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사이 이동 시간에 발생한 일, 현장에 없던 국가대표 선수도 있다”...“사건 발생 전 임효준-황대헌, 한 여자선수와 서로 엉덩이 때리는 장난쳤다” 증언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과 황대헌.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임효준 성희롱 사건’ 관련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임효준이 황대헌의 바지를 벗긴 건 훈련 중이 아니었다. 국가대표 선수 전원이 현장에 있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엔 임효준과 황대헌, 여기에 여자 선수 한 명이 서로의 엉덩이를 때리는 장난을 쳤다”는 내용이다.
남자 쇼트트랙 간판 임효준의 성희롱 파문이 거세다. 한국 빙상은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제의 사건은 6월 17일 진천 선수촌에서 일어났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임효준이 후배 황대헌의 바지를 내리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대한체육회 제9차 국가대표 훈련제외 내부 심의위원회(대한체육회 심의위)는 남·여 쇼트트랙 대표팀 16명 전원을 퇴촌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대한체육회 심의위는 “쇼트트랙 선수 전체가 참여하는 공식 훈련 시간에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이는 행위자와 피해자 당사자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전체적인 훈련 태도와 분위기가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전원 퇴촌’ 조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임효준의 성희롱은 훈련 중 발생한 사건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내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 A 씨는 “임효준 성희롱 사건은 ‘스케이팅 훈련’에서 ‘지상 훈련’ 사이 이동 시간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스케이팅 훈련을 마친 뒤 선수들은 지상 훈련을 소화하러 이동한다. 임효준이 황대헌의 바지를 내리는 사건이 벌어진 건 이때다. 사건이 훈련 중 일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A 씨는 “사건이 일어날 당시 쇼트트랙 국가대표 중 현장에 없었던 선수도 꽤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A 씨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빙상계 복수 관계자들 역시 “임효준의 성희롱 사건은 훈련 중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다. 사건이 공개될 당시 세부적인 훈련 내용이 명시돼 있었던 까닭이다. 사건 발생 후 언론 매체들은 “임효준이 ‘암벽 등반 훈련’ 중 황대헌의 바지를 벗겼다”고 보도한 바 있다. 빙상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암벽 등반 훈련의 실체는 무엇일까.
진천선수촌 웨이트 트레이닝장. 훈련하는 선수들 뒤편의 암벽이 눈에 띈다. 사진=연합뉴스
빙상계 복수 관계자는 “‘암벽 등반 훈련’은 실체가 없는 훈련”이라고 주장했다. 빙상인 B 씨는 “보통 쇼트트랙 국가대표들은 스케이팅 훈련과 지상 훈련, 두 종류의 훈련을 소화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B 씨는 “지상 훈련은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진행될 때가 있다. 여기에 문제의 ‘암벽’이 있다. 빙상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이동한 임효준과 황대헌이 암벽 쪽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건은 이 시간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은 빙상계 복수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임효준 성희롱 파문’을 재구성했다.
“6월 17일. 진천 선수촌에서 스케이팅 훈련을 마친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이동 시간’을 이용해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교적 빠르게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도착한 선수들이 있었다. 여기에 임효준과 황대헌이 있었다. 이때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도착하지 않은 선수도 몇 있었다. 임효준, 황대헌,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C 씨는 함께 놀고 있었다. 세 선수는 서로의 엉덩이를 때리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황대헌이 암벽 쪽으로 향했다. 황대헌이 암벽을 오르기 시작하던 찰나 임효준이 황대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임효준은 황대헌의 바지를 내렸다. 황대헌의 엉덩이 일부가 노출됐다. 이 일이 벌어진 뒤에도 임효준은 계속해서 황대헌을 놀렸다. 이 과정에서 황대헌의 감정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 황대헌은 이 사실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이어 황대헌 어머니는 국가대표팀 장 아무개 코치에게 해당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까지가 빙상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임효준 성희롱 파문’의 개요다. 빙상계 관계자들의 증언은 대한체육회 심의위원회가 발표한 사건 내용과 묘한 차이를 보였다.
잠잠하던 한국 빙상계는 ‘임효준 성희롱 파문’으로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연합뉴스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사건이 훈련 중 일어났는지 여부’이고, 다음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16명 전원이 현장에 있었는지 여부’다. 사건의 본질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실관계다. 증언이 사실일 경우, 대한체육회 심의위가 던진 ‘집단 퇴촌’ 초강수의 명분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한 빙상 관계자 D 씨는 “임효준이 황대헌의 바지를 벗긴 행동은 잘못된 일이다. 초등학교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 국가대표팀에서 일어났다. 빙상인으로서 정말 창피하다”면서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 전원 퇴촌 조치는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D 씨는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엔 이번 사건과 무관한 선수들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또한 D 씨는 “지금까지 언론이 보도한 내용과 실제 일어난 사건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면서 “미묘한 차이로 사건 책임자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D 씨는 “이번 사건을 살펴보면, 선수들을 확실하게 통제하지 못한 지도자들의 관리책임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체육계 관계자는 “특정 사건과 관련해 해당 종목 선수를 ‘전원 퇴촌’ 조치하는 사례가 남게 됐다. 이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사례가 남는다면, 체육계에서 부조리한 일이 벌어졌을 때 선수들은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6월 25일 오후 남·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은 진천 선수촌을 떠났다. 빙상연맹은 임효준에 대한 징계를 7월 중 열릴 관리위원회에서 심의할 예정이다. ‘임효준 성희롱 파문’을 계기로 한국 빙상은 다시 한번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