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 내가 없으면 안된다’ 어필하려는 의도일까
지난 5월 22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서울의 한 호텔로 들어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호텔 직원이 사진 찍는 것을 손으로 막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주재로 IM(IT·모바일) 부문 사장단 경영전략 점검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IM 부문장인 고동진 사장을 비롯해 노희찬 경영지원실장(사장), 노태문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사장) 등에게 전날 개최된 ‘IM 부문 글로벌 전략회의’ 결과를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래 신성장 동력이 될 첨단 선행기술과 신규 서비스 개발을 통한 차별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5G 이후의 6G 이동통신, 블록체인, 차세대 인공지능(AI) 서비스 현황과 전망은 물론,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 협업 방안 등에 대해서도 두루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어떠한 경영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차질 없이 집행할 것”을 주문하면서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의 성과를 수성하는 차원을 넘어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고경영진의 전략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달 들어 4번째다. 지난 1일 경기도 화성 사업장에서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 경영진과 회의를 진행한 데 이어 2주 만에 시스템 반도체 등 투자 집행 계획을 직접 챙기기 위해 DS 부문 경영진을 다시 소집해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지난 17일에는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을 방문,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 등 주요 임원진들과 자동차 전장용 MLCC(적층세라믹콘덴서)와 5G 이동통신 모듈 등 주요 신사업에 대한 투자와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회사 내부 일정과 논의 내용은 모두 삼성 측에서 발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한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내 일정을 이렇게까지 공개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 삼성 역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부터 이재용 부회장까지 총수들의 내부 일정을 그동안은 언론 등에 일일이 공개하거나 알리지 않았다.
이는 다른 대기업의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 그룹 총수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자신의 동선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에 나갈 때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식 석상에 참석하는 것도 최대한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치고 알리는 걸 미룬다”며 “회사에서 나서서 총수의 일정과 발언을 공개했다는 건 이를 통해 얻고 싶은 효과가 있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이 최근 미·중 무역전쟁과 화웨이 사태, 반도체 시장의 하락 국면 장기화 우려 등 급변하는 국제 경제 분위기를 의식해 위기의식을 알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둔화로 삼성전자는 올 1분기 매출 52조 385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5% 줄었고, 영업이익은 6조 2333억 원으로 무려 60.2% 급감했다. 또한 미·중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에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 정부에서는 동참시 보복 경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중간 입장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다잡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검찰의 수사 압박 등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는 현재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문제로 번졌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임직원들이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구속됐고,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도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 부회장까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경영에 이재용 부회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최근 사업지원TF 임직원들이 잇달아 구속되고 관련 증거가 나오는 등 검찰 수사에서 상황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볼 수 있다”며 “이 와중에 이재용 부회장이 사업장을 방문하고 최고경영자 전략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회사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이재용이 삼성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영인이 경영활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서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