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재신임 안건 놓고 계파 충돌…사실상 무용지물 지적
바른미래당이 지난 1일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각 계파의 셈법도 다르다. 혁신위를 통해 손학규 대표를 자리에서 끌어 내리려는 자들과 그 계획을 와해시키려는 이들의 갈등으로 혁신위 활동마저 위태로워 보인다. 연합뉴스
혁신위는 출발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손학규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는 외부 인사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유승민계와 안철수계는 정병국 의원을 밀었다. 진통 끝에 당권파가 미는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가 출범했다.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혁신위는 출발부터 계파 갈등으로 삐걱거렸다. 권성주 이기인 혁신위원은 유승민계, 구형모‧장지훈 위원은 안철수계, 김소연‧김지나‧조용술‧김지환 위원은 손학규계로 분류됐다.
혁신위는 지도부 여론조사와 공개청문회에 대한 혁신안을 찬반 투표에 부쳤다. 당 안팎에서는 반대를 점쳤다. 손학규계 4명에 주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이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추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5명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사실상 지도부 재신임을 묻는 성격의 혁신안이 마련됐다.
이를 두고 주 위원장은 7월 11일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혁신위 출범 10일 만이었다. 그는 “미래비전, 당 발전 전략 없이 계속 딱 하나의 단어 ‘손학규 퇴진’ 얘기만 하는 분들이 혁신위 절반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손학규 퇴진 안건’이 최고위에 상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퇴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다음날 조용술 위원도 사퇴를 선언하며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그는 “당규에 보면 혁신위는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그럼에도 당의 유력인사가 저에게 따로 (손 대표 퇴진과 관련한) 혁신안건을 논의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이런 행태가 혁신위의 자율성을 만들 수 있을지, 그런 혁신위라면 존재 가치가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당의 유력인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아직 당이 이 문제를 사과하기 원하기 때문에 밝히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알 만한 유력 인사 중 하나”라고 답했다.
주 위원장 또한 사퇴와 동시에 “혁신위원을 뒤에서 조종하고 당을 깨려는 검은 세력에 대해 크게 분노를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취재 과정 중 혁신위 관계자 두 명은 ‘유력 인사’가 이혜훈 의원이라고 밝혔다. 바른정당 출신인 이 의원은 유승민계로 분류된다. 이 의원에게 입장을 물었지만, 전화통화와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유승민계로 꼽히는 하태경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검은 세력이다. 내가 검은 세력이라고 (기사에) 써라”고 하면서 “그게 왜 중요하냐. 손 대표 퇴진도 혁신의 일부 아닌가”라고 말했다. 구혁모 혁신위원도 “검은 세력? 그런 건 공감 못 하겠다. 사퇴하지 않고 남아 있는 혁신위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검은 세력입니다.’ 이런 논란을 희화화한 것으로 받아들여달라”고 밝혔다.
반면, 손 대표 측근인 문병호 최고위원은 “혁신안을 토대로 개혁정당을 만들고 강한 야당, 젊은 정당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지금 (연합군은) ‘손학규 퇴진’을 위해 혁신위를 노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퇴한 김소연 전 혁신위원도 “조심스러웠다. (퇴진 관련) ‘여론조사’라는 단어도 조심스럽게 쓰길 원했는데, 결국 혁신위 회의 결과가 생생하게 다 밖으로 나가며 ‘손 대표 퇴진’까지도 보도가 다 난 거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바른미래당 주대한 혁신위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한 직후,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어찌됐건 혁신위는 좌초 위기를 맞은 모양새다. 구혁모 혁신위원은 “위원장이 사퇴했으면 또 다른 사람을 찾아서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지도부는 혁신위와 관련한 공개 발언을 줄이고 있다. 우리는 (위원장 선출 관련) 간담회를 요청한다는 공문까지 보냈는데”라며 “흐지부지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혁신위 활동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시간만 때우려는 건지…”라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도 ‘앞으로 혁신위는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질문에 “글쎄, 열심히 (위원장을) 찾아봐야지”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병호 최고위원도 “새로운 위원장을 선임해야겠지만,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지 않나. 권위도 안 서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혁신위 활동 기한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혁신위에서 의결한 안건은 혁신위원장 없이 최고위 상정이 불가해 현재의 혁신위로는 활동이 어렵다.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