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개혁·대기업 사정 손발 잘 맞을 듯…조국 검찰 힘빼기 나서거나 윤석열 여권에 칼 들이대면 정면충돌
문재인 정부 하반기 관전 포인트의 백미는 ‘석국 열차’의 순항 여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7월 25일 취임 일성으로 ‘공정 경쟁’을 꺼내며 강골 칼잡이 면모를 드러냈다. 2년 2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절차만 남았다. 당장 보수 야당에선 ‘공포정치의 발주처’가 될 것이라고 연일 석국 열차 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여권도 마냥 웃을 수 없다. 개성 강한 이들이 충돌한다면, 석국 열차는 탈선한다. 마주 달리는 열차에 브레이크는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 이종현 기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미묘하다. 검찰은 독점적 기소권과 영장청구권을 가진다. 특정 사건에 대한 직접 수사권 및 경찰 수사에 대한 보완 수사 등 사법통제권도 손아귀에 쥐고 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 권력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무부 소속 외청이다. 검찰청법(제8조)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들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 ‘운명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우다. 윤 총장은 전임인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는 달리,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수사권 조정에 반대할 뜻이 없다”며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들이 손을 맞잡고 사법 개혁에 나서면 하반기 사정정국 조성은 한층 수월해진다. 이는 차기 총선을 앞두고 정국의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여권으로 끌어당길 메가톤급 변수다. 율사 출신의 민주당 한 의원은 “충돌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기업 사정 수사에서도 이들은 혼연일체의 ‘원투 펀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은 7월 25일 취임사에서 “형사법 집행을 함에 있어 우선으로 중시해야 하는 가치는 바로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이라고 밝혔다. 윤 총장은 검찰총장 취임사로는 이례적으로 설명자료까지 배포했다. ‘국민’이란 단어를 24번이나 썼다. 정치인들이 취임사나 선거 출마 때 즐겨 사용하는 헌법 제1조도 거론했다. 국민 검찰을 앞세워 좌고우면하지 않고 ‘마이웨이’ 하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문제는 그 외에 모든 이슈에서 석국 열차가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한 라디오에 출연, “(둘 다) 굉장히 개성이 강하고 정치적 야망이 있어 보인다”라며 “그런 강대강의 경우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딜레마는 조국발 검찰 내부 혁신이다. 조 전 수석이 검찰 힘 빼기를 단행할 경우 조직을 중시하는 윤 총장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청법상 ‘검사 동일체’는 없어졌지만, 기수를 중시하는 패거리 문화는 여전하다. 사법연수원 23기인 윤 총장 취임 전 용퇴 의사를 밝힌 검사장급 이상 간부만 두 자릿수를 훌쩍 넘은 것도 이 같은 기수 문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조국 딜레마’도 있다. 윤 총장의 ‘강골 기질’이 여권 내부로 과녁을 옮기는 순간, 조 전 수석 입지는 좁아진다. 윤 총장은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와 관련해 우월적 지위의 남용보다 권력기관의 정치·선거 개입과 불법 자금 수수 등을 먼저 거론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16대 대선 당시 불법 대선자금 사건 수사와 18대 대선 때 국가정보원(국정원) 선거 개입 수사 등을 통해 권력과 자본의 개입으로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왜곡해선 안 된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그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밝힌 윤 총장이 여권 내부 비리 포착 때 칼을 휘두를 수 있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윤석열호의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댈 경우 집권 후반기를 향해 가는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접어든다. 여권이 군불을 지피는 ‘조국 대망론’의 힘도 빠진다. 여권 한 관계자도 “조국의 힘은 문 대통령과의 동조화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도가 ‘조국 등판론’을 불렀다는 의미였다. 역으로 이들의 충돌은 문재인 정권 몰락의 빗장을 여는 단초로 작용할 수도 있다.
참여정부 때도 그랬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과 김종빈 전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권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했다. 천 전 장관은 2005년 10월 12일에 헌정사상 최초로 ‘6·25는 통일전쟁’이라고 한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지시, 김 전 총장이 옷을 벗으며 반기를 들었다. 사법연수원 8기인 천 전 장관은 김 전 총장(5기)의 후배였다.
그에 앞서 임명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13기)은 김각영(2기)·송광수(3기) 전 검찰총장보다 10기수 이상 차이가 나면서 묘한 관계를 연출했다. ‘비검사 출신’인 조 전 수석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윤 총장(79학번)보다 후배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의 친분은 두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이 있던 7월 25일 청와대에서 장시간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은 언론에 크게 다뤄졌다.
석국 열차는 역대급 조합이다. 대통령 신임이나 대중적 인지도만 보면, 가장 강력한 사정 라인이다. 개혁 열차의 속도만 붙으면 전광석화 같은 사법 개혁을 단행할 수 있다. 동시에 양날의 검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들이 의도적으로 선 긋기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소통 강화가 권한의 불명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석국 열차의 순항을 위한 ‘리베로 역할론’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다만 법조계와 정치권 해법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법조계에선 ‘법무부 검찰국장’이 석국 열차의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국장의 주 임무는 법무부와 검찰의 가교 역할이다. 법무부가 7월 31일자로 검찰국장에 이성윤 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23기)을 임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국장은 윤 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이면서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다. 석국 열차의 파국을 막는 절묘한 인사인 셈이다. 정치권에선 ‘김오수 역할론’이 흘러나온다. 이번 인사에서 유임한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당분간 조율사 역할을 맡을 것이란 게 핵심이다. 윤 총장(23기) 선배인 김 차관(20기)은 문 대통령이 신임하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다만 차기 공정거래위원장 등에 꾸준히 오르내린다.
석국 열차의 변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의 내부 장악력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조국 법무부 장관설이 힘을 받으면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법무부 기피 현상’이 확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과 함께 검찰의 요직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일선 검찰들이 법무부행을 꺼리는 것은 검찰 조직에 매스를 들 조 전 수석과 조직 사수가 불가피한 윤 총장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양새를 연출할 수밖에 없어서다.
윤 총장은 취임 직후 ‘친정 체제’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서울중앙지검 1·2·3차장에 신자용 법무부 검찰과장,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을 각각 기용했다. 이들은 국정농단·사법농단 수사 등에서 윤 총장과 한 몸을 이뤘던 친정 식구들이다. 또한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이후에 검찰수장이 된 총장들도 자신의 측근을 전진 배치,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 간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문재인 정권에 총을 겨눴던 검사들은 줄줄이 좌천됐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기소한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이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으로 발령 난 게 대표적이다. 서울고검 검사로 전보된 직후 사의를 표명한 권순천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은 인사 발령 직후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인사는 메시지라고 합니다”라고 윤 총장을 비판했다. 특수통 이외 형사·공안통을 두루 쓰는 탕평 인사도 윤석열호의 과제 중 하나인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