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마약 수사의 내밀한 확장성…루머 속 연예인 ‘영원히 고통’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는 방송인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 임준선 기자
이미 2017년과 2018년에도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던 로버트 할리는 머리를 짧게 깎고 체모를 모두 제모한 상태로 경찰에 출석했다. 모발 검사가 불가능해 가슴 등에 남은 털로 검사를 진행했지만 음성 반응이 나왔고 결국 사법처벌을 피했다. 그러다 최근에야 마약 투약이 적발된 것.
연예관계자들이 이 소식에 주목한 까닭은 바로 2000년대 초중반에 나돌았던 한 루머 때문이다. 당시 몇몇 연예인이 마약 투약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여성 스타 A 관련 루머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이니셜 보도에는 A의 마약 투약이 사실이며 곧 검찰에 소환된다는 내용까지 담겼다. 그리고 결국 A는 비공개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A는 수사망에서 벗어났고 루머도 사라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몇 달 뒤 제기된 새로운 루머다. A가 음성 판정을 받은 까닭을 둘러싼 루머였는데 체모 채취를 위해 A를 조사한 여자 수사관이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단발이었던 A의 머리는 이미 염색한 상태였다. 그런데 체모를 모두 탈색해 은회색이었다는 것. 당시에는 영화 ‘동감’의 유지태 헤어스타일 등 은회색 탈색이 유행했었다.
요즘처럼 왁싱이 일반화되기 전엔 그 시절엔 정말 마약사범들이 ‘전신 체모 탈색’을 시도하곤 해 A도 그랬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더해진 루머일 수 있다. 또한 당시에도 마약 사범들이 전신 제모를 하곤 했는데 누군가 재미를 더하려 ‘탈색’했다고 지어낸 루머일 수도 있다.
A의 마약 투약 관련 루머는 엄청난 관심을 유발했지만 결국 ‘사실무근’ 도장을 받았다. 이후 불거진 ‘전신 체모 탈색 루머’는 사실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영구미제’로 분류됐다. 당시 연예계에서 이 루머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까닭은 ‘아무렴 그렇게까지 했겠냐’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버트 할리를 통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정말 그런 방식으로 두 차례나 마약 수사망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후 박유천 역시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01년 12월 26일 청담동 소재의 한 연예기획사에서 김민종 엄정화 이소라 등이 ‘마약투약설’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A의 경우처럼 마약 혐의 연루 연예인과의 인연 등으로 마약 투약 오해를 받으며 관련 루머에 휘말리고 심지어 수사기관 조사까지 받는 연예인은 생각보다 많다. 지난 2001년에는 아예 김민종 엄정화 이소라 등 유명 스타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검찰에 마약검사를 자진 요청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시 싸이, 정찬 등이 연이어 마약에 연루되면서 연예계에는 ‘마약 괴담’이 나돌았다. 여기에 언급돼 한 매체에 사진까지 실리자 해당 매체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뒤 기자회견을 연 것. 결국 검찰은 이들의 자진 마약검사 요청을 받아줬고 모두 마약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결국 그 연예인이 박유천으로 밝혀지면서 관련 루머는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물론 박유천이 실제로 황하나에게 마약을 권유하고 투약했는지 여부는 경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그렇다고 최근 불거진 마약 괴담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마약 수사의 특성이 갖는 내밀한 확장성 때문이다. 마약 공급책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마약을 구입한 또 다른 연예인이 거론될 수 있고 마약 투약 연예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함께 투약한 또 다른 연예인, 내지는 자신에게 마약 공급책을 소개해주거나 마약 구입 방법을 알려준 또 다른 연예인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이런 수사 방식은 비단 연예인뿐 아니라 마약 사범에 대한 검경의 일반적인 형태다. 이런 수사 방식의 특성이 연예계 마약 괴담의 근거지가 되곤 하지만 실제 줄줄이 마약 혐의 연예인이 검거된 사례는 거의 없다. 루머만 양산한 채 끝나기 때문이다. 한 중견 연예관계자의 말이다.
“마약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엄청난 루머만 양산된다. 루머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지만 괜한 루머에 휘말려 수년이 지난 뒤에도 일부 대중들은 마치 루머 속 연예인이 정말 마약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비슷한 피해를 입었는데 그때 같이 일하던 연예인은 마약은 구경도 못해봤고 술 담배도 못하는 친구였는데 마약 이미지가 오래 지속됐다. 너무 화가 나서 그런 소문의 근거지가 된 마약 연루 연예인 소속사 관계자하곤 한동안 연락도 끊었을 정도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