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에 더해진 ‘검증된 배우’들의 연기력 “맛집은 맛집이다”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 스틸컷.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세조 말 시대를 다루는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세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다양한 이적현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세조(박희순 분)가 세운 원각사를 뒤덮은 황색 구름과 향기로운 꽃비, 오대산에서 몸을 씻고 있던 세조의 등을 문질러 피부병을 낫게 해줬다는 문수보살의 현신이나 금강산을 순행하던 세조 앞에 나타난 담무갈보살 등의 기이한 현상이 “사실은 세조의 과를 덮기 위해 한명회(손현주 분)가 광대패들을 이용해 만들어낸 풍문이라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김주호 감독은 13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광대들: 풍문조작단’ 언론배급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세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실제 기록 가운데 시각적 효과를 줄 수 있는 에피소드와 정2품송 같은 일반 관객들에게 친숙한 야사 3개를 추려서 선택했다”며 “이전 작품보다 좀 더 과감한 시도로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시각‧청각적인 장면들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 스틸컷.
실제로 극중에서는 현대의 문물을 그대로 조선시대 풍으로 바꿔 놓은 각종 장치들이 등장해 풍성한 볼거리를 만든다. 실록에까지 기록된 ‘사실’ 로서의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하면 현대 관객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도록 할 것인지. 제작진의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조금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고, 말이 안 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희화화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제작의 원칙을 설명했다.
실제 역사를 큰 줄기로 다루면서도 적절하게 가미된 판타지와 코미디도 관객들로 하여금 복잡한 생각 없이 영화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특히 광대패의 우두머리 덕호(조진웅 분)의 재기 넘치는 입담은 장치들로 채워진 시각에 이어 청각까지 매료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진웅은 “덕호는 광대로서 재담꾼이다. 극중에서 짧은 장면이지만 제가 혼자 군중 앞에서 재담을 부리고 관객들이 호응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문득 연극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며 “연극 안 한지 꽤 오래됐다. 한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 장면을 찍으면서 그런 (신명나는) 기운을 받은 것 같아서 찍고 난 뒤에 속으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 스틸컷
조진웅을 뒷받침 해주는 광대패의 면면도 결코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냥 스크린에 잡히기만 해도 웃긴 홍철(고창석 분)이나 홍일점 근덕(김슬기 분), 진상(윤박 분), 팔풍(김민석 분)의 연기는 굳이 코미디라는 이유로 맥락 없는 슬랩스틱을 넣지 않더라도 처지는 일 없이 마지막까지 이어져 극에 안정감을 준다.
이 가운데 시종일관 소변을 지리는 역할을 맡은 고창석이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시나리오에는 (소변을 지리는) 장면이 한 번 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자꾸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얼굴은 5분을 찍고 다리는 한 시간을 찍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나쁜 놈들”이라며 제작진에게 열변을 토해 취재진을 웃기기도 했다.
광대패로 인해 자칫 가볍게 흐를 수 있는 영화의 중심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의 의견이 가장 분분할 수 있는 두 사람, 한명회와 세조가 잡고 있다. 광대패를 섭외하고 세조의 풍문을 조작하도록 기획한 공신 한명회는 영화 속에서 왕 이상의 카리스마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 스틸컷
한명회 역의 배우 손현주는 “저희는 영화에서 세조 말을 다루는데, 기존에 한명회 역을 맡으셨던 배우들이 광대패를 캐스팅하고 이들을 통해 세조의 미담을 그려냈던 작품이 없었다”며 “공신은 공신대로 노력하고, 광대는 광대대로 노력하는 그런 모습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병약하면서도 광기어린 세조의 모습을 보여준 박희순은 “기존의 세조는 수양에서 세조로 넘어가는 강인하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이었는데 영화 배경상 집권 말기이기 때문에 늙고 병약한 모습에 집중됐다”며 “그러나 무조건 병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 보다는 강인하면서도 회한, 반성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섞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작진이 보여주고자 한 ‘인간적인 세조의 모습’과 이를 위한 극적 장치들이 관객들에게 ‘과연 영화 속 캐릭터 구축 방식의 한 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했듯 팩션 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큰 지적 없이 받아들이기엔 다소 위험한 부분이 있다.
이를 두고 김주호 감독은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역사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권력자가 자신과 관련된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고, 숨기고, 인정하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오늘날까지도 반복이 되고 있다는 부분을(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록과 관련해서는 “극중 클라이맥스 장면이 당시에도 일어났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다”며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삼기에 좋은 소재이자 배경이라고 생각해서 극적인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낸 시퀀스”라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조선 팔도를 무대로 풍문을 조작하고 민심을 뒤흔드는 광대패의 우두머리 ‘덕호’(조진웅 분)가 조선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손현주 분)에게 발탁돼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세조’(박희순 분)의 미담을 제조해 역사를 뒤바꾸는 이야기를 그린다. 판타지와 코미디를 오가며 재주넘기를 펼치는 광대판에 ‘연기 맛집’ 배우들의 열연에 주목, 또 주목. 108분, 12세 이상 관람가. 21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