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배우들 이미지에 타격 입히고도 ‘침묵’…“미안하지도 않나” 소속사 분통
횡령, 성매매 알선 및 성매수 혐의를 받고 있는 빅뱅의 전 멤버 승리. 사진=고성준 기자
이들의 ‘영장’에 적시된 혐의들은 재판에서 가려지게 되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 각각의 사건에서 거론된 여배우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입고 있는 피해다. 지인 관계든 사업 관계든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또는 같은 소속사라는 이유로 입방아에 오른 배우들은 즉각 강경 대응에 나서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이미지 타격에 대한 책임은 각종 ‘게이트’에 연루된 인사들 누구도 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10일 배우 한효주는 법률 대리인을 통한 공식입장을 내고 클럽 버닝썬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에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지난 4일 방송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황하나와 버닝썬, VIP들의 은밀한 사생활’ 편에 등장한 여배우 A 씨로 지목받은 바 있다. 버닝썬 게이트의 시발점이 됐던 ‘김상교 씨 폭행 사건’이 발생했던 2018년 11월 24일, 당시 버닝썬에서 열린 유명 화장품 브랜드의 대규모 회식에 참여한 30대 여배우 A 씨가 한효주라는 주장이었다.
특히 해당 화장품 브랜드가 한효주가 광고 중인 JM솔루션이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러한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다. JM솔루션은 승리 및 유리홀딩스 유인석 전 대표와 함께 합작 회사를 설립하는 등 그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업체로 알려졌다.
배우 한효주는 클럽 버닝썬의 ‘김상교 씨 폭행 사건’이 발생한 당시 클럽 안에 있었던 여배우 A 씨로 지목돼 곤욕을 치렀다. 사진=박정훈 기자
문제는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이 ‘여배우 A 씨’가 마약에 취한 상태로 보였다는 증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버닝썬 게이트가 클럽 내에서의 마약과 성범죄 횡행 의혹으로 떠올랐다는 점, 버닝썬의 이사였던 승리가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 등이 종합되면서 루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한효주 측은 방송 직후인 지난 5일 먼저 공식입장을 내고 의혹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는 “한효주는 JM솔루션의 모델일 뿐, 해당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버닝썬이라는 클럽에 단 한 번도 출입한 적이 없다. 당사 소속 배우는 그 때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효주가 여배우 A 씨라는 주장이 기정사실화되는 움직임을 보이자, 결국 한효주 측은 강경 대응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법무법인 ‘지평’을 선임한 한효주는 10일 기준으로 총 33명의 허위사실 유포 및 비방글 게시자를 특정해 서울 용산경찰서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승리게이트’에서 언급된 뉴욕 여배우로 지목됐던 배우 고준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사진=고준희 인스타그램 캡처
한효주에 앞서 배우 고준희 역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는 이른바 ‘승리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언급된 ‘뉴욕 여배우’로 지목된 바 있다. 2015년 승리가 친분이 있는 일본 사업가를 접대하기 위해 여배우를 부르려 했지만, 그가 뉴욕을 방문 중이었기에 불발됐던 것이다. 이 여배우가 고준희로 지목되면서 논란은 들불처럼 번졌다.
논란이 불거진 시점과 동시에 고준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이미 고준희에게 낙인을 찍은 뒤였다. 그가 승리와 같은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는 점, 같은 시기 뉴욕을 방문 중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고준희에 대한 비판을 이어 나갔다.
이 같은 루머가 확산되자 결국 고준희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악성 댓글을 단 네티즌 12명을 지난 3일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했다. 고준희의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오킴스’ 측은 “지난달 고준희 씨가 출연 예정이었던 드라마 ‘퍼퓸’의 하차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치 승리 관련 루머가 사실이어서 하차했다는 악성 댓글이 유포되고 있다”며 “허위 소문의 유포와 확대는 당사자인 여배우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마음의 깊은 상처를 주고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YG엔터테인먼트 사정을 잘 안다는 한 연예계 관계자 역시 이 사건에 대해 “승리가 대체 무슨 권력이 있다고 고준희를 술자리에 부르고 말고 했겠나”라며 “경력으로 따져도 고준희가 위다. 빅뱅이라는 그룹이 만든 자리라면 또 몰라도 승리가 제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자리에 비위 맞추라고 배우를 오라 가라 할 위치에 있진 못하다. 그런 사정은 생각 못하고 이상한 루머로 배우들을 난도질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가수 정준영은 10일 열린 그의 첫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한편, 피해자와의 합의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들 외에도 배우 정은채, 김고은 등이 루머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일부 배우 팬덤은 배우에게 직접 “공식적으로 부정해 달라”는 입장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놓기도 했다. 배우와 소속사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승리 게이트’ 등 사건에 거론됐던 한 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공식입장을 내놓기도, 무시하기도 어려운 사건”이라며 운을 뗐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이미지에 타격일 정도로 사건들의 질이 좋지 않다”며 “그러다 보니 정말 심각한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고서야 소속사 차원에서 공식적인 대응을 하는 것만으로도 구설수에 오를 것이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여배우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사건에 이름이 거론됐다는 것만으로 피해를 입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사건에 중심에 선 인물들이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마디만 해줘도 피해가 이렇게까지 확산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들의 거창한 사업놀이로 애꿎은 여배우들만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는데, 동료들에게 미안하지 않은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횡령 및 성매매 알선과 더불어 자신 역시 성매수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승리에 대한 구속여부는 오는 14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사에서 승리는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으나 그와 함께 사업을 운영한 유리홀딩스 공동대표 유인석 씨는 혐의를 시인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