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 않는 정직원 중심 제작체제로 우수 인재 몰려…아티스트 30여 명 동시에 숨진데다 몇몇 작품 원화 완전 소실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의 성지가 불탔다. 교토애니메이션 방화사건으로 34명이 숨지고 35명이 부상을 당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애니메이션계의 끔찍한 비극이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회사 ‘교토애니메이션(쿄애니)’에서 최악의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무려 34명이 목숨을 잃고 35명이 다치는 큰 인명피해가 났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불을 지른 용의자는 사이타마현에 거주하는 41세 남성 아오바 신지다. 워낙 많은 사상자가 나온 데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상징 같은 곳이기 때문에 범행동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7월 18일 오전 10시 35분. 한 남성이 쿄애니 1층 현관에 침입해 “죽어라” 하는 외침과 함께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범행시간은 불과 1분. 건물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3층짜리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전소됐다.
당시 사건을 목격한 주민은 “갑자기 펑 소리가 나더니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고 전했다. 현장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유독성 검은 연기가 건물 내부를 덮쳤고, 갇힌 직원들은 “살려 달라”며 비명을 질렀다. 간신히 빠져나온 직원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쿄애니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러키☆스타’ 등 굵직한 히트작을 배출한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회사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교토에 위치한 본사 건물은 팬들에게 ‘성지’로 불릴 정도다. 이를테면 건물 자체가 일본의 ‘보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곳이 모두 불타고 말았다.
CCTV에 포착된 용의자 아오바 신지. NHK 뉴스 캡처.
참극을 일으킨 용의자는 누구인가. 교토 경찰은 19일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용의자는 41세 남성 아오바 신지로, 범행 직후 현장 인근에서 붙잡힌 것”으로 전해진다.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전에 용의자의 이름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와 관련 교토 경찰은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용의자는 2012년 편의점 강도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 6월의 실형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또 정신질환으로 인해 관련 의료기관을 이용한 이력도 있다. 복역 후에는 출소자 보호시설에서 머물렀으며 2~3년 전쯤 사이타마시로 이주해왔다. 하지만 여기서도 잡음은 끊이질 않았다.
‘주간아사히’는 “용의자가 거주지에서 소음을 일으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범행을 저지르기 며칠 전에는 이웃 주민과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옆집에 사는 20대 남성은 “밤에 벽을 쾅쾅 치고 고함을 지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며 “참다못해 찾아갔더니 내 멱살을 움켜쥐고 ‘죽여 버린다. 짜증나니까 입 다물라’고 협박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방화사건으로 이어진 걸까. 범행 동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건 현장에서는 칼 6자루와 망치가 발견됐다. 수사 결과 “용의자가 건물 침입 직후 양동이에 들어 있는 휘발유를 근처 직원 몇 명에게 직접 부은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용의자가 명백한 살의를 가지고 불을 붙인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용의자는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쿄애니가 내 소설을 훔쳤기 때문에 불을 질렀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애니메이션 사업 시 ‘스토리와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항의가 곧잘 들어온다”고 밝혔다. 쿄애니 역시 사이트 게시판에 “직원을 죽이겠다”는 글이 몇 차례 올라온 적이 있어 경찰은 협박성 글을 쓴 사람이 방화 용의자인지 조사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용의자는 애니메이션 일을 한 적도, 소설을 출판한 사실도 없다.
미국 애플의 CEO 팀 쿡이 자신의 트위터에 “쿄애니는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제작자와 꿈을 좇는 사람들의 본거지였다”면서 추모의 글을 올렸다.
쿄애니의 핫타 히데아키 사장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을 짊어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잃은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우수했고 좋은 친구들이었다”면서 사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제일선에서 활약하던 아티스트가 동시에 30명 이상 살해된 미증유의 사건. 무엇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받은 충격은 상당히 크다. 애니메이션 평론가 히카와 류스케 메이지대학원 특임교수는 “쿄애니가 차지하는 존재감이 특별했다”고 강조한다.
기존 업체들은 하청과 프리랜서의 비중이 컸지만, 쿄애니는 정직원 중심으로 제작을 진행해왔다. 되도록 제작 스케줄을 넉넉히 잡아 철야작업을 하지 않는 것도 특징. 급료 역시 성과급이 아닌 봉급 형식이었기 때문에 작업량이 많든 적든 일정한 급료가 지급됐다. 덕분에 퀄리티 높은 작품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체제를 이룰 수 있었고, 우수한 인재들이 쿄애니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방화사건으로 인해 많은 인재들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만들어진 몇몇 애니들의 콘셉트 디자인과 원화 자료들도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 150명 중 40%가 넘는 69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니, 회사로서는 중대한 피해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로 봤을 때도 매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같은 수준의 인력을 키우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예측도 나온다.
한편 이번 방화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가 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애플의 CEO 팀 쿡은 자신의 트위터에 “쿄애니는 세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제작자와 꿈을 좇는 사람들의 본거지였다”면서 “쿄애니의 아티스트들이 걸작을 통해 전 세계와 세대를 아우르는 기쁨을 선사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는 일본어로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고도 적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스즈미야·러키☆스타…21세기 애니 선두주자’ 쿄애니 어떤 작품 있나 쿄애니의 메가히트작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교토애니메이션은 1981년 창업됐다. 본사는 교토에 위치해 있으며, 보통 줄여서 ‘쿄애니’라 부른다. 초창기에는 하청업체에 불과했지만, 2003년 애니메이션 제작에 첫발을 들였다. 이전에는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기동전사 건담’의 도미노 요시유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 같은 거장 감독들의 시대였다. 작품적으로는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SF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던 것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심야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정착됐고, 쿄애니는 뛰어난 작화와 연출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특히 2005년에 제작한 ‘풀메탈패닉’을 통해 쿄애니 명성이 급격히 올라갔다. 2006년에는 메가 히트작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발표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엔딩에 나온 댄스 장면은 여러 커버 영상이 쏟아질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덧붙여 쿄애니는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를 바꾼 것으로도 유명하다. 흔히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은 음침한 오타쿠’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후 점차 변하게 됐다. 실제로 젊고 패셔너블한 여자아이들이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도 ‘러키☆스타(2007)’ ‘케이온!(2009)’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2012)’ 등이 쿄애니의 대표작으로 뽑힌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