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 ‘당 복귀’ 견제 움직임 확산…“종로 눈독? 강남이나 PK 가야” 총선 험지 출마 요구 목소리도
이낙연 총리. 박은숙 기자
“이러다 진짜 이낙연이 되는 것 아닙니까.”
한 친문 의원과의 대화 도중 나온 말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물었다. 그는 “총리 출신 첫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지지율, 인지도 등을 따져봤을 때 여야를 통틀어 (이낙연 총리가) 가장 앞서 있는 것은 사실 아니냐”면서 “이 총리가 당으로 돌아오면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데 ‘되는 것 아닙니까’엔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이 총리가 대권을 잡아선 안 된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귀를 의심했다. 여권에서 ‘포스트 문재인’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총리를 두고 친문 의원이 비토성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의원은 “친문 쪽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친문 진영이 이 총리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소문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친문계로 분류되는 전현직 의원들에게 ‘이낙연 대망론’과 관련된 입장을 들어봤다. “도지사에 총리까지, 검증은 끝난 분 아니냐” “문재인 대통령보다 인기가 더 많은 것 같다” “황교안 대표와 지지율 1위를 다투고 있지만 이는 여권이 상대적으로 차기 주자가 많기 때문이다. 유시민 이재명 등 5위 안에 4명이 여권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총리가 선거에 나오면 압도적 스코어로 이길 것” 등과 같은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앞서의 친문 의원처럼 우려의 목소리가 따라 붙었다. 차기 주자로서 손색없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그를 밀어야 하는 것엔 의문부호를 달았다. 과연 ‘우리 편’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게 이들의 속마음이었다. 이 총리가 친문 패권주의 벽을 넘지 못해 경선 통과가 힘들 것이란 관측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한 친문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권 초만 하더라도 이 총리에 대한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이 총리가 유력한 차기 주자로 거론되면서 곱지 않은 시선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호남 후보 필패론’과 같은 말들도 흘러나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총리가 친문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이왕이면 친문 후보가 대권을 잡아야 한다는 게 우리 쪽 생각이다. 이재명 박원순을 견제했던 것과 비슷한 차원이다.”
이 총리 거취가 관심을 모았던 3기 개각 과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뒷말이 나왔다.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진 이 총리는 당초 교체가 유력했다. 하지만 유임으로 가닥이 잡혔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친문 진영 역시 이를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여기엔 이 총리 ‘컴백’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 유임 결정에 또 다른 배경이 작용했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 총리를 교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주를 이뤘다”면서도 “무엇보다 예전의 이낙연이 아니지 않느냐.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 대권 후보다. 그가 당으로 돌아오면 셈법이 복잡해진다. 아직 마땅한 주자를 구하지 못한 친문으로선 더욱 그럴 것이다. 당분간 이 총리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앞서의 친문 전직 의원은 더욱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 총리가 종로 출마를 희망한다고 알려졌는데, 결국 총선 찍고 대권으로 가겠다는 노림수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 총리쯤 되면 험지로 가야 한다. 서울 강남이나 민심이 흉흉한 PK(부산 경남)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여기서 살아 돌아오면 좋겠지만 지더라도 명분은 있다. 편안한 길로만 가려해선 안 된다”라고 했다.
친문 진영의 이러한 ‘이낙연 비토론’에 대해 여권에선 쓴소리가 나온다. 차기 주자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이유에서다. 비문계의 한 의원은 “정치권에 떠도는 이른바 ‘안이박김’ 살생부의 ‘이’가 이재명에서 이낙연으로 바뀔 것이란 말이 돈다”면서 “이런 식으로 대권 후보들을 견제하면 누가 살아남겠느냐. 친문 비문을 떠나 다들 민주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다간 자유한국당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총리로서도 친문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고민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내 기반이 부족한 이 총리가 대권을 잡기 위해선 최대 계파이자 주류인 친문계의 지원사격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당으로 복귀하기 전부터 견제 움직임이 친문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리와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 의중이 제일 중요할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을 도와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 총리가 친문이 아니면 누가 친문이란 말이냐. 그런 부분(친문계의 견제)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