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발부돼야 공소시효 문제 등 부담 덜어…1억 원 이상 뇌물 수수 또는 특수강간 혐의 입증 쉽지 않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5월 9일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김학의 재수사’를 받았다. 고성준 기자
전날 오전 10시 서울동부지검에 모습을 드러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조사를 마친 김 전 차관에게 취재진은 “원주 별장은 간 적 없다는 입장이냐?”, “혐의를 충분히 소명했느냐?”, “뇌물수수 혐의를 계속 부인하느냐?” 등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김 전 차관은 “성실히 조사에 임했다”고만 답한 채 차를 타고 청사를 떠났다.
‘김학의 수사단’은 이날 소환 조사에서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및 성범죄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김 전 차관은 조사에서 뇌물수수와 성범죄 등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관은 이른바 ‘별장 성 접대’ 핵심인 윤 씨로부터 금품·향응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윤 씨는 앞서 검찰의 여섯 차례 조사 등에서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의혹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다.
윤 씨는 김 전 차관이 2007년 서울 목동 재개발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편의를 봐주겠다며 집 한 채를 요구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윤 씨는 김 전 차관에게 시가 1000만 원 상당의 그림 작품과 승진 청탁 명목으로 500만 원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전 차관과 윤 씨는 서로 엇갈린 진술을 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3월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지 엿새 만에 ‘별장 성접대 동영상’ 논란으로 사퇴한 뒤 두 차례 성범죄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앞서 법무부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이 윤 씨로부터 2005~2012년 사이 수천만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의혹이 있다며 검찰 수사를 권고했다. 이에 수사단은 김 전 차관과 윤 씨를 함께 불러 대질조사를 진행하는 것도 검토할 방침이다. 또 김 전 차관에 대한 추가 소환 조사와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처리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계획이다.
문제는 수사단이 김 전 차관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김 전 차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혐의 소명은 물론 공소시효 문제까지 부담을 덜 수 있지만 법원이 영장을 기각할 경우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특히, 김 전 차관의 혐의 대부분을 윤 씨의 진술에 의존하는 만큼 김 전 차관의 구속 여부에 따라 윤 씨의 진술이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거기다 이미 윤 씨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한 차례 타격을 받은 수사단으로선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사단 내부에선 김 전 차관이 혐의를 전반적으로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소환의 실익이 없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구속영장 청구에도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9일 취재진을 피해 서울동부지검 조사실로 향하는 모습. 고성준 기자
김 전 차관에게 적용할 수 있는 뇌물 수수 혐의와 제3자 뇌물 혐의는 각각 직무 관련성과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게다가 김 전 차관이 실제 뇌물을 받거나 요구했다고 해도 1억 원이 넘지 않으면 공소시효란 벽에 부딪치게 된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금액이 1억 원 이상인 경우에만 공소시효가 15년으로 늘어난다.
지난 3월 과거사위 수사권고 당시 언급된 ‘포괄일죄’(긴 시간에 걸쳐 받은 뇌물을 하나의 범죄로 보는 것) 적용 역시 정기적으로 금품 수수 사실 등을 밝혀야 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수사단은 이달 중순 과거사위의 김 전 차관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 추가 수사 권고 여부에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다. 특수강간 혐의 공소시효가 15년으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사단은 윤 씨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입수한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원본에 가까운 동영상의 촬영시점을 2007년 12월 21일로 확인했다.
물론 수사단이 새로운 증거를 찾아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사건의 시기적 간극이 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많이 남지 않은 점, 법무부 차관까지 승승장구한 김 전 차관이 이를 모를 가능성도 희박한 점 등을 놓고 볼 때 김학의 사건을 재수사하는 수사단으로선 선택지가 많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선 오히려 검찰 수사단이 윤 씨 등과 경찰 관계자의 유착 의혹을 파헤치고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