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사치’였던 삶 살다 유튜브 스타에 베스트셀러 작가까지…“내 인생이 빈대떡처럼 뒤집어졌구나”
끝없는 어록의 주인공이 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다. ‘평생 일만 하다 죽을 팔자구나’ 하던 차에 박막례 할머니는 치매 위험 판정을 받았다. 손녀 김유라 PD는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할머니와 호주 여행을 떠났다. 할머니의 인생 첫 자유여행이었다.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손녀는 3분 가량의 짧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유튜브가 뭔지도 모른 채 유튜브에 올렸다. 단숨에 대박이 났다.
구독자 95만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사진=유튜브 갈무리
두 사람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튜버가 됐다. 채널의 주인공은 박막례 할머니. 연출은 손녀 김유라 씨가 맡았다. ‘73세 박막례 할머니의 무한도전…이 채널의 방향은 할머니의 행복입니다’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채널 소개다. 영상 속 박 할머니는 크고 작은 도전들을 거듭한다.
생애 첫 파스타 먹어보기, 브이로그 촬영과 같은 사소한 도전은 영화제 레드카펫 오르기, 구글 본사 방문으로 이어졌다. 손녀의 각종 제안에 “염병한다”며 퉁명스레 굴다가도 이내 “핫핫핫핫” 웃으며 즐기는 박 할머니의 모습에 구독자는 2년만에 95만을 넘어섰다.
‘박막례’에 빠진 사람들은 구독자뿐만이 아니다. 지난 4월 유튜브 CEO 수잔 워치츠키는 오로지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바로 다음 달엔 구글 본사에서까지 이들을 초청해 CEO와의 만남을 가졌다. 2018년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담아낸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위즈덤하우스)는 6월 3일 발간 후 줄곧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팬 사인회도 6분 만에 마감될 만큼 이들의 인기는 뜨겁다. ‘일요신문’은 박막례, 김유라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의 성공기를 들었다.
영국 BBC는 6월 13일 박막례, 김유라 씨를 소개했다. 사진=BBC 홈페이지 갈무리
–호주에서 헬멧다이빙에 도전하면서 “에라 모르겠다. 나 죽으면 내 보험금 네가 타먹어라”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도전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박막례) 그냥 하는 것이여요. 나는 막 머리 아프게 싶게 생각 안 해요. 실패해도 도전했다는 거 자체가 나한텐 너무 소중한 경험이여요. 일만 하고 자랐으니까, 그런 기회가 없었거든요.”
–손녀 입장에선 할머니의 도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김유라) 70대에게, 그러니까 모든 게 익숙해서 느슨해져 버린 삶에 팽팽한 긴장감과 가슴 터지게 떨리는 설레임, 성취감만큼 귀한 선물이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안하는데 그걸 즐기시는 모습에 저도 같이 성장하고 많이 배워요.”
–버블 티 마시기부터 패러글라이딩까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박) 하늘 나는 ‘패러굴러이딩’인가 뭔가 굴러다녀서 ‘굴라딩’인가 했네. 난 그게 젤로 신기하고 내가 나이가 많은데도 태워줘서 진짜 좋드라고요.”
–PD로서는 채널을 관통하는 주제가 ‘인물’이라는 점에서 콘텐츠 기획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김) 주로 영화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요. 우리 채널 콘텐츠를 보면 말도 안 되는 대답 같지만요.”
–예를 들자면.
“(김) 영화 ‘토이스토리’를 보고, 할머니에게도 장난감 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렸을 때와 달리 할머니에겐 장난감을 가지고 놀 기회가 없었으니까 ‘앤디와 우디’ 같은 우정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장난감 관련된 콘텐츠가 나오기도 하고요. 김현철 씨의 ‘동네’ 라는 음악을 듣고 할머니가 동네를 기록해보는 콘텐츠는 어떨까 궁금해서 폴라로이드를 가지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할머니 시선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나오기도 했고요.”
–채널에 게시된 영상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영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 정작 위 두 가지와 전혀 상관은 없는 ‘수잔을 찾아서’ 라는 콘텐츠입니다. 작년 구글 I/O 행사에 초대되어 만들었던 영상인데 제 영혼을 다 갈아 넣어 만들었거든요.”
–할머니의 독보적인 캐릭터와 손녀의 기획력이 시너지를 내며 유튜버로 큰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유튜브 CEO ‘수잔 워치츠키’와 구글 CEO ‘선다 피차이’를 연달아 만나면서 유튜버로서 “끝판왕을 깼다”고 하셨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박) 나는 진짜로 구글 사장님이, 혼내는 줄 알고 조금 무서웠어요. 근디 나를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해서 믿기지도 않고… 그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진짜 ‘내 인생이 빈대떡처럼 뒤집어졌구나’라고 실감한 날이여요.”
“(김) 너무 일찍 끝판왕을 깨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 보다 더 큰 건 자신감이 생겼다는거예요. 우리 콘텐츠가 좋은 방향으로 가는 콘텐츠라는 것을 세계에서도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구나 생각했어요. 앞으로 우리 채널에 더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들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CEO와의 만남이 결코 한순간에 얻어진 행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글과 유튜브의 CEO가 채널 ‘박막례 할머니’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 이미 구글과 유튜브는 우리 세대를 고객으로 데리고 있잖아요. 전 세계가 고령화 되어 가면서 구글도 노년층을 그들의 고객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할머니가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큰 영감이 됐을 것 같아요.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을 것 같고요. 구글 CEO는 실제로 저희 채널이 자신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채널’이라고 말했고, 유튜브 CEO는 우리가 ‘유튜브가 원하는 방향의 채널’이라고 얘기했었기에… 아마 그게 답이 아닐까요?“
구독자 95만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 사진=다이아TV 제공
–말씀하신 대로 ‘부침개처럼 뒤집혀버린 삶’을 살고 계신데, 현재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박) 희망. 내 삶은 사실 희망이 없었어요. 이런 삶을 살 거란 생각도 안했고, 그럴 수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희망은 사치였어요. 근데 내 인생을 보고 우리 젊은 친구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희망으로 표현해 봤어요.”
–두 분에게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요.
“(박) 나는 늙었어도 지금이 좋아요. 정말로 젊었을 때는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난 안 돌아갈래요.”
“(김) 저도 딱히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지난날도 그 날 그 날 충실하게 살아왔기에 ‘다가올 날들을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뿐이에요.”
–손녀로서 할머니와 함께 채널을 운영하고 책도 집필하면서 할머니를 더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PD 님은 ‘70대가 된 나’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김) 과거엔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할머니의 인생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면서 그 나이 대에도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고, 또 나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노인이 되는 게 두렵진 않아요.”
–‘70대의 나는 어땠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있다면.
“(김) 그냥 무릎만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도 무릎이 제일이라고 하세요. 나중에 노년의 삶을 더 즐길 수 있게 ‘무릎 관리를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입니다.”
–할머니처럼 노년기에 접어들어 “종친 내 인생, 생각하기도 싫다”는 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김) 저도 제 인생에 더 이상의 반전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에서 모든 기회는 20대에 잡지 않으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를 보면 알 수 있죠. 그러니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나에겐 아직 그 날이 오지 않은 것 뿐, 언젠가 올 거예요.”
–마지막으로 두 분의 버킷리스트가 궁금합니다.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박) 나훈아 만나기?”
“(김) 나훈아 만나게 해주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 나랑 동갑이고, 생일도 한 날이고…”
“(김) 그냥. 할머니가 좋아해서요!”
이은영 인턴기자 slvr_you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