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의 조절과 조화…‘정글북’은 됐는데 ‘라이온 킹’은 왜 안될까
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디즈니의 2019년 야심작 가운데 하나였던 ‘라이온 킹’은 2016년 ‘정글북’, 올해 초 ‘덤보’를 이은 세 번째 동물 위주의 실사 영화다. 2010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이어 꾸준히 실사 리메이크 작품을 내놓고 있는 디즈니 내에서도 가장 큰 기대작으로 꼽힌 바 있다. 특히 ‘정글북’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존 패브로 감독의 두 번째 ‘말하는 동물 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감은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인간 배우가 맡아 연기한 모글리가 등장하는 ‘정글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라이온 킹’은 모든 등장 동물이 CG라는 점뿐이다. 앞서 ‘정글북’이나 ‘덤보’의 경우는 “동물들이 너무 인간처럼 연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기도 했다. 이 같은 전작에서의 경험을 통해 애니메이션적 표현의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하거나 축소하느냐의 문제가 ‘라이온 킹’의 딜레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그리고 존 패브로 감독은 “철저하게 애니메이션 표현과 효과를 배제하고 실제의 동물처럼 보이도록 하자”고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영화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티몬과 품바를 제외한다면, 모든 캐릭터들은 당장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가져다 놔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모습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문제는 정작 자신들이 등장하고 있는 ‘라이온 킹’에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선 ‘정글북’이나 ‘덤보’에서 인간 같은 표정 연기를 보여줬던 동물들과 달리 ‘라이온 킹’에서의 사자들은 실제 동물 그 자체로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표정과 행동 연기가 없이 대사로만 상황을 전달해야 되고, 이는 곧 불필요한 대사의 증가로 이어져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마나 완벽하게 실제 동물처럼 보일 수 있느냐”에 제작의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은 ‘라이온 킹’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었던 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디즈니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알라딘’의 노래에 원작 애니메이션 효과를 대부분 차용하고, 이에 더 나아가 현대적인 화려함까지 가미했었던 것을 보고 ‘라이온 킹’에서도 같은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원작의 감동을 어느 하나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노래는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 뿐이다.
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물론 어린 심바(JD 맥크레리 분)와 날라(샤하디 라이트 조셉 분)가 사바나 초원을 내달리며 부르는 ‘어서 왕이 되고파(I just can’t wait to be king)’나 어른이 된 심바(도널드 글로버 분), 티몬(빌리 아이크너 분), 품바(세스 로건 분) 삼총사의 ‘하쿠나 마타타’, 심바와 날라(비욘세 분)의 러브 송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등 전 세계 팬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노래들 역시 다소의 변형이 있긴 하지만 영화 ‘라이온 킹’에서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원작에 대한 아쉬움은 둘째 치더라도, ‘서클 오브 라이프’를 제외한 이 영화의 모든 노래에 굳이 R&B 애드립을 넣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는 화면은 ‘동물의 왕국’인데 들리는 노래는 ‘MTV 뮤직 어워드’를 떠올리게 하니 제작진의 의도야 어찌 됐든 위화감을 떨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위화감은 심바가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가는 씬에서 원작의 사운드트랙 ‘디스 이즈 마이 홈(This Is My Home)’을 대신해 새롭게 수록된 비욘세의 곡 ‘스피릿(Spirit)’에서 최고치를 찍는다.
원작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한 악역 스카(치웨텔 에지오포 분)의 존재감이 흐려진 것도 아쉬운 점이다. 스카와 하이에나 무리들의 노래이자 많은 팬들이 실사로 보길 고대했던 ‘비 프리페어드(Be prepared)’도 스카의 존재감만큼이나 스케일이 작아졌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짧게나마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스카의 카리스마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라이온 킹’ 스틸컷
스카의 비중이 줄어든 반면 하이에나들의 존재는 부각됐다. 암컷이 무리의 우두머리를 차지하는 하이에나의 특성을 반영했던 원작 그 이상으로, 리더인 쉔지(플로렌스 카줌바 분)의 위상은 스카에 맞먹을 정도다. 이로써 쉔지와 날라, 두 여성 캐릭터의 남성 못지않은 맞대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영화 ‘라이온 킹’의 새로운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유년기에 감명 깊게 봤던 원작의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면 영화를 보고 서운함과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플롯을 함께 쓰고 있을 뿐인 ‘다른 실사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매력으로 감상할 수 있는 부분은 차고 넘친다.
스크린에 온전히 담긴 사바나의 거대한 스케일은 원작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감동과 전율을 전해줄 것이다. 특히 원작 개봉 당시 어린 팬들에게 거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줬던 물소 떼의 질주 씬은 전율 그 자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왜 이 영화를 아이맥스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이 씬으로 충분할 것이다.
한편 영화 ‘라이온 킹’은 프라이드 랜드의 후계자 심바가 삼촌 스카의 음모로 아버지 무파사(제임스 얼 존스 분)를 잃고 왕국에서 쫓겨난 뒤, 죄책감에 시달리던 과거의 아픔을 딛고 날라와 티몬, 품바 등 친구들과 함께 진정한 자아와 왕좌를 되찾기 위한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1994년 개봉한 원작 애니메이션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역대 최고작으로 평가 받은 바 있다. 118분, 전체 관람가. 17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