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2일 오후 1시, 여의도 증권사 객장. 점심식사를 막 끝내고 객장으로 몰려든 투자자들은 놀란 토끼눈으로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SK사태 이후 금융불안이 가시화되면서 대다수 종목들이 내림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 종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종목은 한진그룹 계열사 주식이었다. 대한항공, 한진해운, (주)한진, 메리츠증권 등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날 한진해운은 하한가(15% 하락)를 쳤고, 나머지 종목들도 평균 10% 넘게 폭락했다. 이로 인해 한진그룹 관련주들의 시가총액은 이날 하루 1조원 이상 공중에 날아가고 말았다.
이들 종목에 투자한 주주들은 왜 한진그룹 관련주가 폭락했는지 영문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투자자들은 증권사 직원을 붙들고 “한진그룹이 부도 나느냐” “분식회계 사실이 터졌느냐” “검찰 조사 대상에 올랐느냐”며 수소문을 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이유를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즈음 한 증권사 직원의 입에서 “한진그룹계열사인 한진해운에 대한 세무조사설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뒤늦게 폭락 이유를 알게 된 투자자들은 앞다퉈 한진그룹 관련주를 던졌지만 매수자가 없었다. 물론 이 루머는 그야말로 ‘설(說)’이었다.
이 루머의 진원지는 S증권사 애널리스트였다. 이 애널리스트는 이 루머를 이날 낮 12시를 전후해 30여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SK그룹에 이어 한진그룹이 세무조사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
이 메일은 순식간에 시장에 유포됐고, 이메일을 접한 투자자들은 나몰라라식으로 한진그룹 관련주들을 투매했다. 결국 한진해운은 단 30분 만에 하한가로 곤두박질치고 다른 관련주들도 폭락하고 만 것이었다.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이메일의 주인공과 해당 증권사는 한진그룹 등을 찾아 적극 해명하는 한편 사과했다. 하지만 이 사실무근의 루머로 이미 공중에 날아가버린 주가와 투자자 손실은 만회할 길이 없었다.
요즘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투자심리가 급랭한 여의도 증권사 객장에는 루머가 판을 치고 있다. ‘○○재벌이 세무조사를 받는다’‘○○전자가 미국 펀드로부터 수조원대의 분식회계 소송을 당했다’‘A재벌 총수가 여자관계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검찰이 B재벌 2세의 불법 증여문제를 수사하고 있다’‘SK그룹 다음 타깃은 ○○재벌이다’는 등 다양하다. 물론 이들 루머로 인해 해당 기업의 주가는 온냉탕을 오가며 요동을 치고 있다.
최근 증권가에 나도는 루머의 내용은 ▲정권 표적설 ▲오너 2세 검찰 조사설 ▲부정회계 적발설 ▲총수 사생활 비리설 등으로 요약된다. 이 중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정권 표적설과 부정회계 적발설이다.
정권 표적설의 단골 주인공은 A그룹. 오너 2세의 편법증여 의혹까지 곁들여진 A그룹 관련 루머는 신정부의 표적설로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검찰이 내사를 끝냈다느니, 조만간 총수가 구속될 것이라느니 하는 등의 근거없는 추측까지 오가고 있다.
정권 표적설의 단골인 B그룹 관련 루머도 요즘 여의도 객장을 장식하는 주인공이다. 매머드 재벌인 B그룹은 오너 일가족이 계열사 주식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럴싸하게 포장돼 투자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루머가 확산되자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해명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문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 그룹의 몇몇 계열사가 분식회계를 하다 적발됐다는 얘기도 곁들여지고 있다.
오너 2세의 편법증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착수설은 최태원 SK 회장의 구속 이후 투자자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메뉴 중 하나이다. 특히 L, C, J, S, K씨 등 내로라하는 재벌 2세들이 루머의 주인공으로 거론되고 있어 긴장감을 주고 있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등이 서울지검 등에 고발까지 해놓은 상태여서 루머는 끝없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영제 신임 서울지검장의 대기업 수사 유보 발언으로 루머는 일단 잦아드는 형국이다.
이처럼 회사경영과 관련된 루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시중 루머들 중에는 대기업 총수의 사생활과 관련된 근거없는 루머들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말 한 그룹 총수 A씨가 유명 연예인 B양과 시내 호텔에서 밤을 지냈다. 이 사실이 부인에게 들통나 별거중이다” “Z그룹 총수 W씨가 지난해 미국 출장중 LA에서 한국 여인과 밤을 지낸 뒤 귀국했다. 그 후 이 여인이 임신을 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걸어 초비상이 걸렸다”
이름을 대면 금방 알 만한 F그룹 총수. 비교적 젊은 나이의 그는 유명 연예인 B씨와의 염문설이 뜬금없이 나돌아 이 그룹 관계자들이 대거 동원돼 진상파악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루머의 내용은 ‘수년전 F그룹 총수가 연예인 B씨와 사귀다가 부인에게 들켜 관계를 끊었다. 그러다 지난해 말 술자리에서 S양을 만나 깊이 사귀게 됐다’는 것. 이 사실이 부인에게 다시 들켜 올초 F그룹 총수의 부인은 아예 해외로 나가버렸다는 얘기다.
제벌 그럴듯한 근거까지 곁들여진 이 얘기는 시간이 갈수록 재포장돼 재계 내에서도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황. 이렇게 되자 F그룹 관계자들은 “소문의 진원지가 어디냐”며 은밀히 추적하고 있다.
D그룹 총수인 M씨에 대한 사생활 루머도 최근 ‘카더라’ 정보시장을 장식하고 있는 메뉴. 루머 내용은 M씨가 술자리에서 연예인 H씨와 만나 3년 동안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최근 관계를 청산하려하자 H씨 가족들이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 루머는 M씨가 H씨를 위해 강남에 아파트를 얻어주었다는 내용과 함께 실제 집주소까지 나오는 등 상당한 근거도 곁들여져 있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해당 그룹 관계자들도 이미 이 루머를 파악, 자체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얘기는 M씨가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 장기간 귀국하지 않으면서 제법 그럴싸하게 포장돼 나돌고 있다.
이밖에도 해외파 연예인인 X양과 중년 재벌총수의 밀애설, 중년 연예인 H양과 중견 재벌총수 C씨의 도피설, S재벌 총수 K씨와 유흥업소 마담과의 소송설 등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증권 관계자들은 “루머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SK사태가 터진 후에는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루머가 돌면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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