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용재산 총동원 해야 상속세 감당…남매전쟁 발발 땐 그야말로 ‘벼랑 끝’
강성부펀드는 올 들어 3월 말과 4월에 걸쳐 한진칼 지분을 추가 매입했다. 조 회장의 와병 사실은 알았을 수 있지만 병세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지난 주총에서 보유 기간 미달로 주주제안권을 행사하지 못한 데다 조 회장 최측근인 석태수 부회장 등 회사 측 인사의 등기임원 연임을 저지하지 못한 데 따른 전략보강으로 볼 수 있다. 펀드가 매입 단가 대비 적잖은 평가손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물타기’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투자자의 지지가 사모펀드에는 가장 중요하고, 그 바탕에는 ‘수익률’이 있다. 사실 3월 말 주총 직후에도 한진칼 주가는 2만 5000원대에 머물렀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에서 한 그룹 관계자가 분향하고 있다. 조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한진그룹의 경영권이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분 추가 매입은 조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뜻하지 않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주가 급등으로 평가손을 일부 만회한 데다 반격의 돌파구도 만들 수 있어서다. 조원태 사장이 주요 계열사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45년간 그룹을 이끌어온 조 회장의 타계는 어찌됐든 경영 공백이 될 수밖에 없다. 조 회장이 건재한 상황과 아직 경험이 부족한 조원태 체제는 분명 주주들에 주는 무게감이 다르다.
한진가 입장에서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게 됐다. KCGI의 지분율은 더 높아졌는데 후계작업까지 진행해야 한다. 조 회장의 지분이 고스란히 조현아·조원태·조현민 삼남매에 상속돼야 지배력을 지킬 수 있다. 상속 과정에서 발생할 세금은 약 2000억 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예전 일감몰아주기로 만든 현금과 그간의 배당 및 급여, 최소 7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조 회장의 퇴직금, 주식담보 대출 등 가용자산을 총동원하면 감당할 수도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상속비용에 실탄을 다 쓰고 나면 정작 추가 지분 매입 등 경영권 방어 여력은 약화된다.
주주총회에서 경영참여 명분은 강화될 수 있다. 경영 경험이 풍부한 조 회장을 한진칼이나 한진㈜ 경영에서 배제시키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대한항공은 이사선임이 주총 특별결의 사항이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조원태 사장은 다르다. 조 회장과 비교해 경영 경험은 물론이고 주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영향력도 부족할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논리로 조 사장을 경영일선에서 배제시킬 여지도 있다.
조 회장 세 자녀의 분열 가능성도 존재한다. 조현아 전 사장과 조현민 전 대표는 이른바 ‘갑질’ 논란 이전만 해도 그룹 경영에 적극 참여했다. 현재는 여론에 밀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조 회장 지분이 고스란히 조원태 사장에게만 승계되는 것을 보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룹에서 상당한 부분의 사업부문을 떼어 가지려 할 수 있다. 조원태 사장과 정리가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갈등이 유발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진그룹 창업자인 조중훈 회장은 장자·아들 승계를 원칙으로 삼았다.
피상속자가 복수일 경우 상속재산은 5년간 분할되지 않을 수 있다. 5년 이후에는 피상속인들 간 합의로 결정된다. 일단 강성부펀드라는 ‘외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장 ‘내분’이 표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강성부펀드가 장기투자를 공언한 상황이고, 조 회장 지분 상속을 마냥 늦추기도 어렵다. 분할 과정에서 자칫 한진가의 지배력이 약화되거나 강성부펀드와 타협이 필요할 수 있다.
일단 한진그룹에서는 석태수 부회장을 그룹 간판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조 회장 최측근인 데다 회사 사정에 밝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는 조 회장의 미망인인 이명희 씨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내부단속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씨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내부적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씨의 부친은 이재철 전 중앙대 총장으로 박정희 정부에서 감사원 감사위원, 과학기술 차관, 교통부 차관 등을 지낸 인물이다. 대한항공의 민영화 및 성장에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석인하학원, 일우재단, 정석물류재학술재단 등 한진이 보유한 3개 재단이 조 회장 지분을 넘겨받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현행법상 비영리법인에 대한 기업 지분율 5% 이하 증여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이 있다. 다만 이 경우 주총 등에서 조 사장이 강성부펀드에 맞설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
한편 다음 주총에서야 주주제안권 행사가 가능한 강성부펀드는 기 확보된 주주명부를 바탕으로 연대세력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진칼은 외국인 지분율이 5% 미만으로 대한항공(24%)에 비해 훨씬 낮다. 다만 국민연금 등이 ‘스튜어드십코드’를 강화하고 있지만 경영참여를 넘어 사실상의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는 강성부펀드의 손을 들어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총수 타계라는 상황에서 주주행동주의로 대기업 지배구조에 공적연금이 인위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면 사회적으로 상당한 논란이 될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