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강사 비방은 기본, 해외법인 세워 수백개 ID로 조작 “1타 강사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필리핀에 회사를 세우고 동료 강사에 대한 비방 댓글을 조작하다 적발된 국어 강사 박광일 씨(44)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안양고등학교 국어 교사 출신인 박 씨는 EBSi를 시작으로 대성학원을 거쳐 수능 1타 강사로 떠오른 인물이다. 온라인은 물론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가장 빨리 수업이 마감돼 수험생 사이에서는 ‘대치동 4대 천황’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건은 박 씨의 회사에 재직하던 전 직원의 폭로로 알려지게 됐다. 전 직원은 박 씨가 소규모 회사를 설립한 뒤 VPN(가상 사설망)으로 300개 이상의 아이디를 만들어 댓글을 조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필리핀에 있었다. 국내에서 댓글 작업을 할 경우 쉽게 아이피 주소가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같은 회사에 있는 동료강사의 외모를 지적하는 댓글까지 발견돼 논란이 더욱 커졌다.
25일 대성마이맥에 올라온 박광일 강사의 사과문. 사진=대성마이맥 홈페이지
박 씨는 6월 25일 인터넷 강의 업체 ‘대성마이맥’ 강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수험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가 큰 죄를 졌습니다. 모든 것이 오롯이 저의 책임이며 그에 따른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대성마이맥과 동료 강사들은 이번 일과 단 하나의 관련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대성마이맥은 24일 박 씨에 대한 형사 고소를 진행할 예정임을 밝혔다. 다만 수강생의 혼란을 막기 위해 온라인 강의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사가 작접 댓글 조작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 다수는 인터넷 강의, 이른바 인강에 대한 댓글 조작은 이미 만연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1타 강사를 만드는 데 댓글 작업만한 것이 없다는 것. 한 인터넷 강사는 “스타 강사의 팔할은 댓글로 이루어진다. 댓글부대만 있으면 마이너 강사를 메이저 급으로 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줄어든 학령 인구도 업체 간 댓글 경쟁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저출산 추세로 감소한 학생 수에 비해 사교육 시장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것. 조금이라도 많은 학생을 끌어오기 위한 인강 업체의 출혈 경쟁이 결국 댓글 조작으로 이어진 셈이다.
실제로 수험생이 모이는 커뮤니티 ‘오르비’와 ‘수만휘’ 등에서 강사 추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떤 강사가 더 나은지에 대한 토론도 왕왕 벌어졌다. 수험생 A 씨는 “한번 강사를 선택하면 수험 생활 내내 그 강의를 듣는다. 이것을 ‘커리(큘럼) 탄다’고 하는데 최소 1년 길게는 3년까지 듣기도 한다. 대개 실제 강의를 들어본 학생의 후기나 댓글을 보고 강사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이런 후기나 댓글에는 조작된 것들이 상당수 섞여있다고 했다. 실제로 해당 알바를 해봤다는 B 씨는 “강의를 무료로 듣고 한 달에 50만~100만 원 정도의 급여도 받았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여러 개 받으면 각 아이디마다 콘셉트를 정했다. 예컨대 1번 아이디는 고3 학생, 2번 아이디는 재수생인 것처럼 활동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법도 전수했다. B 씨는 “강의에 관련된 글만 올리면 안 된다. ‘음악 추천 받아요’와 같은 일상 게시글도 함께 올려야 의심을 덜 받는다”고 말했다. 당시 B 씨와 함께 일했던 직원은 6명이었다. 그는 “강사 몸값이 수십억 원대로 올라가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한 댓글 경쟁도 치열해졌다. 아마 지금은 직원이 더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댓글 조작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강사도 여럿이다. 인기 역사 강사 설민석 씨(48), 수학 강사 신승범 씨(48), 인문학 강사 최진기 씨(52)는 지난 2017년 한 단체로부터 사기·업무방해·표시광고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 당시 소속회사였던 이투스의 조직적 댓글 조작행위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투스의 조직적 홍보 행위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투스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한 마케팅 업체와 계약을 맺어 실시간 검색어 조작, 자사 강사 홍보, 경쟁업체에 대한 비방 댓글을 단 것으로 밝혀져 검찰에 송치됐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투스는 “업계에 만연해 있어 방어적 차원의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세 강사는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강사는 강의만 제공했을 뿐 홍보는 회사에서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섰던 강사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수능 시장을 떠났다. 신승범 강사는 2018년 이후 새 영상을 찍지 않고 있다. 이투스 담당자도 문의 게시판에 “신승범 강사가 새로운 영상을 찍을 계획이 없으며 올해 강의는 2018년도 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은퇴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진기 강사도 논란이 불거진 2017년 일찌감치 수능 시장을 떠났다.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연이은 댓글 고발과 소송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최 씨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에만 집중하고 있다.
피해는 오롯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몫으로 남았다. 박 씨의 댓글 조작 사건으로 수험생은 또 한번 혼란에 빠졌다. 믿었던 강사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은 두 가지다. 수험생 B 씨는 “선생님에게 배신당한 기분도 들지만 몇 개월 뒤 시험을 생각하면 강의를 듣지 않을 수도 없다. 수능이 중요한지 도덕성이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