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찰 수장 구속영장 청구에 ‘정보경찰’ 문제 다시 수면 위로...경찰, 내부 여론 수렴 등 대응안 ‘골머리’
최근 검찰의 전직 경찰수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 후폭풍이 거세다. 사진=고성준 기자
수사권 조정안을 둘러싼 현재 상황은 경찰이 검찰에 견줘 보다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 지난 4월 28일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법안)에 올라타서다. 안건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330일 이내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야 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앞으로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7부 능선 내지 8부 능선은 넘었다는 게 경찰 내부 평가였다.
이후 경찰은 ‘표정관리’에 나섰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수사권 조정 자체는 큰 틀에서 차질 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원하던 걸 얻은 만큼, 굳이 검찰을 상대로 날을 세우거나 앞장서서 여론전을 펼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검찰 반발에도 대응 수위가 높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수사권 조정안 패스트트랙 지정 직후인 지난 5월 1일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공개 반발을 했지만 경찰은 다음날인 2일 설명자료를 내는데 그쳤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문 총장 발언에 대한) 반박보다는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불거진 검찰 안팎의 반대 여론에 대해서도 경찰은 ‘맞대응’ 수준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검찰이 지난 5월 10일 박근혜 정부 당시 정보경찰의 불법사철과 정치 개입 혐의 등으로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 등 전직 경찰 수장을 비롯해 박화진 당시 청와대 치안비서관, 김상운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부터다.
이들은 모두 경찰의 정보 수장 자리인 경찰청 정보국장 출신들이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청장 등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친박근혜계(친박계)’를 위한 맞춤형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선거 대책을 수립하는 등 공무원 선거 관여 금지 규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당시 진보 성향 교육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및 국가인권위원회 일부 위원 등 당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세력을 좌파로 규정하고 이들을 불법 사찰하면서 견제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정치적 중립 의무에 위배되는 위법한 정보활동을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이 전직 경찰청장 2명을 동시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 범주 안에 있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보경찰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가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고, 그동안 상당히 진척된 만큼 전직 청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역시 여러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찰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논의에서 경찰의 ‘약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이 운용하는 정보경찰은 3000여 명. 이대로 수사권 조정이 될 경우 정보경찰들이 모아오는 정보로 큰 힘을 갖고 있는 경찰이 정보력과 수사권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컸는데, 전직 경찰청장 등 정보경찰 출신 고위직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이 목소리를 뒷받침할 근거가 된 모양새가 됐다. 여기에 국회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는 정보경찰 조정에 대한 내용이 아예 빠져있기도 하다. 검찰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회 논의 등에서 후폭풍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과 관련한 경찰 비판도 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 업소와 연예인 등과 유착 의혹을 받는데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진 뒤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사건 초기부터 ‘혐의없음’ 처분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동안 경찰은 이에 대해 “수사권 조정이 돼도 검찰의 견제와 통제를 받는 것은 변함없다”는 취지로 설명해 왔지만, 비판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결국 수사권 조정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던 경찰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한 방’으로 치명상을 입은 모양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그동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복수의 경찰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구속영장 청구 직후인 지난 10일 오후부터 경찰청 수뇌부를 중심으로 경찰청과 일선 경찰서 등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는 작업에 나섰다. 구속영장 청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공식 대응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등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앞서 검찰의 공개 반발이 나온 시점에는 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다른 경찰청 관계자는 “향후 대응 방안 설정 등에 참고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정보활동과 관련해 국회, 행정안전부 등과 추가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치안질서 유지’와 ‘범죄 예방’이라는 경찰의 근본 역할에 맞게 정보활동은 하되, 구체적인 활동 범위를 정해 법안에 명시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대응 전반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문무일 총장은 조만간 기자간담회를 열어 수사권조정 등 최근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문 총장은 정보경찰 업무 문제뿐만 아니라 실효적인 자치경찰제 도입으로 경찰의 행정업무를 자치경찰에 이관하는 방안, 수사 종결권 등 수사권 조정 핵심 쟁점 전반 대해 언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경찰청 핵심 관계자는 “중립적이고 객관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