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주도 국정운영에 홍남기 존재감 ‘뚝’…여권 “둘 호흡 잘 맞아” 부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국회에서 추경 처리 협조를 위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예방,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현 시점에서 경제 원톱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여야 국회의원들, 대기업 임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답을 한 12명 중 8명이 김수현 정책실장을 언급했다. 3명은 모르겠다고 답했고, 나머지 1명은 노영민 비서실장을 택했다. 공식적인 ‘원톱’이라고 할 수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이름은 아예 없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실질적인 권한을 누가 행사하는지 따져 본다면 김 실장 아니겠느냐”면서 “홍 부총리 존재감이 김 실장은 물론 다른 정부부처 실세 장관들보다 못하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라고 귀띔했다.
재계 인사들도 비슷한 생각을 털어놨다. 10대 그룹 한 임원은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면서 “아무래도 기업 입장에선 부처보단 청와대 동향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10대 그룹 임원은 “홍 부총리를 일부 언론에서 ‘아싸(아웃사이더)’라고까지 표현하더라.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와 당에 끌려 다니고 있는 상황은 어려운 경제 현실에서 심각하게 되짚어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를 지명할 당시부터 줄곧 그를 경제 원톱이라고 천명했다. 전임인 김동연 전 부총리가 장하성 전 정책실장(현 주중대사)과 여러 차례 불협화음을 빚은 것을 염두에 둔 스탠스였다. 이는 장 전 실장 ‘바통’을 이어 받은 김수현 실장에게로 힘이 쏠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무관하지 않았다. 사실상 문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에 나선 셈이었다.
하지만 홍 부총리 역시 김 전 부총리와 마찬가지로 ‘패싱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청의 ‘예스맨’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돌았다. 기재부 전직 고위 관료는 “청와대가 원톱이라고 말만 했지 전권을 주지 않으니 홍 부총리가 말해도 ‘영’이 서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홍 부총리가 입장을 밝힌 후 청와대나 당에서 손바닥 뒤집듯 다른 얘기들이 바로 나오는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이러니 시장에서 부총리 발언이 통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미세먼지 추가경정예산(추경)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홍 부총리는 지난 3월 4일 “추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재부 내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과 청에선 이미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문 대통령이 직접 추경 편성을 지시했고, 결국 기재부는 10조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로선 머쓱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이밖에 홍 부총리가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밝혔던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검토는 반대 여론을 의식한 당청 반발로 연기됐다. 증권거래세 인하 역시 홍 부총리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지만 당이 강하게 밀어붙여 성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선 홍 부총리를 향한 공개적인 비판까지 나왔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혁신성장이 더딘 것은 부총리 본인 의지가 없어서일까요. 대통령은 의지가 있으시던데”라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다. 한 직원은 “홍 부총리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하는 분”이라고 변호했다. 또 다른 직원도 “지금처럼 청와대 중심의 국정 기조가 계속되면 그 누가 와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반면, 아쉬움을 나타내는 직원들도 있었다. 기재부 산하기관의 한 임원은 “차라리 김동연 전 부총리처럼 청와대와 싸우더라도 소신을 갖고 일했으면 한다”면서 “지나치게 정치권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은 직원들 사기나 일 처리에도 영향을 미친다”라고 했다.
정치권이 본격적인 총선 모드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떠올려봤을 때 홍 부총리 입지는 더욱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여권이 표심을 잡기 위해 경제 논리보단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정책과 예산을 집행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정권 실세들이 갖고 있는 관료사회에 대한 불신도 홍 부총리선 부담이다. 김수현 실장은 5월 10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대화에서 “(집권) 2주년이 아니라 4주년 같아요”라며 공무원들 행태를 비판했다.
이는 방송사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이른바 ‘마이크 사고’였다. 현 정부가 관료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특히 그 장본인이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던 김 실장이었기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앞으로 김 실장을 중심으로 하는 청와대가 더욱 주도권을 행사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한 의원은 “관료들을 믿지 못 하는데 일을 맡기겠느냐. 홍 부총리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의 기재부 전직 고위 관료는 이렇게 말했다.
“기재부는 철저하게 경제 마인드로 접근하는 곳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다른 의견이라도 나오면 적폐처럼 몰아붙인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결국 옷을 벗었다. 그러니 누가 청와대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느냐. 민주당에서도 주요 사안을 홍 부총리가 아니라 김 실장 선에서 먼저 상의를 한다고 들었다. 홍남기 패싱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평생 공직사회에 몸 담았던 홍 부총리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얘기해야 하고 당과 청와대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권에선 이러한 논란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한 친문 의원은 “김앤장(김동연 장하성)이 자꾸 싸운다고 해서 이뤄진 인사다. 조용하면 조용하다고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라면서 “김 실장이나 홍 부총리 간 호흡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경제 원톱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홍남기”라고 일축했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김 실장도 홍 부총리처럼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홍 부총리를 잘 돕고 있다. (홍남기 패싱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