 제모했다고 들었다”라며 “마약 사범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이런 경우 수사관들이 어려움을 겪긴 하지만 100% 검출이 안 되는 완벽한 방법이란 없다”고 설명한다. 박유천의 경우 다리털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 조사 이후 박유천이 염색과 제모 등으로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부인한 박유천 측은 “경찰이 제모하지 않은 다리에서 충분한 양의 다리털을 모근까지 채취해 국과수에 정밀검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모근까지 채취한 충분한 양의 다리털’은 양성반응이라고고 답했다.
결국 기자회견에서의 당당함은 정말 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 증거 인멸에 대한 자신감 때문으로 비춰지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또한 이런 당당함은 17일과 18일, 그리고 22일에 이뤄진 3차례 조사에서 모두 관련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상황으로 연결됐다. 기자회견 덕분에 체포영장은 피했지만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은 크게 높이는 악효과를 낸 것.
결국 소속사 씨제스는 24일 박유천과의 전속 계약을 해지하며 그는 연예계를 은퇴할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씨제스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연예관계자는 “기자회견 당시에도 씨제스 내부에도 불안감이 팽배했었다. 어디까지 박유천의 얘길 믿어야 하는 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내부에서도 정말 마약을 한 거라면 박유천의 연예계 활동은 정말 끝이라고 보고 있었다. 임박한 최악의 상황은 피하기 위해 급하게 기자회견까지 준비했던 것인데 그게 더 암담한 상황을 야기하게 돼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씨제스는 공식입장에서도 “박유천의 진술을 믿고 조사 결과를 기다렸지만 이와 같은 결과를 접한 지금 참담한 심경입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