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선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는 고인과 생전 작품을 통해 교류해온 동료들이 한달음에 찾아왔다. 유작이 된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송강호와 연출자인 조철현 감독은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달려왔고,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염정아, 윤세아, 윤시윤, 박소담 등 고인과 인연을 맺은 동료들도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고인의 유작이 된 영화 ‘나랏말싸미’에서의 모습. 이 영화는 오는 7월 24일 개봉 예정이다. 사진 = 영화 ‘나랏말싸미’ 홍보 스틸 컷
빈소가 마련된 건 사망하고 하루 뒤인 6월 30일 오전 11시경이다. 소속사는 어린 자녀와 충격을 받은 유족의 비통한 심정을 고려해 빈소 내부 영정사진 등의 촬영 취재를 정중히 거절했다. 취재진에 빈소 안내판도 촬영하지 말아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유족을 배려하려는 조치였다. 2006년 영화 촬영감독인 박상훈 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을 두고 있는 고인의 빈소는 어둡게 내려앉았고, 그 틈으로 유족과 동료들의 애통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7월 2일 발인해 경기 광주시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영면한다.
# 소속사 “우울증 치료 받아”…영화·드라마·연극 왕성한 활동
전미선의 느닷없는 부고는 6월 29일 오후에 전해졌다. 전주 완산경찰서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1시 40분경 전주 전주시 고사동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매니저에 의해 발견됐다. 전날 전미선과 동행해 전주를 찾은 매니저는 아침이 돼서도 전화통화 연락이 닿지 않자, 호텔에 양해를 구하고 객실로 들어가 고인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면서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기에 고인의 죽음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망 전날 전주를 찾은 이유도 6월 29일과 30일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공연을 위해서였다.
경찰에 따르면 전미선은 6월 29일 오전 1시40분경 친정아버지와 4분가량 통화를 했다. 당시 전미선은 아버지와 통화에서 “가족들이 아파서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은 최근 전미선은 개인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친정어머니가 투병 중이고, 최근 오빠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평소 가족애가 각별하던 전미선이 큰 슬픔에도 빠졌다는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6월 25일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 전미선. 고성준 기자
10년 가까이 전미선과 일한 담당 매니저는 토요일 오전 소식을 접하자마자 충격이 가실 새도 없이 곧장 전주로 향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이날 오후 늦게야 소속사 보아스엔터테인먼트는 전미선의 부고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사인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평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다”고는 짧은 설명만 덧붙였다. 그러면서 “충격에 빠진 유가족을 위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추측성 보도는 자제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유족이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소속사의 공식 입장도 이처럼 간결하게 작성됐다.
# 주연영화 개봉, 드라마 촬영 앞두고 돌연…
전미선의 생전 마지막 무대는 6월 25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 자리였다. 주로 드라마에 출연해온 고인이 오랜만에 규모가 상당한 영화의 주연을 맡아 의욕을 보였고, 곧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유작’이 된 이 영화에서 고인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돕는 소헌왕후 역을 맡았다. 왕 못지않은 ‘대장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역할을 맡아 기대를 키우던 차였다. 전미선을 향한 상대 배우 송강호의 기대 또한 상당했다. 송강호는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 만에 재회한 전미선을 두고 “푸근하고 따뜻함을 가진 누님 같은 느낌의 배우”라고 친근함을 표하면서 이번 영화에서의 활약에 기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영화 공개에 의욕을 보인 이는 다름 아닌 전미선이다. 제작보고회 참석 뒤 영화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 인터뷰 녹화에 나섰을 때도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 속에 기대와 각오를 밝혔다. 때문에 ‘나랏말싸미’ 동료 배우들과 제작진은 고인의 갑작스러운 부고가 더욱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 속에 깊은 슬픔에 빠졌다.
영화 ‘나랏말싸미’를 함께 작업한 배우와 스태프들의 기념사진. 조철현 감독과 송강호는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달려왔다. 사진 = 영화 ‘나랏말싸미’ 홍보 스틸 컷
전미선은 한결같은 연기 활동으로 팬들에게 공감과 신뢰를 안겼다. 1989년 KBS 1TV 드라마 ‘토지’로 데뷔한 이래 공백 없이 성실하게 연기해왔다. ‘제빵왕 김탁구’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등 인기 드라마에 늘 등장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미선을 잘 아는 연예 관계자들은 “고인은 착하고 따뜻한 성품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평소 함께 일하는 스태프를 누구보다 살뜰하게 챙긴 것으로도 유명했다.
덕분에 전미선은 드라마 제작진이 늘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로 꼽혔다. 고인이 올해 가을 출연키로 했던 KBS 2TV 드라마 ‘조선로코 녹두전’의 연출자 김동휘 PD는 갑작스러운 부고에 놀라 출연진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드라마 촬영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같은 분야에서 일한 동료로서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 게 도리”라는 이유에서였다. 영화 팬들도 추모에 동참했다. 온라인 게시판인 디시인사이드 영화갤러리는 애도문을 내고 “혼신의 영혼으로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한 명배우였다”고 추모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