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부여와 관리업 진출에 대한 단체 간 이견, 국토부 한발 물러서 의견 수렴, 국회 “시간 촉박”
주택관리사법 제정안은 먼저 주택관리사의 지위, 업무 등을 규정하고, 주택관리사 자격시험과 주택관리사 협회에 관한 내용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격과 업무 그리고 관련 단체로 이어지는 제정안의 형식은 공인중개사법 등 타 자격법과 유사하다.
제정안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 중 하나는 제5조 부당간섭에 관한 조항이다. 주택관리사 즉 아파트 관리소장이 부당 간섭을 받았을 때 지자체장에게 조사를 의뢰하고 지자체장은 즉시 조사해 시정명령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부당한 간섭에 대한 방지는 관리소장의 지위를 확고히 할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까지 관리소장 고용 권한을 가진 입주자대표회의가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는 관리소장을 교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관리회사를 바꿔서라도 소장을 해고하는 일은 흔하다. 서울시 아파트 관리소장의 평균 재직기간이 1년 남짓이라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실례로 입주민, 임차인 간 마찰을 빚는 서울 강서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신임 관리소장이 부임하자 “우리인지 임차인인지 어느 편을 들 건지 결정하라”는 말을 다른 입주민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했다. A아파트는 서울시 감사에서 과태료, 시정명령 등 다수의 행정처분을 받은 아파트다.
공동결정을 위반해 시정명령을 받았음에도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소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단독결정을 지속하고 있다. 관리소장도 위법성 여부를 인지하고 있지만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항하지 못한다. 당장 일자리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부당 간섭을 방지하는 조항은 공동주택관리법에도 규정돼 있지만 법 제정과 강화가 뒤따른다면 주택관리 업무에 보다 충실할 수 있을 것으로 주택관리사들은 전망한다.
이번 제정안의 뜨거운 감자는 제13조와 제20조 등에 규정된 주택관리사사무소와 주택관리법인에 대한 내용이다. 해당 조항은 주택관리사의 주택관리업 진출을 의미한다.
제정안은 기존 공동주택관리법에 규정된 주택관리업에 대한 조항을 삭제(부칙 제8조)했다. 주택관리사법 안에 주택관리업을 포함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주택관리업(공동주택 위탁관리)을 수행하는 한국주택관리협회는 “주택관리사가 아니면 주택관리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라며 “주택관리업자 업무영역에 대한 침해이자 주택관리업을 주택관리사가 통제하려는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아울러 “주택의 관리는 소유자의 자유와 권한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주택관리사협회는 “주택관리사사무소는 소규모 공동주택 등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공동주택을 관리하기 위한 조항”이며 “주택관리법인에 주택관리사를 두는 것 역시 공동주택 관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답했다. 주택관리업 진출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한편 일각에서는 주택관리업 진출에 조항은 이해단체들과의 거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주택관리업체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대목인 주택관리업 진출 조항을 내주는 대신 주택관리사법 제정에 대한 동의를 얻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주택관리사협회 법제국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해단체들과의 의견 교환을 통해 법안 수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 내주고 말지를 정해놓은 바는 없다”고 했다.
한편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는 8일 “지난 4월 토론회에서 주택건설공급과장이 밝혔듯 기존 법령과의 충돌과 이해단체 간의 마찰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숙의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주택관리사법이 20대 국회에서 제정될 수 있을까. 회기 내 제정 여부에 대한 질문에 주택관리사협회는 “이번 회기 제정을 위해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현 여부는 녹록지 않다는 것이 여의도 정가의 예측이다.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실 A정책비서관은 “내년 4월 총선까지는 불과 9개월이 남았다. 통상 법안 발의 후 상임위에 상정하고 소위에서 논의한 후 공청회를 통해 각 이해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까지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후 전체회의,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족히 1년은 내다봐야 한다는 게 정설”이라고 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여야가 회기 말미에 경색된 구도를 풀고 쌓인 법안을 신속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주택관리사법이 신속처리 될지는 미지수다. 주택관리사법은 개정안이 아닌 제정안이기 때문이다.
A비서관은 “회기 말미 일부 법안을 신속처리 해온 예도 있었지만 법률 제정안의 경우는 다르다. 제정안은 꼼꼼한 심사와 논의가 따르기 때문에 신속처리 법안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김창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