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책실장 금융위-금감원 수직구조 비판해와…윤석헌 금감원장과 남다른 인연 눈길
금융권은 김상조 정책실장의 등장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 출신인 김 실장이 지닌 뚜렷한 소신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이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였을 때는 선거캠프에 합류해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근간인 ‘J노믹스’ 설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김 실장은 경제학 가운데서도 금융을 전공한 인물이다. 그는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 활동을 통해 소신을 활발히 펼쳐 왔다. 2012년 출간한 책 ‘종횡무진 한국경제–재벌과 모피아의 함정에서 탈출하라’에서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6월 27일 취임 인사를 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김 실장 취임으로 금융감독원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은숙 기자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제부총리와 함께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평소 펼쳐왔던 금융정책 관련 소신을 실현해 볼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금융권은 김 실장이 가장 먼저 금융감독 체계, 즉 금융위와 금감원의 권력구조를 손보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두 기구는 금융위가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금감원은 금융감독업무를 맡는 식으로 기능이 이원화돼 있다. 하지만 업무가 상당 부분 겹치다보니 금융위와 금감원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를 비롯해 금감원 예산안, 키코 피해보상, 특별사법경찰 출범 등 현안마다 충돌해 왔다.
특히 공식 정부기관인 금융위가 반민반관 조직인 금감원보다 사실상 우위에 서 있는 구조로 운영되다보니 양측의 권력다툼이 잦았던 것이 현실이다. 최종구 위원장의 경우도 종합검사와 키코 분쟁조정을 두고 ‘우려’, ‘의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금감원을 계속 압박했다. 금감원 직원들 입에서 ‘금융위의 몽니’라는 말이 수시로 들릴 정도였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 2년 연속으로 금감원 예산을 삭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권은 김 정책실장의 등장으로 앞으로는 금감원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정책실장이 이른바 ‘모피아’를 한국 경제의 중요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라고 보고 있어서다. 모피아는 과거 재정경제부의 영문약자인 ‘MOFE’와 이탈리아의 범죄조직인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정부의 경제 관료 출신들이 은퇴 뒤에도 정계나 금융권 요직을 맡으며 경제와 금융을 장악하는 집단으로 세력화된 것을 비판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김 정책실장은 2012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언론사에 ‘김상조의 경제시평’을 연재했는데 당시 한 기고문을 통해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 모피아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모피아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금융감독 체계를 왜곡하는 힘의 원천을 놓고 “한국 금융업계가 그 정도 힘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결국 문제의 근원은 모피아로 막강한 금융감독 권한을 모피아의 조직적 이익을 위해 오남용하고 있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썼다. 모피아는 정부기관인 금융위에 주로 포진하고 있는 만큼 금융위 권한 축소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석헌 금감원장과 남다른 인연도 금융위를 긴장케 하는 요소다. 김 정책실장과 윤 원장은 2013년 ‘올바른 금융감독 체계 개편 촉구를 위한 금융학자 기자회견’을 연 것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모델 금융감독법의 구조’라는 논문을 내는 등 꾸준히 함께 활동해 왔다. 오랜 시간 같은 목소리를 내다보니 개인적 친분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청와대 비서실 인사가 발표되던 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키코 분쟁조정과 관련해 자신이 했던 말을 사실상 뒤집으며 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분분한 해석을 낳았다. 최 위원장은 지난 6월 중순 “키코가 분쟁조정 대상인지 의문”이라는 말로 키코 피해기업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1년간의 재조사 끝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열 계획이던 금감원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키코 관련 논란에 해명할 게 없냐고 묻는 언론의 질문에도 “없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뒤인 지난 6월 21일 김 실장이 임명되자 그는 DGB금융그룹 핀테크랩 출범식에 참석해 “키코 분쟁조정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면서 “양 당사자가 받아들일 좋은 안이 나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