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쓰는 히어로 엑소시스트’의 탄생…새로운 시도의 ‘유니버스’ 에 주목
영화 ‘사자’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결국 악마와 엑소시즘을 다루고자 하는 한국영화는 “피자에 고춧가루를 얼마나 잘 버무리는가”에 따라 반응이 갈린다 할 것이다. 그러나 ‘사자’는 그냥 피자를 내기로 한 모양이다. 그것도 치즈 가득한 시카고 피자다. 등장인물만 한국인일뿐 다루는 장르와 각종 장치들을 대다수 서양의 것을 차용하다 보니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기묘한 위화감으로 관객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영화의 큰 줄기는 엑소시즘을 다루는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동서고금의 클리셰를 따라간다. 악마에 들린 부마자들, 구마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보조사제, 신의 존재나 엑소시즘을 믿지 않았다가 결국 신부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는 주인공… 신선한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자 격투기 챔피언인 용후(박서준 분)가 성경과 십자가 대신 주먹을 휘둘러 엑소시즘을 행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사제 캐릭터가 대부분 높은 지능과 신앙심을 보여 왔다면 용후는 물리와 체력이 가장 높은 수치를 찍고 있다는 점이 ‘사자’ 만의 특징으로 보인다.
영화 ‘사자’ 스틸컷
그러나 한국 엑소시즘 영화 가운데서 그나마 ‘물리 법사(?)’ 라는 신선한 캐릭터를 구축하고도 영화에서 그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용후와 부마자들에 집중되는 다소 어색한 CG의 탓이 커 보인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기술력을 인정 받은 덱스터 스튜디오의 작품인만큼 CG의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그 표현의 방법을 놓고 본다면 이견이 갈릴 것이다.
CG에 더해 각종 특수 분장으로 무장하는 ‘검은 주교’ 지신(우도환 분)은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그의 행동을 보며 관객들이 지신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을지 여부를 떠나, 그의 행위 자체를 거부감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흥행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양적 색채라고는 바늘로 뚫을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서양 오컬트의 진수를 보여준 지신은 단연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진입 장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용후와 지신이 판타지의 끝을 달리고 있을 때 극중 그나마 현실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 안 신부(안성기 분)다. 교과서적인 영화 속 구마 사제의 모습 그대로를 연기한 안성기는 안정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연기로 자칫 과도하게 판타지로만 튈 수 있는 스토리의 중심을 잡는다. 또한 용후와 함께 이어가는 만담 같은 대화로 예기치 않은 씬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등 적절한 완급조절로 눈길을 끌었다.
영화 ‘사자’ 스틸컷
22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사자’의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김주환 감독은 “‘유니버스(세계관)’라는 걸 만들기 위해 몇몇 영웅과 적대자의 세상을 생각했다. ‘홀리 유니버스’라고 해야 할까”라며 “‘사자’가 잘 되면 저희가 추구하는 같은 세계관의 다음 작품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이미 김 감독은 우도환의 ‘검은 주교’의 과거나 앞으로 세계관에서 이들을 비롯한 여러 집단의 활약을 구상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특히 앞선 ‘청년경찰’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성 캐릭터의 부재가 지적됐던 만큼 후속작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도 부각시키고 싶다는 점을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이지만 한국 같지 않은 오컬트 유니버스가 새로운 장르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편, 영화 ‘사자’는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 분)가 구마사제 안 신부(안성기 분)를 만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악 지신(우도환 분)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격투기, 사제복, 레더 재킷, 바이크, 스포츠 카 라는, 따로 떨어뜨려 놓고 봤을 때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키워드가 박서준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129분, 15세 이상 관람가. 31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