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OI와 같은 주소지 법인 대표 ‘문캠프’서 양 원장과 손발 맞춰…KSOI “지금은 정치권과 무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대외비 문건 유출로 질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이란 제목의 보고서가 7월 30일 민주연구원 이름으로 작성됐다. 문서의 우측 상단에는 ‘대외주의’를 강조하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여론동향 조사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맡았다. 보고서에서는 핵심기조를 “최근 한일갈등에 관한 대응은 총선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임. 역사문제와 경제문제를 분리한 원칙적이 대응이 중요”라고 분석했다. 세부 자료로는 △수출규제로 야기된 한일갈등 총선효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친일비판의 지지율 효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찬반 등이 포함됐다.
보고서 내용 가운데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여야의 대응방식 차이의 총선 투표 영향 전망’, ‘한국당에 대한 친일 비판 공감도’ 등은 KSOI의 비공개 조사 내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KSOI는 자체 홈페이지에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는데 앞의 비공개 조사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이유로 민감한 항목을 조사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상식적으로 여론조사업체가 자유한국당에 대해서만 친일 비판 공감도를 조사한 것은 그 배경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여권에서 궁금해할 만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결국 발주처가 있거나 여론조사업체가 자발적으로 이런 설문을 했을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하지만 민주연구원과 KSOI는 묵묵부답이다. 어떤 이유로 이런 여론조사를 실시했으며, 어느 경로로 비공개 조사결과가 민주연구원으로 흘러 들어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여당 내부에서도 민주연구원의 행동에 지적이 나왔다. 이해찬 민주당 원내대표는 비공개 회의에서 양 원장에게 주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역시 양 원장이 사과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공세에 나섰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문제의 보고서 작성 경위, 배포지시자 등을 밝히고 양정철 원장은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우리공화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총선개입 의혹을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공세 중이다.
그동안 KSOI는 상대적으로 민주당과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조사결과를 내놓아 누리꾼들에게 ‘특정 성향’에 치우쳤다는 의심을 받았다. 2003년 설립된 KSOI의 초대 대표였던 김헌태 소장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논란이 됐고, 정기남 전문위원은 노무현 대통령 선대위 기획홍보실장,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특보를 지낸 인사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새천년민주당은 2004년 “KSOI가 노무현정권의 친위조직이자 열린우리당의 하부조직 같은 성격을 띤 곳으로 여론조작성 여론조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
총선이나 대선 국면에서 KSOI와 관련한 논란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08년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는 KSOI를 선관위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게 골자였다. 이명박 캠프는 “친여성향(민주당)인 KSOI가 이명박 후보보다 박 전 대표를 상대하기 쉽다는 계산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언론에 전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민주연구원과 KSOI 관계자들 사이의 연결고리도 포착됐다. KSOI 사무실과 같은 주소지로 등록된 케이에스케이라는 법인이 발견된 것. 소문상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대표이사인 이 회사는 태양광, 에너지 사업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소 전 비서관은 양정철 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분류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소 전 비서관은 양 원장과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문 대통령 선거캠프에서도 손발을 맞췄다. 캠프에서 양 원장은 부실장을, 소 전 비서관은 정무팀장을 맡았다. 노무현 재단 임원인 공통점도 있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소 전 비서관은 양정철, 이호철 등 문 대통령 핵심측근들과 함께 2선으로 물러났었다.
‘일요신문‘은 소 전 비서관의 사무실을 찾았지만 등록된 주소에는 KSOI 사무실만 있었다. 소 전 비서관이 설립한 회사의 간판이나 흔적은 없었다. 대통령 측근이 여론조사업체와 사무실을 공유하는 것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사무실을 공유할 정도로 KSOI와 소 전 비서관 사이의 관계가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 전 비서관과 양 원장의 관계 때문에 반일 총선전략 보고서 파문과 연관해서도 의혹이 증폭된다. 결국 이 부분은 민주연구원의 의뢰 없이 KSOI가 자체적으로 논란이 된 항목을 조사했느냐는 부분과 맞닿기 때문이다.
이상휘 세명대 교수는 “논란이 된 동향 보고서는 여론조사업체가 순전히 독립적으로 진행했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민주연구원의 ’외부자료를 인용했다‘는 해명도 설득력이 없다”며 “지금은 양 원장의 힘이 막강해 더 이상 문제제기를 안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지만 공천을 앞두고 당내 분열조짐이 있으면 분명히 다시 이 문제가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
KSOI 관계자는 “소 전 비서관이 공직을 맡지 않기로 하고 생업에 나서다보니 어려움이 있어 사무실만 공유하려 했는데 사업이 실제로 전개되지 않았다”며 “외부에서 우리 회사와 정치권의 관계에 대해 여러 의혹을 제기하는 데 대해 당황스럽다. 초창기 정치에 뜻이 있던 사람들이 회사를 설립했으나 주인이 바뀌고 지금의 KSOI는 정치권과는 선을 그은 순수한 연구소다. 양 원장이 유명인이라 누군지 알 뿐 친분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휴가 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