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용타 사건’이 대표적… 중국 거친 플레이에 황선홍의 ‘1998 월드컵’ 출전 무산되기도
‘판다컵 논란’의 발단이 된 사진 한 장. U-18 대표팀 주장 박규현이 우승컵에 발을 올려놓은 장면. 사진=시나스포츠
[일요신문] 대회에 우승했지만, 트로피는 가져오지 못했다. 판다컵에서 우승한 대한민국 U-18 축구대표팀 이야기다.
5월 29일 한국 U-18 대표팀은 중국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판다컵 전승우승을 확정지었다. 판다컵은 중국 사천성 청두시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지방자치단체 규모 축구대회다. 2017년 첫 대회 이후 3년 차를 맞는 이번 판다컵엔 개최국 중국을 비롯한 3개국 U-18 대표팀이 참가했다.
한국은 태국, 뉴질랜드, 중국을 연파하고 다소 손쉽게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우승컵은 한국행 비행기에 동승하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의 우승 세리모니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진 까닭이다.
판다컵 우승 직후 U-18 대표팀 주장 박규현이 판다컵 트로피에 발을 올린 사진이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대륙의 축구팬들은 분노했다. 일부 중국 언론은 “트로피에 소변을 보는 시늉을 한 한국 선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활활 타는 중국 축구팬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 여론은 “오랜 기간 스포츠맨십과 거리가 멀었던 한국의 단면”이라며 U-18 대표팀에 십자포화를 가했다.
결국 우승 다음날인 5월 31일, U-18 대표팀 김정수 감독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의 뜻을 밝혔다. 김 감독은 “중국이 좋은 대회에 우리를 초청했는데, 우리가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다”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 중국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판다컵 조직위원회 측은 한국의 우승컵을 전격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판다컵 조직위 고위 관계자는 “한국은 스포츠정신을 잃었다. 판다컵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일갈을 가했다.
중국 측의 판다컵 회수 조치와 관련해 일각에선 “중국의 과민반응”이란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 축구계 관계자 A 씨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100% 옳다는 것이 아니다. 경솔한 행동으로 비칠 수 있는 사건이었다”면서 “하지만 우승한 팀이 우승 트로피를 가지는 것 역시 스포츠맨십의 일부다. 경기 외적인 사건으로 트로피를 회수한 중국 측의 조치 역시 스포츠맨십에 크게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A 씨는 이어 “유럽축구에서도 트로피에 발을 올리는 세리모니를 종종한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같은 유명 선수도 트로피에 발을 집어넣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축구인 B 씨는 “이번 논란은 중국이 한국에 0대 3으로 패한 뒤 불거졌다. 안그래도 중국은 한국이 우승컵을 차지해 배가 아팠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트로피에 발을 올리는 세리모니까지 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B 씨는 “축구에 한해서 중국이 한국에 느끼는 열등감은 상당히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중국의 축구 대결은 ‘공한증을 지키려는 한국과 공한증을 깨려는 중국의 치열한 경쟁’ 이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중국의 축구 대결은 ‘투쟁의 역사’다. 투쟁의 핵심은 공한증을 이어가려는 한국과 공한증을 깨려는 중국의 치열한 경쟁이었다. 중국은 ‘공한증’에 몸서리치며, 입버릇처럼 ‘타도 한국’을 외쳤다. 한국과 중국의 역대 A매치 전적은 34전 19승 13무 2패(한국 기준)다. 한중전에 출전하는 중국 선수들은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고, 한국을 압박하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감정적으로 격해져 충돌한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을용타 사건’이다. 지난 2003년 12월 7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한국과 중국의 동아시안컵 경기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한국은 전반전 유상철의 헤딩골로 1대 0 리드를 잡았고, 시간을 지연하면서 승리를 지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자 중국의 플레이는 거칠어졌다. 그러던 후반 14분 한국 이을용과 중국 리이의 몸싸움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리이가 이을용의 발목을 걷어찼고, 이을용은 리이의 뒤통수를 강타하며 응수했다. 리이는 그라운드에 나뒹굴었고, 이을용은 퇴장 판정을 받았다.
이 사건은 2019년 현재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강력한 인상을 남긴 충돌이었다. 이후 사건 당사자인 이을용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순간적인 흥분을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면서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을용타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 간판선수가 중국의 거친 플레이로 부상을 당해 월드컵 출전이 무산된 경우도 있다. 비운의 주인공은 바로 황선홍이다. 황선홍은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중국 수비수의 거친 태클에 쓰러졌다.
이 태클로 황선홍의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한국 축구 ‘간판스타’ 황선홍이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전열에서 이탈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한국 축구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중국과의 평가전 편성을 최대한 자제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중 축구 대결’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많다. 하지만 이번 ‘판다컵 사태’는 사건의 본질이 다르다. 경기 중 벌어진 논란이 아니라, 경기 후 뒷풀이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한 까닭이다.
일각에선 “우승팀의 트로피까지 회수할 만한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이번 ‘판다컵 논란’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중국축구협회에 사과와 유감의 뜻을 전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판다컵 트로피 세리모니 논란은 한국 측의 사과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한편 중국은 2013년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축구굴기 정책’으로 축구 발전에 큰 공력을 쏟았다. 하지만 중국의 축구 수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축구의 행보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높다.
6월 5일 중국 ‘타이산신문’은 “한국 축구가 ‘U-20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실력을 증명했다”면서 “중국 축구팬으로서 한국의 선전을 부러워할 뿐”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엔 부러움과 질투심이 한데 섞여있다. 앞으로 있을 ‘한중전’에서 중국 축구가 부러움을 해소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