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 받자 친문 먼저 손 내밀어…“내년 총선 승리 위해선 이 지사 영향력 필요”
1심 무죄 선고를 받은 이재명 지사가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법원을 떠나고 있다. 사진 이종현 기자.
이 지사는 지난 대선 경선 이후 친문 진영과 불편한 사이가 됐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강하게 공격한 데 이어, 이 지사 아내가 혜경궁 김씨라는 트위터 아이디로 대통령 가족을 비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이 지사에 대한 정치 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례로 지난해 3월 검찰이 이 지사 측근 뇌물수수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정치권에선 청와대 작품이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청와대 뜻이 아니라면 지방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검찰이 여당 유력 광역단체후보 측근을 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지사 지지자들은 최근 재판 역시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이 지사와 거리를 둬왔던 경기도내 친문 의원들이 먼저 축하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지난 6월 3일에는 친문 핵심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이 지사와 만남을 가졌고, 1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는 전해철 의원도 이 지사와 만났다. 이 지사를 만난 양 원장과 전 의원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다.
전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 경선에서 이 지사와 맞붙어 치열하게 경쟁했던 사이다. 혜경궁 김씨 의혹을 최초 고발한 인물이 바로 전 의원이다. 이 지사는 최근 경기지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정기 회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 경기도의회 관계자는 “현재 경기도의회 민주당 의원 중 상당수가 친문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지사를 위한 탄원서에 135명 중 120명이 서명했다. 서명한 사람 중에 친문 인사도 많았다. 이 지사가 미워도 낙마하면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민주당이 경기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건 16년 만의 일이다. 이 지사가 낙마하고 재보궐 선거가 열리면 지사 자리를 다시 뺏길 수도 있다. 내년 총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거다. 이런 이유로 이 지사에 대한 당내 분위기가 달라진 거 같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경기도 지역구 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지사 도움이 절실하다. 경기지사가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은 서울시장보다도 많다. 내년 총선 전에 지역구 숙원 사업들을 해결하려면 이 지사로부터 도비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면서 “친문 진영이 이 지사와 관계개선에 나선 것은 총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도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이 지사와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이 지사는 당내에서 문 대통령 버금가는 정치 팬덤을 가진 인물이다. 여권이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이 지사와 계속 대립해 얻을 것이 없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이 지사는 지난 6월 17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가 개최한 정책토론회에 기조연설자로 초청됐다. 청와대와 이 지사가 불편한 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지사는 청와대 관련 행사에서 패싱을 당했다.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청와대는 접경지역 대표로 이 지사 대신 최문순 강원지사를 수행원 명단에 넣었다. 접경지역 지자체라면 개성공단과 밀접한 경기도가 강원도보다 관련성이 높다.
이재명 패싱 논란을 일으켰던 청와대는 최근 사안에 따라 경기도지사의 국무회의 배석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지자체장 중에서 서울시장만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경기도의회 내부 분위기도 이 지사에게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경기도의회 전체 143석 중 135석을 차지했다. 경기도의회는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초반에는 이 지사와 대립각을 세웠다.
경기도의회 민주당 측은 ‘아무리 자당 도지사라도 잘못된 정책을 펼치면 제동을 거는 것이 의회가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른바 전해철 라인이 장악한 경기도의회가 이 지사를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한 경기도의회 야당 의원은 “요즘 별다른 이슈가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이 지사와 민주당 도의원들이 대립하는 장면은 못 본 거 같다. 도정질의를 해도 화기애애하다”고 했다.
야당 의원은 이 지사 1심 판결 후 달라진 점에 대해 “특히 공무원들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야당 의원은 “당초 이 지사가 유죄 판결을 받고 중도 낙마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공무원들이 이 지사를 얼마 후에 나갈 사람이라고 취급했다. 이 지사가 지시를 해도 먹히지 않았다”면서 “1심 무죄 판결을 받고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했다. 야당 의원이 전한 경기도 내부 분위기가 사실이라면 이 지사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친문 진영이 내년 총선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 지사와 관계개선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친문 진영에서는 이 지사가 차기 대권주자로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총선이 끝나면 다시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지사를 향한 친문 지지자들의 적개심도 여전하다. 민주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이 지사를 비방하는 글로 도배되어 있다. 이 지사 지지자들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갑자기 달라진 당 분위기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섣불리 친문 진영이 내미는 손을 잡았다간 이 지사가 토사구팽당할 수 있다는 거다.
이에 대해 이 지사 측 관계자는 “이 지사께서 민주당은 원팀이라고 수차례 말씀하신 바 있다. 이 지사는 SNS를 통해 자신의 지지자를 자처하며 민주당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적폐세력이 회생하고 있는데 내부 갈등과 분열을 만들고 확대시키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했다. 그 글이 이 지사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