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에 있는 SK글로벌(위) 건물에 입주해있는 ‘S사’ (아래)가 바로 SK해운이 6백억원을 빌려준 ‘(주)아상’의 대표가 현재 운영중인 회사다. 이 회사 대표 김덕림씨는 과거 선경그룹 시절 선경직물에 근무했던 것으로 밝혀 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 | ||
이날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가 금융가의 주목을 받은 것은 삼일회계법인이 감사한 결과 2천4백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거액이 어디론가 실종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때문. 이는 1조5천억원대의 SK글로벌 분식회계 사실이 밝혀져 그룹 전체가 충격속에 빠진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 감사보고서에서 밝혀진 2천4백억원의 행방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눈길을 모은 것은 이 돈 중 6백억원을 빌려간 것으로 드러난 (주)아상이라는 무명의 기업이었다.
보고서상 특수관계자로만 표현된 (주)아상은 SK그룹 계열사도 아니고, 위장 계열사로도 보기 힘든 회사이다. 때문에 SK해운이 왜 이 회사에 6백억원이라는 거액을 빌려주었는지 의문을 남기고 있다. 게다가 SK해운은 보고서상 지난해 6백억원을 빌려주고 나중에 90억원을 상환받았으나, 나머지 5백10억원(이자 포함할 경우 5백29억원)은 회수불능으로 판단하고 처리해버린 것.
이렇게 되자 금융 전문가들은 이 회사에 대해 “오너의 비자금 창구” “불법적 자금거래를 위한 세탁소”라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주)아상은 어떤 회사일까.
(주)아상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 회사는 지난 1978년 2월4일 창립됐다. 설립 당시 이 회사의 상호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현재의 (주)아상으로 상호가 변경된 것은 지난 92년 6월. 이 회사의 주요사업은 합판 및 가공합판 제조업, 무역업, 도매업 등으로 돼 있다.
현재 이 회사의 자본금은 16억원이며, 지난 2000년 금감원에 마지막으로 제출된 감사보고서상 당시 대표이사인 김덕림씨가 전체 지분의 30%를 보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김씨는 지난 95년 8월에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회사의 설립자인 김덕림씨와 SK그룹과의 관계. 확인 결과 김씨는 지난 74년부터 83년 2월까지 SK 전신 선경그룹의 계열사인 선경직물 판매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퇴사 당시 그의 마지막 직함은 선경직물 부본부장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현재 (주)아상과는 다른 S사도 운영중이다. 이 회사는 SK그룹 계열사인 SK글로벌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소재 H빌딩 6층에 함께 있다. 회사 관계자는 SK글로벌과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우리도 세입자”라고만 밝혔다.
어쨌든 이 회사는 지난 78년 설립된 이후 96년까지의 경영내용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2000년 금감원에 제출된 감사보고서에 처음으로 경영실적이 공개됐는데, 보고서에 의하면 이 회사는 97년에 2백15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적자는 3백90억원에 달했다. 이어 98년의 실적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갑자기 매출이 75억원으로 뚝 떨어진 반면 적자는 전년의 배에 가까운 6백19억원으로 급증한 것. 그런 뒤 이듬해인 99년에는 매출이 전년의 10%에 불과한 6억7천만원에 그쳤고, 적자폭도 3백41억원으로 낮아졌다.
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의 적자행진은 장기적으로 이어진 듯하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97∼99년까지 3년 동안 이 회사의 영업외 비용은 4백억∼6백억원대에 달했다. 영업외 비용이 이처럼 매출의 최대 9배에 달하는 기형 재무제표를 보인 것은 연간 3백억∼6백억원대에 이르는 이자비용 때문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 회사는 매출도 없으면서 막대한 자금을 외부에서 끌어와 썼다는 얘기.
당연히 껍데기뿐인 이 회사가 어떻게 이런 막대한 자금을 외부에서 차입할 수 있었는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 부분과 관련해 당시 이 회사의 감사를 맡았던 대주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당시 이 회사는 향후 자금조달계획과 생산, 판매, 재무 등 경영개선 계획의 성패에 따라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감사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회사는 마지막 감사보고서가 제출된 2000년 3월 이후에는 영업을 하지 않은 채 휴면 법인 상태로 이름만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 SK해운은 왜 이런 부실 소기업에 6백억원이라는 거액을 빌려준 걸까. 또 이 회사에 빌려준 자금 중 일부인 90억원만을 회수하고, 5백10억원에 대해서는 무슨 이유로 탕감을 해준 것일까.
이에 대한 SK해운의 공식 입장은 “(주)아상은 특수관계인이었기 때문에 6백억원을 빌려줬다”는 것. 그러나 SK측은 구체적으로 (주)아상과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SK해운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은 “SK해운측에 수차례에 걸쳐 (주)아상에 대해 물었으나 끝내 답변을 듣지 못해 회계준칙에 따라 ‘특수관계인’이라는 표현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기업회계 9조2항을 보면 ‘개인 또는 경영진이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곳은 특수관계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삼일회계법인의 입장인 SK해운-(주)아상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SK해운이 선뜻 6백억원의 돈을 꿔준 것으로 보아 (주)아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단순 논리로 특수관계인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SK해운이 주주들의 반발없이 6백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자금을 선뜻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은 SK해운의 기업 특수성 때문. SK해운은 지난 82년1월 해상운송사업과 창고보관업, 선박 매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SK그룹의 계열사로 그동안 SK(주)의 원유를 운반하는 일을 주업무로 삼아왔다.
이 회사의 주주구성을 보면 SK(주)가 전체의 47.81%를 보유해 1대 주주이고, SK글로벌(주)가 33.16%, SKC(주)가 19.02%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SK그룹 관계사들이 99.9%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주주들이 전부 SK그룹 각 계열사이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사업상 기획이나 자금 운용 등에 있어 주주들의 눈치를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구조인 것.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업계에서는 SK해운이 (주)아상이라는 곳에 5백억원이 넘는 자금을 회수하지 않고 손실처리한 부분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SK가 자금을 빌려준 부분이나, 또 이에 대한 채무를 변제해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다른 관계자도 “SK해운이 SK그룹 전체를 위해서 부득이하게 (주)아상과의 관계를 숨겨야 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삼일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이런 정황들을 감안할 때 (주)아상이라는 회사에 SK그룹의 비정상적인 자금이 파킹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 얘기를 종합해보자면 SK의 계열사들이 거의 1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SK해운이 과거 거래를 했던 무명의 회사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외형적인 형식을 통해 돈을 빼돌리거나 혹은 비정상적인 자금을 세탁하는 창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
현재로서는 이 같은 얘기는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그러나 SK해운이 무명의 회사에 6백억원의 돈을 빌려주고, 또 이 중 5백억원에 대한 채무를 변제해준 것이 ‘비정상적인 거래’라는 것은 사실이라는게 담당회계법인측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SK해운은 물론 SK그룹측은 이 회사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우리도 (주)아상이 뭐하는 회사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며 말을 얼버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