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근 코치 “딸 13명 생겼다”…선수들 “수구 계속 하고파”, “수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종목인줄 몰랐다”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하는 여자 수구 국가대표팀. 연합뉴스
[일요신문] 7월 12일부터 28일까지 17일간 2019 광주 수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 수영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실력을 겨루는 무대에서 대회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큰 박수를 받은 팀이 있다. 그 주인공은 여자 수구 종목에서 참가국 16개국 중 16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에서 3득점 116실점으로 3전 전패했고, 이어진 순위 결정전 2경기에서도 56골을 내주고 3골만을 넣었다. 대회 5경기 종합 6득점에 172골을 내줬다. 그럼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이들은 대회 개막 직전 결성된 팀이었기 때문이다. 대회 첫 경기에서 참패한 이후 두 번째 경기에서도 크게 뒤지고 있는 상황서 첫 골이 들어가자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해외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대회 일정을 마치고 해산을 앞둔 대표팀의 지만근 코치와 일부 선수들을 지난 24일 광주에서 만났다.
대회를 약 50여일 앞두고 결성된 팀을 맡아온 지 코치는 “대회가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데 그동안 지난 하루하루가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것 같다”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전까지 한국은 여자 수구 종목에서 세계무대의 높은 벽에 부딪혀 세계선수권에 대표팀을 내보내지 못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이후 수영연맹 주관 대회에서 여자 수구가 사라졌다. 학교, 실업팀 등 여자 수구 팀이 국내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국가대표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여자 수구 종목에선 남북 단일팀 결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북한 측이 불참 의사를 최종적으로 통보하며 급히 대표팀을 꾸려야 했다. 지 코치는 “5월 21일에야 대표 선발전을 치렀다. 당연히 선발전에 참가한 선수들 모두 수구를 해본 적이 없는 경영 선수 출신들이었다. 선수들이 선발되고 이틀이 지나자 수영연맹에서 ‘여자 대표팀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며 연락이 왔다”라고 설명했다.
남자팀을 맡고 있던 지 코치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고민 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를 마치면 사라지는 팀이고 기존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지만근 코치는 “구기종목이 생소한 선수들이었기에 팀워크 다지기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사진=권나영 제공
선수들도 ‘처음 팀에 소집돼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팀 주장이자 골키퍼를 맡은 오희지는 “우연한 계기에 팀에 들어오게 됐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10대 선수들인데 활기차고 씩씩한 선수들이라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훈련하고 대회 치르면서 나도 다시 학생이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04년생으로 선수단에서 두 번째로 어린 라이언 하나윤은 “다들 경영 선수 출신들이라 국내 대회에서 한두 번쯤은 지나쳤던 언니들이다. 그래서 더 빨리 친해졌던 것 같다”며 웃었다.
김예진은 대표 선수로 대회에 나선 것을 ‘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국제수영연맹(FINA)에서 주관하는 세계선수권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경영으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구 대표팀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면서 “선발전에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고 집에서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웃음). 훈련도 했고 대회 참가를 위해 광주에 올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나더라”라고 말했다. 오희지도 “불과 1년전 까지만 해도 이 대회에 참가할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작은 부분에도 선수들이 감동하고 감사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대회 초반에는 일본인 관람객이 경기장에서 불법 촬영을 하다 적발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기장에 인접한 연습용 풀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지 코치는 “선수들이 놀랐을 법도 한데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훈련과 경기에 집중해 줘서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선수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짧았던 준비기간인 50여 일간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지만 실전은 가혹했다. 첫 경기 헝가리를 상대로 64골을 내주며 영패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대회 전 목표가 1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남자 고교선수들을 상대로한 연습경기에서는 0-100에 가까운 점수로 패배하기도 했다. 지 코치는 “주변에서 목표가 1골이라고 많이들 얘기하시는데 훈련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하프라인을 넘는 것, 파울 한 번 얻어내는 것이 목표였다. 13명 전원이 수구 공을 처음 잡아보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훈련을 하면서 생각보다 아이들이 빠르게 성장했고 목표를 높여갔다”며 웃었다.
골문을 책임졌던 오희지는 첫 경기를 떠올리며 “긴장감보다 ‘막아야 하는데 골을 많이 먹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많았다”면서 “연습경기가 아닌 실전이 처음이었고 야외 경기장도 첫 경험이었다. 실제 맞닥뜨린 헝가리 선수들의 덩치가 정말 컸다. 우리 선수들이 상대 체구를 보고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 코치는 “차이고, 잡히고, 긁히고의 연속이었다. 그게 수구인데 아이들이 그때 처음 경험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첫 골에 눈물을 흘리는 대표팀의 모습이 화제가 됐다. 사진=국제수영연맹 인스타그램 캡처
이후로도 대패는 계속됐지만 대표팀의 득점도 이어졌다. 캐나다전(2골), 남아공전(3골) 모두 상대 골문을 흔들었다. 권나영은 “쿠바와의 마지막 경기도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라면서 “마지막 10초를 남기고 우리가 슛을 던졌다.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골대를 맞고 나왔다. 우리가 치르는 마지막 경기라 더 간절했다. 한 골이라도 더 들어가길 바랐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쿠바전은 대표팀이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다. 26일을 마지막으로 해단하는 이들은 언제 다시 모여 손발을 맞출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만을 위해 급조된 팀이었기 때문이다. 지 코치는 “기약이 없는 헤어짐이다. 언제 모일지 모르고 다시 수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작별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권나영은 “이제 겨우 다섯 경기 했는데 헤어져야 한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고, 오희지도 “훈련, 대회 모두 후회 없이 했다. 다만 아쉬움은 이제 선수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며 아쉬움을 피력했다. 경기 일정을 모두 마치고는 회식 자리도 가졌다. 오지희는 이 자리에서 코치의 마지막 인사에 선수들이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코치님이 ‘그동안 수고했다’는 뜻을 전하려고 ‘50일 동안’이라고 말을 시작하자마자 선수들 울음이 터져 나왔다”며 웃었다.
선수들은 조심스레 수구를 계속 하고 싶다는 의지도 표했다. 오희지는 “어떤 형태로든 수구를 계속하고 싶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면서 “전문 수구 선수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클럽팀이 꾸려지면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 팀에 고3 학생들이 많은데 이 친구들 진로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평소에는 경영 선수 활동을 하다가도 시간이 나면 클럽팀에서 같이 수구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도 “계속 수구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김예진은 “수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종목인줄 몰랐다”며 웃었다. 이어 “혼자서 하는 경영과는 많이 달랐다. 경영은 혼자 챙길 것 챙기고 자기 자신만 신경 쓰면 된다. 수구는 정 반대였다.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선수들은 “어떤 형태로든 수구를 계속 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왼쪽부터 라이언하나윤, 김예진, 지만근 코치, 권나영, 오희지
인터뷰하는 시간 내내 지 코치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 대상도 다양했다. 그는 “예상치 못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다. 수구가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훈련 상대가 돼준 경기체고와 전남체고, 대회 시작 전부터 도와주신 분들, 대회장에 찾아와서 응원해 주신 광주 시민 분들께 인사드리고 싶다. 전국 각지에서 오셔서 응원 도구까지 손수 만드신 선수 부모님들, 팀 결성부터 대회까지 신경써주신 정창훈 단장님께도 감사드린다”면서 “일일이 전화를 드리기만 해도 며칠이 걸릴 것 같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 그에게도 가장 고마운 이들은 단연 선수들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착한 선수들을 만나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훈련 기간 동안 학교 수업을 듣지 못하니까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자율학습도 열심히 했던 아이들이다. 자기들이 스스로 비디오를 보면서 수구에 대해 토론도 하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아들만 둘인데 딸이 13명 생긴 느낌이다. 뭐든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마지막(7월 26일 해단)까지 48시간도 안 남았는데 아이들 얼굴을 보면 벌써 눈물이 날 것 같다.”
지 코치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통화 연결음으로 영화 ‘국가대표’의 OST인 ‘Butterfly’가 흘러 나온다. 이를 알고 있는지 묻자 선수들은 모두 미소를 지었다. 지 코치는 “선수들에게 그 노래를 자주 들려주고 이야기도 했었다. 우리하고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영화 한 번 찍을까”라는 농담을 던졌고 선수들은 까르르 웃으며 화답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