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전면 나서기엔 리스크 커…대표직 내려놓고 외부인사에 전권 준 ‘문재인 케이스’ 스터디
황교안 대표. 박은숙 기자
최근 한국당에선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여연)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황 대표 측이 김 원장을 교체하려 했지만 당 내부 반발로 무산됐다는 게 골자다. 김 원장 역시 불쾌감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황 대표 측은 김 원장이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여연 원장 자리를 바꿀 필요성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직(여연 원장)과 국회직(상임위원장)을 동시에 맡는 사례는 비일비재했다는 점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억측이 무성했다.
한국당 관계자들은 김 원장에 대한 황 대표의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친박계로 통하는 한 의원은 “황 대표가 여연 내부 인사, 선거 전략 수립 등을 탐탁지 않아 했다. 김 원장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김 원장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황 대표 종로 출마 얘기를 꺼낸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황 대표계로 통하는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연은 총선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다. 여연에 해당하는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을 봐라. 양정철 원장이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광폭 행보에 나섰다. 인재영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데 여연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더군다나 총선을 앞두고 여연 원장이 상임위원장까지 맡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황 대표는 당을 위해 원장을 바꾸려 했던 것인데, 계파 간 싸움으로까지 번질 기미를 보이자 뜻을 철회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황 대표 입맛에 맞는 원장을 임명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일단 여연을 장악해야 공천 등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아무리 대표라도 공천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그런데 김 원장과 몇 달 일해 보니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 같다. 황 대표가 총선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현재 황 대표는 사면초가 신세다. 비박계는 물론 황 대표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친박계에서조차 비토 기류가 거세다. 30%를 회복했던 당 지지율은 20%대로 다시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총선에서 완패할 것이란 우려가 퍼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에서 ‘황교안 대안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스스로가 이러한 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도 황 대표로선 뼈아픈 부분이다.
황 대표의 유일한 출구전략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총선이다. 패하면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내상을 입지만 반대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경우 차기 주자로서의 행보는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황 대표 측이 일찌감치 ‘총선 모드’로 접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황 대표 측 관계자는 “황 대표가 임기 초반 시행착오를 겪은 것은 맞다. (총선)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그러면 황 대표를 흔드는 세력들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의 관심은 현역 물갈이 폭, 인재영입 등을 놓고 과연 황 대표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에 모아진다. 한국당 안팎에선 현역 의원 절반가량이 공천 심사에서 떨어질 것이란 소문이 흉흉하게 나돈다. 공천안을 만든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위원장 신상진 의원) 관계자는 “당을 바꾸려면 우선 사람부터 바꿔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역대 공천안 중 가장 혁신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다. 현역도 원점에서 공천심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가 있었던 현역은 심사를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황 대표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총재의 길을 따라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1997년 대선 패배 후 대권 ‘재수’에 나선 이 전 총재는 2000년 총선 때 공천을 진두지휘하며 각 계파 수장들을 모두 탈락시켰다. 그리고 정치신인들을 대거 수혈해 과반에 가까운 성적을 냈다. 비록 대선에선 또다시 고배를 마셨지만 이 전 총재는 공천을 통해 총선 승리를 이뤄냈다.
황 대표 측 역시 과감한 물갈이는 불가피하다는 데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이 전 총재처럼 직접 전면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대신 2016년 총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종인 비대위를 띄웠던 사례를 면밀하게 스터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차기를 노리고 있던 문 대통령은 맡고 있던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해 총선 전권을 맡겼다. 안철수 탈당, 지지율 하락으로 당이 위기에 빠지자 내린 결단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민주당은 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차지해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을 제치고 1당으로 올라섰다. 이는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총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은 막후에서 인재 영입에 공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문재인 키즈’로 불리며 원내로 들어와 대선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또 현 정권 들어선 여권 주류 ‘친문’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황 대표 측은 김종인 위원장과 같은 ‘칼잡이’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얼마 전 황 대표가 만난 것으로 알려진 한 대학교수가 화제를 모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앞서의 황 대표계 의원은 “황 대표는 본인이 직접 출마하는 데 부담을 갖고 있다. 대신 전국을 다니면서 당의 승리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얘기했다”면서 “이런 차원에서 아예 총선을 전담할 인사 영입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유력 인사들을 접촉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황 대표가 총선 전 대표직을 사퇴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른바 ‘문재인 케이스’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전략이다. 한 친박 의원은 “황 대표에게 총선은 기회이자 위기다. 그런데 당 대표로서 선거를 치르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다. 당 내에 세력이 없는 황 대표 입장에선 외부 인사를 데려와 전권을 주고, 이를 활용해 ‘황교안 키즈’를 키워내 대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