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초기 대응 부실 지적 이어져…의붓아들 사망은 현남편-경찰 진실공방 비화
검찰 송치되는 고유정. 연합뉴스
사건은 고유정의 전 남편 강 아무개 씨(36)가 지난 5월 25일 아들(5)을 만나러 제주 자택을 나서면서 시작됐다. 강 씨와 고 씨는 2017년 성격 차이를 이유로 합의 이혼했다. 양육권은 고 씨에게 있었다. 고 씨는 친정에서 아들을 키우다 재혼 후 충북 청주와 제주를 오가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강 씨가 가사소송을 통해 2년 만에 아들을 보는 날이었다.
세 사람은 25일 오전 11시 30분 서귀포시 한 테마파크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 4시 20분쯤에는 제주시 한 마트에 들러 고 씨의 그랜저 차로 옮겨 탄 뒤 예약해 놓은 무인펜션으로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이 펜션에서 범행이 이뤄졌다. 사흘 뒤인 27일 펜션을 나선 사람은 고 씨 혼자였다.
고 씨는 6월 1일 체포 당시부터 줄곧 단독 범행을 주장했으나 경찰은 키 160㎝에 50㎏ 남짓의 여성이 182㎝에 80㎏의 남성을 쉽게 살해할 수 없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강 씨의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의 일종인 ‘졸피뎀’이 검출되면서 약물에 의한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5월 25일 저녁 무인펜션에서 고 씨가 강 씨의 음식물에 약물을 넣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고 씨는 5월 17일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을 처방 받았다.
고 씨는 자신이 만든 저녁 식사인 카레라이스와 졸피뎀 약을 넣어둔 파우치 등을 사진으로 남겼다. 검찰은 사진이 찍힌 시간과 강 씨의 통화목록을 토대로 오후 8시에서 9시 16분 사이에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 씨는 아들이 다른 방에 있는 동안 강 씨를 살해했다.
26일 오전 아들을 친정에 데려다 준 고 씨는 본격적으로 시신 처리에 나섰다. 시신을 훼손하는 데는 하루가 넘게 걸렸다. 27일 미리 준비해 둔 가방과 봉투를 들고 펜션을 나서는 고 씨의 모습이 인근 CCTV에 포착됐다. 퇴실 이후에는 시내에 위치한 또 다른 숙박업소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그 사이 인근 병원을 두 차례 방문해 다친 손을 꿰맨 사실도 확인됐다.
28일에는 범행도구를 구입했던 마트를 다시 찾았다. 남은 물건을 환불 받기 위해서다. 이후에는 다른 마트로 이동해 여행용 가방과 종량제 봉투 30장, 향수 등을 구입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오후 8시 30분 완도행 여객선에 탑승한 고 씨는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봉투를 바다에 버린 뒤 제주를 빠져나갔다.
29일 새벽 무렵에서야 아버지 소유의 김포 자택에 도착한 고 씨는 미리 주문해둔 전기톱으로 2차 시신 훼손에 나섰다. 29일부터 31일까지 3일에 거쳐 시신을 처리한 고 씨는 31일 오전 3시쯤 박스와 종량제봉투를 들고 분리수거장에 나타났다. 시신을 유기한 고 씨는 곧바로 청주로 떠났다. 같은 날, 경찰은 제주 펜션에서 강 씨의 혈흔을 발견했다.
피해자 시신을 수색 중인 경찰. 연합뉴스
#CCTV부터 시신까지…번번이 기회 놓친 경찰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범인을 잡았다고 자찬했지만 수사기관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거세지고 있다. 사건의 핵심 증거들이 유가족과 언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까닭이다.
범행 직후 인근 CCTV를 확보한 것도 유가족이었다. 여기에는 27일 오전 11시 30분 고 씨가 펜션을 퇴실하면서 쓰레기 봉투 4개를 버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유가족이 27일 “아들을 만나러 간 강 씨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실종 신고를 한 지 나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사이 고 씨는 완도행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 인천과 김포 등을 거쳐 청주에 있었다.
이 밖에도 범행 장소인 펜션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지 않은 점, 펜션 주인이 사건 현장을 청소할 수 있도록 허락한 점, 현장 검증을 하지 않은 점 등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색 과정에서 여러 차례 뼛조각이 발견됐으나 모두 동물의 뼈로 밝혀졌다. 결국 이번 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지게 됐다.
부실수사라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진화 작업에 나섰다. 민 청장은 1일 간담회를 열고 “수사과정에서 부족함이나 소홀함이 있었던 부분을 본청에서 짚어보겠다”고 밝혔다. 2일 경찰청은 진상조사팀을 제주로 보내 부실수사 논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다.
#진실공방으로 번진 의붓아들 사망 사건
한편 고 씨의 의붓아들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고 씨의 의붓아들은 3월 2일 오전 10시쯤 청주시 상당구 아파트 자택에서 현 남편 홍 아무개 씨(37)와 함께 잠을 자던 중 숨졌다. 당시 고 씨는 감기에 걸려 다른 방에서 잠을 잤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3월 ‘압착에 의한 질식’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냈다.
그런데 홍 씨가 지난달 고유정을 의붓아들 살인죄로 고소하면서 여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홍 씨는 고 씨를 고소한 직후 다수의 매체를 통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고유정의 행적과 3월 당시 고유정의 행적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고 씨가 강 씨의 카레라이스에 졸피뎀을 넣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홍 씨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도 사망 전날인 3월 1일에도 카레를 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고유정이 카레 안에 약물을 섞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이상하다. 수법이 똑같지 않나. 아이는 카레를 먹은 뒤 2시간이 안 돼 잠들었다”라고 반문했다
홍 씨는 앞서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아들이 사망하기 전 날 고유정이 건넨 차를 마신 뒤 평소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며 계속해서 약물 살인 사망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청주 상당경찰서는 6월 15일 “홍 씨의 체모 감정을 했으나 졸피뎀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3월 부검 결과 의붓아들에게서도 약물이나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수면제 성분의 일종인 졸피뎀은 통상 체내에 1년까지 남아있다.
홍 씨는 의붓아들이 사망한 뒤에도 고 씨가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던 점, 제주의 시댁을 방문하지 않은 점 등이 수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청주 상당경찰서에 대한 부실수사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청주 상당경찰서가 “의붓아들 사망 사건 수사를 종결한 적이 없으며 홍 씨는 5월 말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는 반론을 내면서 진실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청주상당경찰서 수사팀은 프로파일러와 함께 1일 제주구치소를 찾아 고 씨를 상대로 대질조사를 벌이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고 씨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고소인인 홍 씨를 조사할지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