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지배구조는 물론 ‘강성부 펀드’와 경영권 경쟁서도 중요한 변수
# 왜 한진칼과 정석기업인가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배회사다. 경영에 참여하면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조 부사장은 물론이고 언니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도 지주사인 한진칼에서 공식직함을 가진 적이 없다. 조 전 부사장이 현재 재판 중인 점을 감안하면 세 남매가 그룹 지주사에서 사실상 공동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마침 고 조양호 회장의 등기임원 자리도 하나 비어 있다. 조현민 부사장이 이 자리를 채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석기업도 마찬가지다. 정석기업은 조원태 회장 외에도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이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룹 계열사 가운데 이 전 이사장이 등기임원인 곳은 정석기업이 유일하다.
정석기업은 한진칼이 최대주주(48.27%)지만 고 조양호 회장 지분율도 20.64%에 달한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사위인 이태희 변호사도 지분 8.07%를 보유 중이다.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광장의 창업자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 가운데 가장 경륜이 높다. 현재 지분상속과 KCGI에 대한 대응 등에서 이 변호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컵 갑질 논란을 빚은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 한진칼 전무와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경영 복귀를 알렸다. 사진은 조 전 부사장이 지난해 5월 1일 오전 서울 신월동 강서경찰서에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한진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기 전인 2013년까지만 해도 정석기업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었다. 조양호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정석기업이 ㈜한진의 최대주주였다. 대한항공은 ㈜한진이 지배하고, 대한항공은 다시 정석기업 지분 48%를 보유한 순환출자 구조였다. 이들 세 회사가 인적분할 후 합병하는 과정을 겪으며 오늘의 한진칼이 완성된다.
현재 정석기업은 그룹 지배구조 핵심에서 한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한진칼이 지분율 48%의 최대주주여서 상호출자제한에 걸려 그룹 지배력에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우선 총수 일가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이 가능하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계열사에 건물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서울시 중구 한진빌딩 본관 및 신관, 인천시 중구 정석빌딩, 부산시 중구 정석빌딩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임대료가 주 수입원이다. 그룹 관련 주차장 운영과 사무지원, 선박임대 등도 한다. 지난해 427억 원 매출에 영업이익 134억 원, 순이익 104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은 2160억 원이지만, 배당가능 잉여금(임의적립금+미처분이익잉여금)은 무려 1870억 원에 달한다. 이를 모두 배당한다면 총수 일가는 1000억 원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정석기업은 취득가 1600억 원대의 토지를 장부상 재평가하지 않고 있다. 이를 팔거나 재평가하면 배당 가능 이익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 정석기업, 다시 그룹 정점으로?
현재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한진칼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유동화시킬 수 있는 주식 자산은 두 가지다. 조 회장 지분이 남은 ㈜한진과 정석기업이다. 시가로 약 1400억 원 규모로 주식 맞교환이나 매각 등이 가능하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명분도 있다. 세금 등을 고려할 때 한진칼 지분 약 4%의 가치다.
정석기업을 아예 지배구조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가능하다. 정석기업의 막강한 자금력을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에 동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출자제한에 걸리는 한진칼의 정석기업 지분 48%를 해소해야 한다. 정석기업이 자사주로 매입하는 방법이 가능할 수 있다. 지주사 전환이 한창이던 2015년에도 정석기업은 조 회장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했다. 매입 가격은 1주당 29만 6966원이다. 이 값이면 한진칼 보유 정석기업 지분가치는 약 1800억 원이다. 정석기업의 배당 가능 이익과 비슷하다.
한편 국적기를 이용해 해외에서 산 명품 등을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된 이명희·조현아 모녀는 지난 13일 인천지방법원 재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법정 구속을 면했다. 이들 모녀는 결심 공판 때 최후진술을 통해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죄송하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 결국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냈다.
인신 구속을 면한 만큼 조 전 부사장의 경우 경영 복귀 가능성이 점쳐진다. 실형은 받은 만큼 대한항공 등 항공사는 어렵더라도 지주사인 한진칼을 비롯해 호텔 및 관광 계열사 임원이 될 여지는 충분하다. 조 전 부사장의 복귀 시기와 방법 등이 드러나면 향후 한진그룹 지배구조 윤곽은 좀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