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꺼놓고 측근 연락도 안받아…“섣불리 나섰다가 말이 안먹히면 더 큰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안철수 전 대표가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발표한 후 떠나고 있다. 사진 박은숙 기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최근 YTN과의 인터뷰에서 “하도 안철수 대표를 파는 사람이 많아 정확한 의중을 물어보려 통화를 시도했지만 답신이 없었다”고 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측 관계자도 “대표님 쪽에서 여러 차례 안 전 대표와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최근에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측근과 연락하더라도 자신의 의중은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안철수계 의원 7명은 바른정당계 의원들과 손을 잡고 김관영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원내대표 사퇴 촉구에 동의한 한 안철수계 의원은 “안 전 대표와 통화는 했다”면서도 “(원내대표 사퇴 촉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이번 사안은 우리가 알아서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5월 8일 결국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바른미래당은 오는 5월 15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안 전 대표는 당 창업주이자 최대 주주다. 안 전 대표 한마디면 내분이 쉽게 정리될 수도 있다. 당 관계자들이 안 전 대표 의중 파악에 나선 까닭이다. 당이 분당위기에까지 몰렸음에도 안 전 대표가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도 적절한 해결방안이 무엇인지 몰라 고민 중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친안(친안철수)계 내에서도 당 내분 수습 방안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일례로 현 지도부 거취에 대해 지도부가 빨리 사퇴하고 안철수, 유승민을 등판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반대로 지금 지도부가 물러나면 바른정당계가 당권을 장악해 안 전 대표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의견이 너무 극명하게 엇갈리니까 안 전 대표가 고민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안 전 대표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측근 그룹의 의견이 엇갈린다”면서 “한쪽은 안 전 대표가 보수 쪽으로 가봐야 설 자리가 없다. 민주평화당과 연대해 범진보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쪽은 한국당과 연대해 연합공천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에서도 의석을 확보할 수 있고 대선에서도 유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관계자는 “이 와중에 민주평화당 내부 상황도 복잡하다. 안 전 대표를 내세워 현 여권과 각을 세우자는 그룹이 있고, 안 전 대표를 배척하고 민주당과 손을 잡자는 그룹이 있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니 안 전 대표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현재 정계개편이 한창 진행 중이다. 변수가 많은데 안 전 대표가 섣불리 의견을 밝혔다가는 너무 가볍게 처신한다는 비판만 받을 수 있다. 일단 관망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의견을 밝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독일에 간 지 1년도 안됐는데 당 내분 때문에 국내 정치에 복귀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가. 안 전 대표 측근들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안 전 대표가 이미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당 관계자는 “당내에선 안 전 대표가 측근들에게 여러 사항을 지시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면서 “그런데 내년 총선이 다가오니 의원들이 각자도생에 나서면서 안 전 대표 지시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거다. 본인이 대놓고 의견을 말해도 의원들이 듣지 않을 것을 아니까 안 전 대표가 침묵하는 거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해결 방안을 제시했는데 아무도 따르지 않으면 체면만 구기고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안 전 대표로서도 답답한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는 친안계가 안 전 대표는 뒷전이고 내년 총선에만 관심이 쏠려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를 들어 친안계 중 한국당과 연대하자는 쪽은 지역구가 수도권이거나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사람들이고, 민주평화당과 연대하자는 쪽은 지역구가 호남이거나 호남 출마를 준비 중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안 전 대표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친안계 내부 갈등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안 전 대표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친안계 내부 갈등이 심각하다. 안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한 후 번번이 주변 사람이 떠나갔는데 이러다간 국내 정치에 복귀했을 때 측근이라고 할 사람이 몇이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바른미래당 당직자는 “안 전 대표가 침묵만 지키는 것은 정치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당직자는 “당이 어려울 때 창업주인 안 전 대표가 적극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우유부단한 모습만 보이니 실망이 크다”면서 “중요한 순간에 결정을 못해 ‘간철수(간만 보다 철수한다는 뜻)’라는 별명이 생기지 않았나. 신중한 것도 좋지만 결정장애는 대권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대통령이 되면 매일 매일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안 전 대표 측근 인사는 “안 전 대표는 현재 아무런 직책이 없다. 자신이 어떤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자신이 의사 표현을 하면 온갖 추측이 난무해 오히려 상황이 복잡해질 거라고 우려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안 전 대표 선택을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저도 공감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됐으면 안 전 대표가 입장을 정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안 전 대표는 이미 정치적으로 조기 복귀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 전 대표 한마디면 정리가 되니까 당내 인사들이 안 전 대표 의중을 들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연락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최근에는 안 전 대표가 전화기도 꺼놓고 측근들의 연락도 받지 않는다. 메일을 통해서만 국내 소식을 전달받는데 메일도 취사선택해서 측근들이 보낸 메일만 열어본다”면서 “저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