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란 이성경 주연 범죄자 응징 ‘대리만족’…젠더 갈등 비화는 안타까워
5월 9일 개봉하는 영화 ‘걸캅스’가 최근 사회적인 논란이 되는 디지털 성범죄와 클럽 그리고 신종 마약 등 소재를 작품에 담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클럽 버닝썬을 중심으로 벌어진 각종 범죄를 비롯해 그와 연관해 일어난 가수 정준영과 최종훈 등 유명 연예인의 스마트폰 단체 대화방 불법 영상 공유가 떠오르는 상황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마치 버닝썬 등 사태를 빗대 영화화한 듯한 인상까지 남긴다. 워낙 닮은 탓에 ‘현실 예고 영화’라는 평가가 따른다.
배우 라미란과 이성경이 주연한 ‘걸캅스’는 전직 열혈형사 박미영과 신참형사 조지혜가 우연히 디지털 성범죄 피해 여성을 만난 뒤 그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내용의 수사극이다. 이들의 동료인 경찰서 민원실 직원 장미가 합류, 여성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악랄한 성범죄를 통쾌하게 잡아낸다. 라미란은 여성기동대 출신의 형사 미영 역을, 이성경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번번이 사고를 치는 신참 지혜 역을 각각 맡았다. 그룹 소녀시대 출신 연기자 최수영은 장미 역을 맡아 유쾌한 콤비 플레이를 펼친다.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 버닝썬·정준영 사건과 ‘빼닮은’ 이야기
‘걸캅스’의 기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3년 전이다. 촬영은 지난해 마쳤다. 올해 1월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클럽 버닝썬 사태와 정준영 등 유명 연예인의 불법 동영상 사건보다 이전에 기획은 물론 촬영까지 마친 작품이다. 하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에 영화가 담은 내용이 실제 사건들과 절묘하게 닮아 시선을 떼기 어렵다. ‘클럽에서 신종마약을 이용해 벌어지는 여성 성범죄’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까지 영화에 담겼다. ‘현실 예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획이 먼저 시작됐고, 촬영까지 마친 뒤 버닝썬과 정준영 사태가 터진 만큼 영화가 실제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공교롭게도 논란이 되는 시기와 맞물려 개봉하는 탓에 여러 시선을 받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남성들이 클럽 룸으로 여성을 초대해 몰래 마약을 투약하게 한 뒤 성범죄를 저지르는 설정, 그 범죄의 과정을 몰래 촬영해 유포하는 과정은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버닝썬, 정준영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
연출을 맡은 정다원 감독은 “그만큼 디지털 성범죄는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3년 전 여성 콤비 형사물 연출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혹은 거친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는 감독은 “당시 뉴스와 고발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다루던 디지털 성범죄에 주목하게 됐다”는 과정을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 기획이 이뤄질 무렵은 이른바 ‘소라넷’ 등 불법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둘러싼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활발할 때이기도 하다. 그 심각성에 대해서도 여러 시사고발프로그램을 통해 공론화가 활발히 진행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짚은 정다원 감독은 “디지털 성범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약 범죄 가해자를 검거하더라도 처벌이 미약할뿐더러, 잡기도 어렵다더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걸캅스’ 제작진은 “영화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강조했다. 현실에선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영화에선 범죄자들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만큼 관객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실 ‘걸캅스’는 작품 자체로만 본다면 유쾌한 오락영화다. 선후배 형사이자, 올케와 시누이 사이라는 설정으로 엮인 극 중 라미란과 이성경은 탁월한 호흡을 자랑하면서 한국영화에서는 드문 여성 투톱 형사물을 완성했다. 영화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도 다양해 코미디영화로서의 매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걸캅스’는 개봉을 앞두고 유독 날선 시선을 받고 있기도 하다. 영화 제목이 ‘걸캅스’라는 사실, 여성들이 연대해 남성 범죄에 맞서는 내용, 예고편에서 짧게 드러난 남성 캐릭터 희화화 등으로 인해 일부 세력으로부터 엉뚱한 여성혐오의 공격을 받는 이른바 ‘젠더 갈등’의 이슈에도 휘말린 탓이다.
이런 반응은 올해 3월 개봉한 여성 히어로영화 ‘캡틴 마블’이 당한 ‘평점 테러’ 피해 등과 비슷하다. 그동안 많은 남성 투톱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판이하다는 점에서 ‘젠더 갈등’ 이슈의 허상이 드러난다는 지적도 있다.
‘걸캅스’에 참여한 배우들은 주변의 다양한 의견을 외면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주인공을 성별의 시선이 아닌 인물 그 자체로 봐 달라”고 답하고 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걸그룹 이미지를 벗고 연기자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한 최수영은 “현실에서 어려움에 처한 우리를 돕는 건 여성일수도, 할아버지나 어린 동생일수도 있다”며 “여형사가 주인공이라고 젠더 이슈의 관점으로 보려하지 말고 소영웅의 모습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걸캅스’로 영화 첫 주연 자리를 맡은 라미란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배우로서 시나리오를 받고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였다”고 돌이킨 그는 “영화에서 다루는 성범죄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으로 설정돼 있지만 사실 남성 피해자도 많지 않느냐”며 “모든 피해자들이 숨지 말고 용기를 내길 바라는 마음이고, 혹시 우리가 무의식 중 가해자가 되진 않았나 생각하는 기회도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