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과잉 반도체 ‘울고 싶은데 뺨 맞아’…한국 채무상환능력 최고수준 채권 매력 부각
#“한국 반도체, 울고 싶은데 뺨 맞았다”
7월 들어 지난 24일까지 외국인이 순매수한 주식(코스피+코스닥)은 1조 5000억 원에 달한다. 2분기 순매도에서 빠른 전환이다. 채권은 2조 200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채권은 올 들어 2월 이후 누적 순매수액이 무려 33조 원에 달한다.
매수 주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되고 있다. 전년 대비 급감한 이익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가파른 우상향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생산 차질 우려보다 감산으로 인한 반도체 가격 반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으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과거사 부정, 경제보복, 한일 갈등 조장 아베 정권 규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성준 기자
한국은 세계 메모리반도체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세계적인 파장이 불가피하다. 최근 세계 주요국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한일 양국에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배경이다. 세계 IT업계로 파장이 확대될 경우 일본으로 따가운 시선이 쏠릴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기전자 관련 제조업계 타격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등이 중국과 미국 등 해외 공장을 통해 우회적으로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반도체 생산은 줄겠지만 공급이 줄어 가격이 높아진다. 공급 과잉에 직면한 반도체 업계에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 될 수 있다.
#“한국 채권 원더풀…일본보다 낫다”
채권은 일본보다 나은 경제 펀더멘탈에 점수를 쳐주는 모습이다. 한국 정부의 국제신용등급은 무디스와 S&P에서 각각 Aa2, AA다. 미국보다는 낮지만 일본보다 높다. 국가채무비율은 한국이 38%인 반면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인 23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3%니 한국은 이의 3분의 1이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의 채무상환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 뜻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신흥시장으로 분류되지만, 채권은 선진시장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무역흑자가 계속되고 있어 달러 공급도 원활하다. 최근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올 예상 경제성장률도 2% 안팎으로 0.6%~0.7% 내외인 일본보다 3배 이상 높다. 미국을 제외하면 선진국 가운데 이 정도 성장률이 예상되는 곳은 없다.
금리수준도 미국 다음으로 높다. 일본과 유럽은 국채 금리가 이미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했다. 채권을 사면 이자는커녕 원금을 까먹는 국면이란 뜻이다. 1% 중반의 이자율에 향후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지면 금리하락(채권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원화 강세까지 더해진다면 환차익은 덤이다. 한국 채권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한일 갈등 장기화·격화 가능성 여전
하지만 ‘바이 코리아(buy Korea)’에도 불구하고 증시와 경제를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일간 갈등은 경제전쟁 양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최혜국(white list)에서 한국을 제외했고,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맞서고 있지만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22일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등 보수연합이 안정 과반을 확보했다. 헌법 개정을 위한 3분의 2 의석에 단 4석이 부족해, 개헌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혐한(嫌韓)’ 정서가 이번 선거에서도 어느 정도 통했던 만큼 아베 정부의 한국에 대한 공세는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정부로서도 우리 경제의 급소를 노린 일본의 수출규제에 자칫 밀릴 경우 과거사 문제는 물론 독도 등 영토문제에서도 수세에 몰릴 수 있는 만큼 완강한 자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의 근간이 되는 무역흑자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만 830억 달러에 달한다. 메모리 반도체 무역흑자만 700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무역흑자액 673억 달러를 웃도는 규모다. 자칫 메모리 반도체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경우 우리 경제에 치명상이 우려되는 이유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단기간에 극복하기도 어렵다. 자체 개발 외에 독일과 미국 등 기술 선진국으로부터 대체재를 구할 수도 있지만, 물량을 확보하고 이를 생산공정에 적용하는 데는 길게는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아닌 곳에서 공급받을 경우 물류비용을 감당하거나 국내 설비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
#한일, 이제 냉전의 서막
설령 이번 사안에서 다행히 파국을 피하더라도 한일 양국의 갈등 국면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일본이 이미 수출규제라는 무기를 꺼내든 만큼 대일 의존도를 낮추려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노력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상호간 경제의존도가 낮아지면 서로 타협해야 할 이유도 줄어든다. 과거사 문제 등 한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독도 문제 등으로 인해 양국이 또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